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건너와 향토색에 물들다2세기 초 중국 문헌에 최초 언급

'중국 북송시대의 시인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원풍(元豊)2년(1709년)에 필화(筆禍)사건으로 하옥되었다. 이 때에 아들과 의논하여 평소에는 고기와 채소를 옥(獄)에 들여 보내고, 비상시에는 식해를 보내기로 하였다. 그런데 아들이 지인(知人)을 찾아가 돈을 빌리려 친척에게 뒤치다꺼리를 부탁하고 떠났던 바, 그 사이에 친척은 아무 사정도 모르고 식해를 들여보냈다. 동파는 이제 생명의 마지막인 줄 알고 놀라서, 詩 2首를 지어서 神宗에게 올렸다. 그 애절함을 안 신종은 황주(黃州)로 좌천(左遷)시키는데 그쳤다. 식해가 동파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AD 2세기 초엽 중국의 사전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최초로 등장하기 시작한 식해가 송(宋)나라 때는 잉어식해, 은어식해, 해파리식해, 거위식해, 참새식해 등 식해의 전성시대를 이룬다. 우리나라에는 1600년대 말엽 <주방문(酒方文)>에 처음 등장한다.


◇ 조선 중기 이후 식해에 대한 기록 나타나

우리나라 식해에 관한 문헌 기록은 조선시대 중기인 1600년대 이후에나 나타난다. <주방문(酒方文·1600년대말)>과 <요록(要錄·1680년)>에는 '생선+곡물+소금'의 전형적인 식해 관련 기록이 있다. 1700년대 발간된 <역주방문>에서는 식해에 쓰인 재료 중 생선 대신 소의 내장이나 멧돼지 껍질을 쓰고 후추를 섞은 것도 역시 식해라고 명명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발간된 <음식보>는 '숙성을 촉진하기 위해 생선에다 소금·곡물·밀가루에다 누룩을 섞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식해는 1600년대 <주방문>이 최초의 기록이라 해도 송나라 때부터 이미 많은 정치문화적 교류를 이루고 있었고, 이미 상당 수준 발효음식이 잘 발달된 우리로서는 그 이전부터 식해를 담가 먹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해 본다.

◇ 동해권과 경상도에 다양하게 분포

우리나라에서 식해는 주로 동해권과 경상도 지방에 다양하게 분포되어 식탁의 맛을 사로잡아 왔다.

식해의 종류를 재료별로 분류해 보면 어류로는 가자미식해, 갈치식해, 광어식해, 노가리식해, 대구식해, 도다리식해, 도루묵식해, 멸치식해, 명태식해, 뱅어식해, 우럭식해, 전어식해, 전갱이식해, 조기식해, 쥐치식해, 홀때기식해, 횟대식해 등이 있다. 연채류로는 고둥식해, 낙지식해, 대합식해, 마른 오징어식해, 문어식해, 오징어식해, 한치식해 등이 있고, 어란 및 아가미로 만드는 식해는 명태아가미식해, 명태창자식해, 명란식해 등이 있다.

식해 중 대표적으로 알려진 함경도 가자미식해와 도루묵식해, 황해도의 대합살을 주재료로 하는 연안식해, 강원도 북어식해, 경상도의 마른고기식해인 진주의 명태(북어)와 조기식해 역시 특별한 맛을 지니고 있다.

◇ 경상도의 마른고기식해와 조기식해

경상도 마른고기 식해는 진주를 중심으로 합천, 산청, 함안, 의령, 창녕 등지의 반가 음식에 자주 등장하던 반찬이었다.

북어식해는 북어에 엿기름과 곡물을 넣어 삭혀 고춧가루와 갖은 양념으로 조미해 붉고 맵게 만든 저장음식이다. '이사할때 악귀를 쫓는다'는 유래가 있어 경남 창녕지방에서는 예부터 이사할 때 빠지지 않고 만들어 즐겨 먹는, 전통적으로 내려 오는 향토음식이었다.

