어찌 '보쌈'이라 부르오리까…어쩌다 '유괴'와 같은 악풍습 이름을 붙였는지전통과는 전혀 다른 이름 · 만드는 법 안타까워

우리가 즐겨 먹는 음식 중에 '보쌈(?)'이라는 음식이 있다. 이 희귀한 이름을 학계에서도 보쌈김치 등으로 부르는 것을 보면 음식용어 정도는 대수롭지 않다는 뜻인지 아니면 이미 일반화된 용어이므로 그대로 인정하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국어사전에도 보면 "보쌈김치는 배추 잎사귀로 휘감아서 담근 통배추 김치, (준)쌈김치"로 되어 있다. 필자가 국어사전을 펼쳐보면서 반만년 역사를 가진 우리 식생활문화사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눈앞이 캄캄하고 답답했다.

◇ 이름만 들어도 감칠맛 나는 '개성 보 김치'

개성 보김치가 유명한 것은 개성배추가 통이 커 배추 잎사귀가 보자기와 같이 넓어 보김치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당시 보김치는 언제나 개성서 만들어 먹던 김치로 당시 음력 정초 명절과 4월 초파일을 전후해서 먹는 풍습이 전해져 내려왔던 것이다.

한편, 개성 보김치는 통배추를 가로 두 토막 또는 세 토막 내어 배추 잎 사이사이에 낙지, 북어, 전복, 굴, 돼지고기 또는 쇠고기, 느타리버섯과 고명을 넓은 배추 잎으로 같이 싸서 독 안에 차곡차곡 넣었다.

또한, 통배추를 나박김치처럼 썰어 여러 가지 양념을 함께 버무려 배추 잎으로 싸서 독 안에 넣어 봉하였다가 먹을 때 통째로 꺼내어 먹었다.

이 두 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진 개성 보김치는 양념과 고명을 보에 싸기 때문에 향과 맛이 전혀 훼손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훌륭한 음식이다. 이렇게 훌륭하고 맛있는 개성의 보김치 또는 쌈김치가 우리의 패륜적 습속이었던 '보쌈'으로 불린다는 것은 우리의 고유한 전통음식을 모독하는 일이다.

◇ 개성 전통음식을 훼손시킨 보쌈김치라는 패륜적 맛

특히 요즘은 보의 형태도 없이 접시에 홍어삼합처럼 양념과 백김치, 돼지고기를 담아서 직접 싸서 먹도록 하고 이를 보쌈김치라고 부른다. 일부 층에서 헛제삿밥을 비빔밥으로 분류하는 것처럼 무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비빔밥은 비벼 내거나 비빔거리를 함께 담아냈을 때 비빔밥이지 전개형으로 차려 낸 것은 비빔밥이라 할 수가 없다. 반상에 비빌 거리가 나왔다 하여 비빔밥이라 할 수 없는 거와 마찬가지다.

어쨌든 보김치의 형태도 변했지만 '보쌈김치'라는 이름은 음식용어로는 걸맞지 않다 할 것이다. 이성우 교수가 마해송의 '보쌈김치'를 인용해 한국식품문화사에 적은 내용처럼 "요즘도 그런 사람이 있지만 옛날에는 자식을 낳으면 사주팔자를 보는 일이 많았다. 생년, 생월, 생일, 생시를 사주라고 해서 그의 일생을 점하는 것이니, 잘 보는 사주쟁이면 어린 핏덩이를 놓고 사주로 따져서 일생의 운명을 적어서 내놓는다. 곧 어느 해에 경사가 있고, 어느 해에 모사가 있고, 몇 살에 어디서 죽는다는 것까지 점쳐 놓는 것이다.

그런데 옛날 양반집 딸의 사주팔자가 한 남편을 종신하지 못한다든지, 신랑이 일찍 죽는다든지, 두 번 시집을 가야 하는 팔자라고 점이 나오면, 이때 보쌈이라는 흉측한 일이 벌어진다. 이른바 유괴 살인이 일어난다. 하인을 시켜 밤거리에서 어린 총각을 낚아 오게 하는데, 보자기를 훌떡 뒤집어씌우고 어깨에 매달고 온다.

귀한 딸, 팔자 사나운 딸의 액을 때우고자, 유괴해 온 어린 총각에게 신랑의 옷을 입히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딸과 하룻밤을 같이 자게 하고, 날이 새기 무섭게 어린 총각을 죽여 버리는 풍습이다. 이로써 그 집 딸은 이미 과부가 되어 액을 때운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쁜 꾀에 걸리는 것을 '보쌈 걸린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우리의 고유한 전통음식에 이렇게 끔찍한 패륜적 풍습의 이름을 붙여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이제부터라도 본래대로 개성의 보김치 또는 쌈김치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할 것이다.

◇ 보쌈이라 하지만 삼합도 아니고…

아시다시피 보쌈이든 개성 보김치든 배추 잎에 낙지 등 갖은 양념과 고명을 넣고 싸서 단지에 넣어 익혀 놨다가 먹는 것인데, 요즘 보쌈이란 것은 마치 삼합처럼 배추김치와 돼지고기 수육, 양념과 고명 등 쌈 할 거리를 접시에 담아내어 놓는다.

원래 이 보쌈은 남한의 모 외식업자가 단순히 마케팅 차원에서 개념 없이 배추김치와 돼지고기 수육, 양념 등을 접시에 홍어삼합처럼 담아 '○○보쌈'이라고 한 것인데, 학계 등에서 전혀 검증 없이 이를 채택해 요리 책이나 심지어 사전에까지 채택되었으니 우리 식생활문화의 중심이 어디인지 부끄러울 뿐이다.

