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위한 밥' 빌어가난·허기 달래다

헛제삿밥은 경상도 안동, 대구, 진주에만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헛제삿밥은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을 태두로 한 경상 사림파의 서원 문화가 만들어 낸 음식이기 때문이다.

경상도는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산악이 많고 평지가 적어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중심이다. 지주계급이 적은 반면, 수려한 자연경관만큼이나 걸출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됐다.

조선역사지리서인 <택리지>에는 '조정의 인재 반이 영남인'이라고 적혀 있을 정도다. 이들은 사대부로 국정에 참여했다. 경상 좌도였던 안동의 이황과 경상 우도였던 합천을 중심으로 한 조식은 영남 사림파의 두 축을 이루었고, 사림은 16세기 이후 중앙 정계에 본격 진출했다. 이들이 관직에서 떠나 낙향 후 서원을 짓고 후학들을 길러 냈다. 이 과정에서 태어난 음식이 바로 헛제삿밥이다.

헛제삿밥은 양반들이 춘궁기에 드러내 놓고 쌀밥을 먹기가 미안스러워, 제사 음식을 차려 놓고 가짜로 제사를 지낸 후 제사 음식을 먹은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제사를 지낼 수 없는 천민들이 한이 맺혀, 제사도 지내지 않고 제삿밥을 만들어 먹은 데서 시작됐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서원에서 공부를 하던 유생들이 깊은 밤까지 공부를 하다 출출해지면 제사 음식을 차려 놓고 축과 제문을 지어 풍류를 즐기며 허투루 제사를 지내고 나서 먹던 음식이 바로 헛제삿밥이라고도 한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차려내는 음식을 제수 또는 제 찬이라고도 한다. 기본 제수는 메(기제-밥, 설-떡국, 추석-송편), 삼탕(소, 어, 육), 삼적(소, 어, 육), 숙채(시금치, 고사라, 도라지의 삼색 나물), 침채(동치미), 청장(간장), 포(북어, 건대구, 육포 등), 갱(국), 유과(약과, 흰색 산자, 검은 깨 강정), 과실(대추, 밤, 감, 배), 제주(청주), 경수(숭늉) 등이다. 물론 지체가 높거나 살림이 넉넉한 집안에서는 삼탕, 삼적, 삼채를 더해 오탕, 오적, 오채를 올리기도 하고 지방, 학파, 가문에 따라 제수가 달라지기도 한다.

헛제삿밥도 위 제수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차려내는데, 주재료가 나물, 탕국, 생선 자반 중심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실제 제사를 지낼 때 향불을 피워 향이 나물무침에 배어들게 해 제사 음식의 분위기를 더욱 돋우기도 했다. 그래서 낮에는 절대로 음식을 만들지 않았는데, 낮에 묻힌 나물은 손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제사상이 그렇듯 나물 가짓수도 반드시 홀수여야 하고 한번 무치고 나면 절대로 다시 무침 하지 않았으며 간장 깨소금 참기름 외에 다른 조미료를 넣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또 마른 찬으로는 민물고기나 조기 등을 약간 말려서 쪄냈다. 탕국은 생선대가리 남은 것을 전유어와 함께 끓여서 냈다. 고춧가루가 들어간 찬은 내놓지 않는 데 비해 헛제삿밥에는 배추김치라든가 고춧가루가 들어간 찬이 올려진다.

헛제삿밥은 차려 놓은 그대로 먹기도 하지만 놋대접에 삼채나물과 탕국, 고소한 참기름을 넣고 비벼 조상과 자손이 함께하는 신인공식(神人共食)의 의미가 있다.

헛제삿밥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올리는 3탕, 3적, 3채를 기본으로 차려 낸다. 후식으로 떡과 과일, 식혜를 올린다.

◇찌게(탕)

탕은 오늘날의 찌개라고 할 수 있다. 쇠고기, 생선, 닭고기 중 한가지만을 택하여 조리한다. 양념에 파, 마늘, 고추 등을 쓰지 않는다. 예전에는 탕의 수를 1, 3, 5의 홀수로 하였고 탕의 재료로서 고기, 생선, 닭 등을 사용하였다. 3탕일 경우는 육탕, 어탕, 계탕을 준비하였는데 모두 건더기만 탕기에 담았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국물과 같이 올리는 일도 있으므로 편리한 대로 한다.

헛제삿밥은 국물 그대로 올리는데, 육, 어, 소를 함께 넣어 한 그릇에 끓이기도 한다. 기름에 튀기거나 부친 것으로 육전과 어전, 소전(두부전) 세 종류를 준비한다. 옛날에는 적과 함께 계산하여 그릇 수를 홀수로 만들고자 전은 반드시 짝수로 만들었다. 전과 적을 합하여 홀수가 되어야 하는 것은 재료가 고기, 생선 등 천산(天産)이기 때문에 양수인 홀수에 맞춘 것이다. 육전은 쇠고기를 잘게 썰거나 다져서 둥글게 만들어 계란을 묻혀 기름에 부친다. 어전은 생선을 저며 계란에 무치고 기름에 부친다. 소전은 두부를 직사각형으로 썰어 번철에 지진다.

◇구이(적)

적은 구이로서 제수 중 특별식에 속한다. 옛날에는 육적, 어적, 계적의 3적을 세 번의 술잔을 올릴 때 바꾸어 구워서 올렸으나 오늘날에는 한 가지만 준비하도록 하고 올리는 것도 처음 진수 때 함께하고 잔을 올릴 때마다 따로 하지 않는다. 육적은 쇠고기를 2~3등분 하여 길게 썰어 소금구이하듯이 익혀 사각 접시에 담는다. 어적은 생선 2~3마리를 고춧가루를 쓰지 않고 익혀서 사각의 접시에 담는다. 이때 머리는 동쪽으로 하고 배는 신위 쪽으로 가게 담는다(지방에 따라 반대로 하기도 한다.). 계적은 닭의 머리, 다리, 내장을 제거하고 구운 것으로 등이 위로 가게 하여 사각의 접시에 담는다. 적을 올릴 때는 적염이라 하여 찍어 먹을 소금을 접시나 종지에 담아 한 그릇만 준비한다.

◇나물(숙채)

익은 채소이다. 한 접시에 고사리, 도라지나 무, 배추나물 등 3색 나물을 곁들여 담는다. 또는 각기 한 접시씩 담기도 한다. 추석 때는 배추, 박, 오이, 호박도 푸른색 나물로 쓰는데 역시 마늘, 고춧가루는 양념으로 쓰지 않는다. 김치(침채)는 희게 담은 나박김치를 보시기에 담아서 쓴다. 고춧가루는 쓰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간장(청장)은 맑은 간장을 한 종기에 담는다. 전통적으로 제사에 쓰는 과일은 대추 밤 감, 배였으므로 이것들을 꼭 준비하고 그밖에 계절에 따라 사과, 수박, 참외, 석류, 귤 등의 과일을 1~2종 준비하면 충분하다. 바나나, 파인애플, 키위 등 생소한 수입 과일은 일절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 옛날에는 과일이 지산이라 하여 그릇 수를 음수인 짝수로 하였다.

/김영복(경남대식생활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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