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 귀찮은 더위에 최고

   
 
 
"열대성 저기압의 영향으로 바다에서 수증기가 운반돼 다량의 비가 오고 겨울에는 풍향이 역전해 건조해지는 아열대성 기후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후텁지근했던 주말. 일기예보를 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위협하는 듯 가라앉아 있다. 저 말은 일시적으로 장마가 온 것이 아니라 기약 없이 아열대성 기후가 계속 될 것이라는 것 아닌가.

후텁지근해 안 그래도 축 처진 몸이 더 처진다. 온도는 29도지만 습도는 한계를 넘어섰다. 눈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에어컨을 바라보니 두 가지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

'여름은 더운 게 당연하지. 이 정도는 참아야지.'

'뭐 어때. 땡볕 보다 더 힘든 게 이런 후텁지근한 날씨야. 오늘만 틀어?'

'참을 것인가 말 것인가' 끈적끈적한 공기를 안고 있는 더위는 계속 에어컨을 유혹했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지난해 '이왕에 산 에어컨, 여름 한때 시원하게 활용해보자' 마음 먹었다. 느닷없이 날아든 전기료 폭우에 휩쓸려 간 적이 있었다. 그 생각으로 간신히 에어컨의 유혹은 떨쳤건만, 이어 끼니 해결 앞에 또 다른 유혹이 도사리고 있었다.

"뭐 해 먹냐?"

"입맛도 없고. 뭐 간단하면서 맛있는 거 없냐?"

불 앞에서 1시간 넘게 씨름하다보면 온 몸이 땀 범벅이 돼 배고픈 것도 귀찮아지는 날씨다. 당연 거침없이 밀려 오는 건 '1분이면 끝나는 콩국수의 유혹'이다.

가장 간편한 우리집 만의 메뉴다. 이 초스피드 콩국수의 사연의 주인공은 아가씨(시누이)다.

"하도 그 집의 콩국수가 맛있기에 수소문해서 그 비밀을 알았잖아요. 해먹어봐요. 정말 맛있어요."

두부 1/4모와 우유 반컵 정도를 넣고 믹서에 갈고 면을 넣고 깨와 소금을 살짝 뿌려주면 끝이다. 맛있기로 소문난 한 콩국수집 주인으로부터 들은 비법이라기엔 너무 간단해, 들었을 때 과연 비법이 맞나 의아했을 정도였다. 콩을 삶고 갈아 만든 콩국수보다 구수한 맛은 덜하지만 간편하고 깔끔해 해먹음직하다.

그렇게 해서 초간단 스피드 콩국수는 여름이면 거부할 수 없는 주메뉴가 됐다. 하지만 그 먹음직함도 3일은 견디기 힘든가보다. 첫 날 만해도 맛있다며 거침없이 먹던 딸아이와 아빠의 표정이 떨떠름하다. 그래도 정식으로 밥을 차려먹는 것은 하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곤욕인가 보다.

"그럼, 우리 쫄면으로 바꿔볼까?"

올 여름도 면의 유혹을 떨치기는 힘들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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