북어 2마리, 무 300g, 파·마늘 각 50g, 엿기름 가루 50g, 좁쌀 1컵, 고춧가루 1/2컵, 생강 1쪽, 소금 1/2컵을 준비한 후 북어는 두드려 소금물에 절여 하룻밤 정도 재우고, 무는 씻어 소금물에 절이며 파, 마늘, 생강은 곱게 다진다. 좁쌀은 깨끗이 씻어 일어 밥을 되직하게 짓는다. 절인 무와 북어는 물기를 짠 후 큼직하게 자른다. 넓은 그릇에 무와 고춧가루를 함께 버무려 붉은색이 나면 조밥, 파, 마늘, 생강, 소금, 북어를 넣어 고루 섞으면서 엿기름물을 넣고 버무려 항아리에 꼭꼭 눌러 담아 3∼4일간 따뜻한 곳에서 삭히면 맛있는 북어식해가 된다.

조기식해는 간조기 10마리, 쌀 1.5㎏, 엿기름 200g, 고춧가루 3/4컵, 마늘 50g, 생강 30g, 석이버섯 100g을 준비한 후 쌀로 밥을 지어 고아 엿기름과 고춧가루를 섞어 둔 후, 간조기는 배를 갈라 내장을 빼고 뼈를 발라낸 다음 소금으로 간을 한 후 채반에 널어 꾸덕꾸덕 말린다. 마늘, 생강은 다지고 석이버섯은 밥을 엿기름과 고춧가루를 섞은 것과 버무려 간조기의 배에 차곡차곡 넣어 짚으로 묶은 후, 준비해 둔 양념을 고명으로 얹어 항아리에 담아 그늘진 곳에서 2∼3일 정도 삭히면 경상도 마른고기 일종인 맛있는 조기식해가 된다.

북어식해나 조기식해를 모두 진주식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 음식은 아마 진주감영에서 비롯된 음식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일반 가정에서는 아직도 진주식해를 해 먹는 집이 있겠지만 대중음식점에서 맛 볼수 없는 것이기에 아쉽다.

◇ 함경도 지역의 가자미식해

식해하면 함경도 가자미식해가 대표적이라 할 만큼 유명하다.

가자미를 뼈째 삭힌 다음 조밥과 무를 넣어 만드는 함경도식 가자미식해는 함경도 회국수(함흥냉면)의 꾸미로 올려지기도 한다. 깍두기에 섞어 다시 한번 발효시키면 더욱 새콤해져 맛이 일품이다. 가자미가 많이 잡히는 함경남도 함흥, 신포, 홍원, 단천, 김책 등에서 많이 담그는데 북한에서는 고급 음식으로 분류돼 웬만한 사람들은 먹기 힘들 만큼 귀하다고 한다.

가자미식해는 영양가가 아주 훌륭하다. 우선, 가자미는 성질이 평안하면서 맛이 달고 독이 없어 허약한 것을 보강하고 기력을 북돋워준다. <동의보감>에서는 '가자미를 많이 먹으면 양기를 움직이게 한다'라고 되어 있다.

더욱이 식해는 발효음식인 까닭에 소화가 잘 되어 환자나 노약자, 어린이들의 영양식으로 아주 좋은 음식이다.

한편 가자미식해에는 엿기름 대신 메좁쌀이 쓰이는데, 메좁쌀은 열을 다스리고 대장을 이롭게 하며 조혈작용을 촉진시키며 당뇨와 빈혈을 다스리는 데 효과적이다. 한의학적으로 좁쌀은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보온 식품으로 겨울철 몸이 냉해지기 쉬운 계절에 알맞다. 또한 식해에는 마늘이나 고춧가루 등 김치 재료가 들어가기 때문에 김치에서 얻을 수 있는 항암, 항산화 등 건강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가자미식해는 함경도 북청군 신창에서 태어난 실향민인 속초시 아바이 마을의 '김송순할머니집(속초시 청호동, 전화 (033)632-6908)'에서 담근 것이 맛있다. 영일만 주변의 식해는 주로 가자미·갈치·홍치(일명 홍데기)·오징어·골뱅이 등의 생선에다 쌀 또는 좁쌀을 섞고 고추·무·마늘·생강·엿기름 등을 버무려 발효시킨 것이다.

