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정 관장…2600여점 소장 ‘찾아가는 박물관’ 운영 계획도


“이건 떡살이야. 옛날 평민들은 평생 가야 집에서 떡을 해먹을 수 없었지. 왜냐고. 하루하루 끼니 이을 쌀도 모자랐으니까!
떡쌀을 담글 수 있었던 양반 집에서도 식구들끼리 나눠 먹으려고 하지는 않았단다. 떡은 옛날에는 특별한 행사 때만 만들어 먹고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끼리 나눠먹는, 격조있는 음식이었단다.
지금 즐겨먹는 절편 있잖아. 가로줄이 쳐진 사이로 세로줄이 들어 있는 거 말이야. 알고 보면 깜짝 놀랄 일인데, 원래는 초상이나 제사 따위 흉사 때 쓰는 무늬란다. 그런데 가장 쉽게 찍을 수 있는 무늬다 보니 떡집에서 마구 쓰게 됐지.
옛날 사람들은 떡살 무늬만 봐도 이처럼 그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대.
실편이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가느다란 실같은 무늬를 새긴 것은 아이 돌이나 백일 때 만든 떡이고, 꽃은 시집.장가 갈 때, 둥근 무늬는 설 때 찍는 무늬였단다.
매화는 시집가는 딸아이 상떡인데 매화처럼 추운 겨울을 이기고 시집살이 잘 하라는 뜻으로 친정어머니가 눈물로 반죽해 만든 떡이란다. 어버이 생신 상에 올리는 떡에 다식판으로 찍는 무늬는 옛날 효자가 추운 겨울 고생 끝에 구했다는 잉어랑 죽순이지.”
이처럼 떡살 하나에도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숨어 있는 줄은 어른들도 잘 알지 못한다.
밀양시 초동면 옛 범평초등학교에 터잡은 미리벌 민속박물관(관장 성재정.58)에는 이런 얘기를 잔뜩 감춘 민속품 2600여 점이 있다. 전시돼 있는 물품은 900여 점으로 3분의 1씩 돌아가면서 선보이고 있다.
“옛 여인들은 가마를 타야 할 일이 생기면 하루 전부터 굶었어. 가마를 들고 가는 사람들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 그리고 멀미와 배설을 줄이기 위해서지.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 안에다 조그만 요강을 하나 넣어두었단다.
어머니들은 시집가는 딸에게 나무로 만든 가리개를 선물했었지. 오래 살면서 석류알 같이 많은 자손을 보라고 송학과 석류를 새겨놓았단다. 오늘날 입장에서 보면 무슨 청승이냐 하겠지만 시집가면 다시 보기 어려웠고 해방 직후 평균 수명이 43세였음을 떠올린다면 이보다 더한 소망은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어.”
미리벌 민속 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은 성재정 관장에게 있다. 성 관장은 소장품 하나하나에 얽힌 얘기들을 누구에게나 구수하게 들려준다. 아이나 어른이나 상대방에 딱 맞는 맞춤 설명으로 싫증은커녕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두 시간이 후딱 지나가는 것이다.
또 여느 박물관과 달리 하루 쉬는 날 없이 연중 무휴로 여는데, 성관장은 유리관을 끔찍이 싫어한다. 누구나 만져보고 사진도 마음대로 찍게 하려는 배려 때문이었다. 갓끈을 만지면서 길 떠나던 마음을 헤아리고 자루바가지에서는 소여물 퍼주던 솥까지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단다. 참빗은 머리매무새만 아니라 단정한 속마음까지 담을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박물관측은 오는 가을부터는 ‘찾아가는 박물관’을 운영할 계획도 갖고있다. 학생들이 수백명씩 찾아오는 것보다는 유물 200여 점을 갖춰 싣고 찾아가 보여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또 박물관 앞마당에 전통 한옥을 옛날 방식대로 짓고 민속음식을 손수 해먹는 체험공원과 함께 민속공연장도 만들 계획이다.
우리 것을 잊은 채 살고 있는 청장년과 어린 세대를 위해 과거로 열려 있는 곳. 미리벌 민속박물관은 방학을 맞아 아이와 더불어 한 번은 들를만한 소중한 공간이다.
전화 (055) 391-2882. 홈페이지 http://my.netian.com/~miryb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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