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사는 법 '따로 또 같이'

   
 
 
"내가 맛있는 커피 뽑아줄게. 어떤 종류 먹을래. 골라만 봐봐. 카푸치노? 카페라테? 책자 줄까 골라볼래?" 어쩐 일인가. 설거지 거리를 싱크대에 몰래 넣어놓고 행여나 내가 먼저 소파를 차지할까 눈치보다 재빨리 먼저 뛰어가 텔레비전 리모컨 잡기 바빴던 남편. 저녁밥을 먹고 나자마자 부엌에서 떠날 줄 모른다.

물론 그만의 꿀단지가 있다. 가을만 되면 들먹이던 에스프레소 기계다. 에스프레소 기계와의 만남은 그렇게 코끝을 간질이는 향긋한 커피 향처럼 시작되는 듯했다.

◇에스프레소 기계가 집안으로 온 까닭

이 사람, 나와는 태어난 행성부터 다르다는 것이 여기서 드러난다. 그가 화성에서 온 '에스프레소'라면 난 금성에서 온 '커피믹스' 다. 그는 진하게 쭉 들이켜면 하루의 피로가 싹 풀렸다며 에스프레소 기계 하나 집에 놔두는 게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반면 나는 각성효과는 어떤 비싼 커피도 '자판기 믹스 커피'를 따라갈 수가 없다고 자부했기에 30만 원에 달하는 에스프레소 머신은 사치품일 뿐이라고 구입을 반대했던 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전자제품 가격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고 하지 않던가. 지난해만 해도 30만 원 가까이하던 제품이 9만 원대로 떨어졌다. 한 달 전 결국 남편은 그간 모아둔 비상금을 털고 에스프레소 기계를 사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에스프레소 대 커피믹스

이왕에 산 거 나도 금성이 말하는 그 깔끔한 맛을 한번 느껴볼까 생각을 바꿨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100개짜리 커피믹스 통을 구석으로 치우고 에스프레소 기계와 에스프레소 잔만 놓았다.

에스프레소 첫 시연 날. 김빠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쪼르르 에스프레소 커피가 쏟아졌다. 기대에 차서 한 모금 먹는 순간 두 사람 모두 이내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상하게 맛이 쓰네. 물을 잘 못 넣었나. 아닌데…"

문제는 커피가루다. 에스프레소용 커피가루 대신 집에 있던 원두커피용 가루를 쓴 탓에 물 조절이 맞지 않고 맛도 제대로 우러나지 않은 것이다. 더 문제는 인근 마트에는 에스프레스용 커피가루를 팔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유 단백질이나 커피 찌꺼기 등이 굳거나 들러붙기 때문에 내부 청소를 꼭꼭 해줘야 했다.

일주일 후 식탁에는 물만 있으면 툭 털어먹으면 끝인 커피믹스가 다시 올랐다. 다른 행성에서 온 두 남녀가 살아가는 방식처럼 에스프레소와 커피믹스가 식탁 위에 나란히 놓였다. 비록 횟수는 줄었지만 남편은 여전히 에스프레소 커피를 뽑고 청소까지 하는 번거로움도 즐거움으로 여긴다. 난 뽀르르 끓인 물에 스르르 커피믹스를 넣고 이내 아침잠을 깬다. 부부가 사는 모습이 다 그러하듯 이 또한 '따로 또 같이' 사는 모습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