◇ 경북·동해안 지역의 밥식해

밥식해는 포항과 경주·영덕 등 경북동해안 주민들이 쌀이나 좁쌀에다 생선·무 등을 넣고 발효시켜 즐겨먹는 음식이다. 과거에는 길·흉사를 치르는 집안의 특별 메뉴로 잔칫상 맨앞자리에 올랐고, 멀리 유학간 아들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부모가 정성스럽게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

청정한 동해바다에서 잡히는 가자미, 오징어, 횟대 등 살이 단단한 생선을 주재료로 만드는 밥 식해는 생선을 하루쯤 가볍게 물기를 말려 적당한 크기로 썰어 엿기름으로 하룻동안 발효시킨다. 다음날 고슬고슬하게 지은 고두밥과 채를 썬 무와 함께 다진 마늘과 생강, 소금, 고춧가루 양념으로 빨갛게 버무려 다시 숙성시키는 이중 발효과정을 거쳐 만든다. 특히 엿기름이 생선의 뼈를 부드럽게 해 뼈째 먹을 수 있는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발효식품이다.

밥식해에는 싱싱한 생선에 엿기름, 밥, 무를 넣어 발효시킨 밥식해와 생선 없이 무와 밥을 넣어 발효시킨 소식해, 엿기름을 사용하지 않고 생선과 무를 사용해 발효시킨 식해(일명 젓갈)가 있고, 밥식해 중에서는 횟대로 만든 밥식해가 가장 인기 있다.

'영덕밥식해(경북 영덕군 강구면 강구리 337-1, 전화 (054)732-6770)'에서 팔고 있다. 또 강구농협 농가주부들은 모임을 만들어(054-732-6854) 밥식해를 정성스럽게 담가 전국의 소비자들에게 주문 판매를 하고 있다.

◇ 부산·김해 지역의 갈치식해

부산, 김해, 진주지방의 토속음식인 갈치식해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전통적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신라시대부터 경남 기장연안이 갈치의 산지로 유명해 기장갈치가 서라벌(경주)로 진상되었다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한편 갈칫과(科:Trichiuridae)는 붕동갈치, 동동갈치, 분장어가 있고 비교적 먼 바다의 바닥 가까이에 살며, 8∼9월에 산란을 하는데, 이 갈치는 밤에만 주로 표층에 떠 오른다. 그래서 갈치잡이는 주로 밤에 이루어지는데, 갈치는 성질이 급해 잡히는 순간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해 바로 죽기 때문에 새벽과 아침저녁에 잡힌 갈치가 더 맛있고 싱싱하다.

또한 우리나라 서남해 연안에서 잡히는 갈치와 비슷하며 주둥이가 마치 꽃치와 같은 동갈칫과(科: Belonidae)에 속하는 물동갈치, 꽁치아재비, 항알치가 있는데, 이 물고기는 5월경에 해초 위에 산란을 하고 연해에서 어류를 잡아 먹고 살면서 가끔은 내만(內灣)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여름철에 산란하는 갈치는 늦가을까지 충분한 먹이를 취하면서 초겨울이 되면 남쪽 월동 장소로 이동하는데, 갈치의 이동 통로가 기장 앞바다, 남해 연근해, 제주도를 거쳐 태평양을 향한다.

월동장소로 이동하는 갈치를 중간에서 잡는데, 이 때 잡는 갈치가 제맛이 난다하여 '가을갈치'라고 한다. 가을에 잡은 갈치로 만드는 갈치구이나 갈치찌개, 갈치회무침 등 다양한 요리가 있지만 부산, 기장, 김해 등지에서는 예부터 전통적인 방법으로 갈치식해를 담가 먹었다.

지금도 김해의 '두레마을(김해시 어방동 1103-7, 전화 (055)324-2233, (055)324-2324)'에서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갈치식해를 만들어 손님상에 내놓는다.

갈치식해는 김해평야에서 수확한 쌀, 엿기름, 소금, 파, 고추, 마늘과 함께 갈치를 넣고 일정 기간 삭힌 발효음식이다. 매미 울음이 우렁찬 늦여름에 항아리에 담아 놓은 갈치식해를 꺼내 물만 찰보리밥에 먹는 맛도 일품이지만, 초가을에 따뜻한 밥을 해 곰삭은 갈치식해를 넣고 비벼 먹는 맛은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특별한 맛이다.

/김영복 경남대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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