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구분은 접어두자

   
 
 
"9월 말이 추석이지, 9월은 그럼 안 되겠다."

기혼 친구들과 1박 2일로 가을여행 겸 계모임을 계획하는데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레 추석이 낀 9월은 쏙 빠진다. 여름휴가처럼 길게 잡는 것도 아니요, 명절이 낀 달은 바쁜 일이 많은 것도 아닌데 왠지 마음이 조급해진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기 때문이다.

결혼 전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로 여름휴가를 들었지만 결혼 후에는 단연 명절이 꼽힌다. 일일이 장을 보고 제사상을 차릴 필요도 없고 형님들의 고생을 덜어줄 정도로 일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마음이 무겁다.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뜻깊은 자리인데도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게 한국의 며느리, 며느리이기도 했던 우리 어머니의 마음 아니겠는가.

나 역시 멋모르는 신혼 초에는 부담스러웠다. 비법을 전수받으면서 지난해 나름 즐겁게 명절을 보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 명절이 썩 부담스럽지만은 않다.

"뭐부터 할까요. 튀김? 송편? 아무래도 튀김은 뒷일이 많으니까 송편이 낫겠다. 그죠."

명절 전날 남편, 삼촌, 딸까지 거실에 모여 있었다. 이때다 싶었다. 거실에 신문지를 깔았다. 얼떨결에 한 손에 송편 반죽이 한 줌씩 쥐여졌다.

"당신이랑 삼촌은 피를 만들고 저랑 어머니는 속을 다질게요. 그게 쉽겠죠."

못 이기듯 일을 분담하고 선택했다. 삼촌의 송편 피는 두껍고 딸아이의 송편 피는 떡이 됐다. 튀김은 껍질이 벗겨지기도 했다. 그냥 웃으면서 넘겼다. 오기가 생긴 듯 더 열을 올렸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송편과 튀김이 차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비록 삼촌과 남편은 몸이 쑤신다고 중얼거렸고 딸아이는 피곤한 듯 곧 잠이 들어버렸지만 시간은 반으로 줄고 즐거움은 두 배가 됐다.

며느리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단연 가족이 다 같이 즐거워야 할 명절이 마치 시간을 조선시대로 돌린 듯 남녀의 구분이 확실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명절을 보낸 뒤 고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부부싸움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서로 마주 보고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법일 것이다. 그러니까 차 안에서는 서로 조금만 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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