다만, 필자는 이후 이 지면을 통해 '전통 개성 보김치'와 어처구니없지만 이미 일반화된 보쌈김치를 구별해서 취재를 할까 한다.

◇ 개성 석류김치

한편, 개성의 보김치와 유사한 김치로 석류김치가 있다. 이 석류김치는 보김치 이상으로 맛이 좋았던 김치로서 무를 석류 모양으로 쪼개어 만드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석류 김치는 무를 석류 모양 열십자로 칼집을 내고 벌려 여러 가지 양념을 넣고 보김치와 같이 배추 잎으로 싸지만 보김치와 다른 것은 양념과 재료가 복잡하지 않고 담백한 것이 차이가 난다.

◇ 김치 전통의 맥 '봉우리 보김치'

세계 5대 식품의 하나인 '김치'가 '기무치'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현실 앞에 봉우리 김치 이하연 사장은 김치연구가 또는 기업인이기 앞서 애국자다. 소위 전통음식을 연구하는 교수나 학자들까지, 보쌈김치가 뭔지, 보김치가 뭔지 조차 구별하지 못하고 방송이나 지면에 소개하고 있는 마당에 보김치, 석류김치, 꿩 김치 등 김치류 수십 가지를 전통의 맥을 이어 담가내며 연구를 거듭하는 그의 노력이 대단하다.

봉우리 보김치, 봉우리 석류김치의 태생이 경기도 개성지방일진대 그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이 김치들에 깃들어 있다. 이하연 선생은 자신이 직접 담근 김치 무리와 장아찌 등을 찬으로 한 봉우리 한정식집을 직접 경영하기도 한다.

△봉우리 김치: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637-17, (02)567-8022.

◇ 산들바람 보쌈김치

모든 음식의 맛은 재료와 양념 맛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인 것은 물맛이다. 설악산의 풍부한 수맥을 타고 흐르는 지하수로 고랭지 배추를 주재료로 담그는 산들바람 보쌈김치는 전통적인 보김치의 원형을 살리려는 노력과 함께 아삭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비록 이름은 보쌈이지만 보김치의 형태로 담가 적당히 숙성시켜 공급하므로 여기에 두부와 돼지수육을 곁들인다면 여느 집 보김치 맛에 비하랴. 아울러 산들바람만이 추구하는 고유한 맛의 비밀은 약 15가지의 다시마와 같은 천연원료를 사용해, 기존의 감미료에서 나오는 MSG를 첨가하지 않음으로써 고객 건강까지 챙겼다고 하니 얼마 전 있었던 김치 파동에도 오히려 매출이 더 늘었다고 하다.

△산들바람 보쌈김치: 강원도 속초시 노학동 856-2, (033)631-4982.

◇ 원 할머니 보쌈김치

지금은 깔끔한 건물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청계천 8가 허름한 집 원 할머니 보쌈하면 웬만한 식도락가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1965년 3월 청계 8가 황학동 도로변에 김보배 할머니가 처음 보쌈집을 시작해 직장인들 사이에 널리 소문이 퍼지면서 알려지게 되었는데, 퇴근하고 이 집을 찾으면 이미 많은 사람이 문앞에 줄지어 서 있어 말 그대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 유명세만큼이나 보쌈의 양념 맛도 맛이려니와 돼지수육 맛이 입에 착착 감기는 것이 애주가들이 보쌈 한 접시 시켜 놓고 소주 두어 병 비우는데 이만한 안주는 없었을 게다.

옛날에는 할머니가 보쌈을 만들어 판다고 해서 '할머니 보쌈집'이라고 불렸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원 할머니보쌈집'으로 불리고 소문에 힘입어 전국에 150개가 넘는 체인점을 거느린 외식기업으로 발전했다. 아마 단순히 보쌈이라는 이름만으로 승부를 건 집으로는 이 집이 유일하고 보쌈의 종류도 보배 보쌈, 한바탕 보쌈, 섞어 맛 보쌈, 아롱사태맛 보쌈 등 다양하다.

△본점: 서울특별시 중구 황학동 1685, (02) 2282-5353.

◇ 보쌈의 대명사 놀부 보쌈

보쌈하면 놀부를 떠올릴 만큼 보쌈의 대명사가 된 놀부 보쌈은 1987년, 김순진 사장이 서울 관악구 신림동 신림극장 뒷골목에 보쌈식당 '골목집'으로부터 시작했다. 당시 보증금 300만 원에 5평짜리 가게. 백반집, 돼지갈비집, 곰장어집. 세 차례에 걸친 음식장사에서 연이어 실패를 거듭한 끝에 가까스로 마련한 식당이었다고 한다. 가난 덕에 중학 1년을 중퇴한 김 사장은 자식에게 가난을 대물림해주기가 싫어 악착같이 외식업을 한 끝에 지금은 자식도 자식이지만 자신도 96년 고입, 대입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97학번으로 대학에 들어가 서울보건대학 전통조리과, 우송대학교 관광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경원대학교 대학원 관광경영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김 사장은 같은 학교 박사과정을 밟으며, 대학강의를 하는 입지전적인 기업인으로 성공했다.

사실 '보김치'가 오늘날과 같이 홍어삼합처럼 굴 양념, 돼지고기, 김치를 접시에 담아 '놀부 보쌈'이라는 보쌈김치의 효시가 되었다. 물론 (주)놀부는 보쌈뿐만 아니라 부대찌개, 유황오리, 순댓국밥, 놀부 한정식 등 다 메뉴, 다 체인점 전략으로 성공한 기업이지만 놀부가 성장한 동력은 '놀부 보쌈'이 아닌가 싶다.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동 1-28 (주) 놀부, (02) 574-5511.

/김영복(경남대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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