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할리우드의 드림웍스가 만든 <슈렉>이라는 만화영화에 대한 입소문이 빠르게 번져 나가고 있다. 그 입소문 가운데는 ‘골때리게 재미있다’ ‘만화영화가 희한하다’ ‘마지막을 말해주지 마라’ 등 재미와 관련된 게 대부분이긴 하지만, 이른바 식자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시각’을 평가하며 이점을 발견하라고 충고한다.
한편으로 이런 입소문과 평가에 힘입어 관객을 끌어 모으고 있는 <슈렉>의 모태인 드림웍스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드림웍스의 중추신경인 제프리 카젠버그라는 사람은 오랫동안 디즈니의 중추를 맡으며 몇 대박을 터뜨린 장본인이다. 따라서 그는 디즈니 만화영화의 상업적 전략과 이데올로기까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음은 물론, 그런 술수를 직접 개발하고 발전시킨 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디즈니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뒤 설욕을 다짐하며 만든 영화사가 드림웍스이다. 카젠버그가 실사영화의 귀재 스티븐 스필버그와 손잡고 드림웍스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수많은 투자자들이 돈다발을 들고 줄을 섰음은 당연하다. 결국 탄탄한 자본과 두뇌가 결합한 드림웍스의 탄생은 미국 영화산업의 주류와 보수성의 핏줄에서 생겨난 것이다.
이런 태생의 근본을 지닌 드림웍스가 <슈렉>을 통해 자신의 핏줄을 부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부정하고 나선 것은, 20세기를 지배했던 디즈니의 거짓환상과 자유의 이데올로기이며 그것을 보장하고 밀어 주었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들이다. 물론 이건 드림웍스가 자신의 근본을 뒤집어 엎을 만큼 혁명적으로 변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슈렉>에서 여전히 불쌍한 놈도 가족이 생기면 행복할 수 있다는 가족주의와 근본이 없는 것들은 그들끼리 공생한다는 차별성까지 해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슈렉>을 무심히 보아 넘길 수만 없는 까닭은, 막강한 보수진영 내에서도 해도 너무한 철면피 속의 썩는 냄새를 느끼는 반항아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런 반항아들의 반칙이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할리우드로 좁힌 시각이긴 하지만 이런 반칙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중요한 까닭은, 바로 이 땅의 보수들이 벌이고 있는 행태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점 때문이다.
도대체 숨통을 틀어막는 것 같은 이 나라의 공기는 게임의 규칙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막가파식의 보수 양아치들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양심과 상식을 야만적으로 제압하고 그것을 옹호하며 역사를 거꾸로 쓰기에 주저하지 않았던 그들은, 일말의 반성과 변화만 보이더라도 그나마 남은 생명을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먹통들이다. ‘선진조국 창조’와 ‘일등신문’이라는 허무맹랑한 구호의 방패 아래서 공생하던 그들은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완강히 거부하며 서로에게 일치단결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야만적인 핏줄에 대한 추호의 의심도 없는 이들에게 <슈렉>같은 보수의 변화따윈 눈에 들어올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결국 <슈렉>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역사발전의 물결속에는 진보적인 성분 뿐 아니라 변화하는 보수의 성분까지 포함된다는 사실과, 상대적으로 그 물결을 가로막고 있는 한국의 보수 양아치들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