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찾은 요리예술가, 산당 임지호 씨

   
 
 
'철학은 어떤 맛일까?' 요리를 철학으로 생각하는 요리사가 있다. 그의 요리 앞에서는 어떤 누구도 맛을 설명하려고 머리를 굴려야 한다. 산당(山堂) 임지호(48) 씨.

'요리예술가'로 통하는 그에게 요리와 철학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였다. 그는 당당하게 "제 요리의 80%는 철학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요리하지 않습니다. 음식의 재료는 가벼울지 몰라도 그 요리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무겁습니다"라고 말한다.

지난 10일 '산당 임지호 습지 음식 특별전'을 위해 창원을 찾은 임지호 씨에게 '철학을 요리하는 법'에 대해 들어봤다.

◇ 자연이 요리사다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의 재료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임 씨는 땅에서 자동차와 하늘의 비행기 빼곤 모든 것을 음식재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날 행사에서 요리로 나온 음식재료 중 눈을 끈 것은 습지에서 구할 수 있는 민물 잘피와 물밤이었다.

흐르는 물에서만 자라는 민물 잘피를 이용한 죽은 고운 색과 잘피의 형태를 변형시키지 않고 요리했다. 특히 잘피를 주재료로 만든 젤라포는 아삭아삭 씹히는 맛과 톡톡 터지는 맛이 있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다.

   
 
  물밤 경단.  
   
 
  잘피 젤라포.  
 
마름의 열매인 '물밤'도 요리의 재료가 된다. 딱딱한 물밤을 3시간 동안 튀겨 곱게 빻은 가루를 삶아서 으깬 감자에 옷을 입힌 경단을 처음 선보였다.

올방개, 연꽃 등도 음식의 재료로 쓰였다. 밝힐 수 없는 재료까지 포함하면 습지 식물 상당수가 포함되었다.

이 외에도 갓 담근 김치에는 탱자즙을 첨가해 독특한 향을 내기도 하고 요구르트를 첨가해 유산균과 함께 발효시키는 시도는 흥미롭기까지 하다.

썩은 두부를 이용한 요리는 그가 자연 속 재료를 이용하는 것을 넘어 '발효'라는 자연현상을 이용하는데 적극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임 씨는 "썩은 두부는 치즈와 같습니다. 수분을 제거한 후 매달아 놓으면 완전하게 썩게 되는데 곰팡이를 떼어내고 먹으면 됩니다. 불완전하게 썩은 것은 사람 몸을 아프게 하지만 완전하게 썩은 것은 인간의 몸에 이롭습니다"라며 자연이 만드는 요리법을 강조한다.

그는 "우리 전통음식은 자연이 준 열매에 약간의 에너지를 보태고 나서 다시 자연에 맡겨서 얻어낸 것이라 순하고 담백하며 자극적이지 않은 게 특징"이라며 "음식은 그 민족의 심성이며, 가장 좋은 음식은 자연입니다"라고 말했다.

◇ 요리도 퍼포먼스다

그의 요리는 누가 봐도 '예술이다'라고 평한다. 요리를 장식할 때도 먹지 못하는 장식품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만든 소스 위주로 쟁반을 꾸민다.

음식은 알갱이만 빼서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알갱이를 둘러싼 재료도 요리에 적극적으로 이용된다.

예를 들면, 땅콩요리는 땅콩의 딱딱한 껍질을 까서 버리지 않고 껍질째 튀긴다. 따라서 땅콩 특유의 맛을 온전히 머금은 요리가 탄생한다. 밤 요리도 밤 껍질째 접시에 올리고 껍질에 불을 붙여 밤알을 순식간에 익히기도 한다.

행사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부드러운 음식만 접하는 현대인의 식습관 때문에 소화기관의 기능이 약화되었다"며 "땅콩껍질처럼 거친 음식은 위장의 본래 기능을 회복하는데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감자 튀김·
도내 한 일식집 총주방장으로 일하는 송기호 씨는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담백함과 고소한 맛을 내는 실력에 놀랐다"며 "특히 고정된 재료가 아닌 순간순간 변화무쌍한 조리방식은 도저히 따라 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그중 가장 탐나는 것은 고추냉이(와사비) 대용으로 사용한 측백나무를 재료로 한 소스였다"고 찬탄했다.

◇산당 임지호 씨는…

어려서부터 시골 할머니로부터 장 담그기와 산나물 캐고 다듬기를 배웠다. 또 스님들로부터 사찰 음식을 배웠다. 젊은 시절 40년을 넘게 떠돌이 생활을 하며 전국 산하에서 나는 재료를 먹어보며 그 특성을 몸으로 익혔다. 지난해 UN에서 열린 코리아 음식페스티벌에 수석주방장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지금은 경기도 양평에서 밥집 '산당'을 운영 중이다. 이곳은 주한 외국대사들의 외식장소로 자주 쓰여 그는 '요리 외교관'이란 별칭도 있다. 지난해 3월 KBS <인간극장>에 소개되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재료 고유의 맛 살리는 '간' 중요"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간이다. 특히 조선 간을 이용해 순수한 맛을 잃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재료가 가진 원래의 맛을 잃지 않으려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간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향이 강한 향신료는 사용을 자제한다.

-습지 식물까지 요리재료로 쓰는데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나.

△자연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채취하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종의 번식력을 이용해 채취하기 때문에 환경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 습지식물도 요리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선택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세계적 요리대학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인종을 불문하고 세계에서 모여든 학생들에게 요리를 가르쳐주고 싶다. 이들은 각자의 나라로 되돌아가 코리언 레스토랑을 만들게 될 것이다. 각 나라 고유의 재료를 이용해 만든 한국식 음식을 세계인들이 즐기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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