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위로 우뚝 솟은 산정 깊은 계곡 더위 싸악~!

의령군 궁류면 한우산(764m). 정상에 올랐으나 산아래를 내려다보고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찬바람이 휘몰아치면서 구름이 온통 산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름을 뚫고 오른 꼭대기에는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아래로는 드라이아이스를 뿌려놓은 듯 잘디잔 물알갱이들이 바람 따라 등성을 타넘고 있었다.
이리저리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들이 신비감을 더해 주었다. 예닐곱 걸음 앞까지 구름이 다가와 시선을 흩었다. 같이 간 일행들은 ‘전설 따라 삼천리 같다’고 하며 즐거워한다.
아닌 게 아니라 혼자 올랐더라면 누구든지 조금은 겁이 났을 것 같다. 온몸을 구름에 내맡긴 채 이리저리 오가는 동안에 머리카락은 물론 살갗까지 물기에 젖어 촉촉했다.
정상 바로 아래서는 굴착기가 길 다지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울리는 기계 소리에 잠시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군에서 동원한 듯한 일꾼들은 바위틈에다 철쭉인가도 심고 있었다. 구름은 끝까지 걷히지 않았고, 사람들의 움직임에서 현실감을 빼앗아갔다.
산아래에서도 산꼭대기를 향해 사진을 찍기는 불가능했다. 골짜기가 너무 깊고 커서 앵글에 다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진기를 들이대면 암벽만 잡히고, 저기서는 꼭대기 밋밋한 부분만 들어왔다. 조금 더 내려오니까 어느새 산은 육중한 몸집으로 골짜기를 모조리 감싼 채 무뚝뚝한 표정으로 시침만 뚝 떼고 있었다.
한우산은 찬비(寒雨)가 내린다는 말처럼 기온이 몇 도는 낮았다. 그것이 꼭 정상에 걸린 구름 때문만은 아니고, 널따란 벽계 저수지와 끊임없이 샘이 솟아나는 백학동.벽계 계곡을 품에 안은 덕분인 듯했다.
한우산은 계곡 깊고 숲 우거진 빼어난 조건 때문에 패러글라이딩 활공장과 벽계 야영장으로 이미 알만한 사람에게는 잘 알려진 산이다. 98년 만든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마지막 장면을 찍었던 신작로도 유명하다. <아름다운 시절>은 전쟁 중이던 52년과 53년을 배경으로 한 시절을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의용군에 끌려간 남편을 기다리며 몰락해 가는 창희네 집 사람들이 달구지를 끌고 동네를 떠나 산에서 내려오던 길. 좌우로 펼쳐지는 산과 계곡이 바로 한우산과 벽계계곡이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시절>은 예술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는 통념을 간단히 깨고 관객동원에도 성공했다. 대종상 최우수작품상과 도쿄국제영화제 금상 등 나라 안팎에서 상도 여러 개 받았다. 여기에는 한우산과 벽계계곡의 아름다운 풍경이 크게 작용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산꼭대기까지 제 발로 걸어 올라가려는 사람들은, 벽계저수지에서부터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 정상까지 가 닿는 이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온갖 차들이 뻔질나게 오가기 때문이다. 대신 벽계저수지 왼쪽을 따라 나 있는 백학동 계곡을 타고 오른다. 백학동쪽 길로는 정상까지 2시간 30분이 걸린다.
그저 계곡 물에 발이나 담그려는 이들은 군데군데 콘크리트 포장이 돼 있는 벽계 계곡 쪽 길을 즐겨 찾는다. 사람들은 길을 따라 올라가다 적당한 데서 차를 세우고 골짜기로 빨려든다. 바지를 둥둥 걷고 물 속에 발을 담근다. 옆에는 수박 조각도 흩어져 있고 먹다 남긴 김밥도 몇 덩이 뒹굴고 있다.
아직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일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아랫도리만 가린 채 수건에 물을 찍어 냉수마찰을 하는 어떤 아저씨의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어쨌거나, 골짜기는 양쪽으로 우거진 나무그늘 덕분에 어둑어둑할 지경이었고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시원함을 뿜어내었다

▶배낭을 메고 떠나세요

한우산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찾기는 힘들다. 의령읍을 지나 궁류면까지는 갈 수 있으나 봉황대에서부터는 콘크리트로 된 좁은 길이기 때문이다.
창원.마산에서 간다면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진주쪽으로 가다가 의령 나들목에서 빠져나오면 된다. 길을 따라 의령읍으로 들어오면 20번 국도와 만나게 되는데 오른편 창녕 가는 길로 올려야 한다.
20번 국도는 용덕면을 가로질러 정곡면에 이르는데 진등재를 넘어 1011번 지방도와 만나는 지점에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 달린다. 유곡면을 지나 5분도 채 안돼 궁류 장터가 나온다.
이 장터에서 조그만 다리를 건너지 말고 다시 왼쪽으로 뚫린 콘크리트길로 접어들면 얼마 못 가 봉황대가 나온다. 만약 어느 길인지 헷갈리면 더 좁고 우툴두툴한 쪽을 선택하면 된다. 두 길이 다 비슷한 정도로 울퉁불퉁할 때는 무조건 좌회전하면 틀림이 없다. 벽계저수지를 지나 청년회가 관리하는 야영지 주차장에다 차를 세워놓고 백학동계곡으로 걸어올라도 되고 계속 차를 타고 꼭대기 바로 밑에까지 갈 수도 있다.

▶한우산 봉황대.예술촌

궁류면을 지나 한우산으로 가는 들머리에는 봉황대라는 멋진 바위가 있다. 8년 전에는 없던 ‘봉황별장’이 지금은 앞에 있어 절반 이상 풍경이 망가졌다. 멀리서 바라보면 전체적으로 균형을 잃은데다 아래가 거북살스러워 봉황의 머리처럼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깎아지른 모습에서 아직은 웅장함이 느껴진다. 사이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면 사철 마르지 않는 약수로 알려진 석간수(石間水)도 맛볼 수 있다. 또 옆에 있는 일붕사에는 자연동굴에 조성한 암자도 있다.
봉황대 바로 아래 포장마차에서 파전을 시켜 놓고 막걸리를 들이켜도 좋다. 그렇지만 진짜 즐거움은 막걸리에 있는 게 아니라 자리에 앉아 친한 벗이나 연인과 함께 주고받는 이야기의 쫀득쫀득함에 있음을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봉황대를 지나 오르다 왼쪽으로 보면 조그만 2층짜리 초등학교가 눈에 띈다. 이미 폐교한 곳을 빌려 만든 ‘의령 예술촌’이다. 앞마당에 들어서면 시비 몇 개와 함께 양쪽으로 우람한 돌탑이 서 있다. 사이사이 굉장한 장승들이 다양한 표정으로 어우러져 있는 사이를 닭 떼가 오가며 모이를 파먹는다. 꽃밭 쪽으로는 ‘반공소년 이승복’이 아직도 서 있고, 턱이 떨어져 나간 ‘독서하는 아이’가 서양풍 얼굴을 한 채 앉아 있다. ‘시가 있는 풍경’전시실에는 ‘386세대의 사랑’을 주제로 여름낭만전이 지난 14일부터 열리고 있다. 다른 전시장에서는 ‘사계절 테마 풍경전’이 27일까지 계속되고 있다. 28일부터는 ‘한국 소나무’를 소재로 다룬 변갑수 초대전이 이어질 예정인데, 쉬는 날인 매주 월요일은 피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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