弘益(홍익) 개장국…개고기가 맞지 않는 자들을 위해 쇠고기를 쓰나니…

우리 음식 중에 얼큰하고 감칠맛 나는 탕(湯)중에 육개장이 있다. 국어사전에는 이 육개장을 육장(肉醬)이라 한문 표기하고 '쇠고기를 푹 삶아 결대로 찢어 고춧가루, 파 마늘, 간장 기름, 후춧가루로 양념하여 끓여 낸 국'이라고 하였다.


     
 
  서울식과 대구식 육개장은 조금 차이가 나지만, 육개장은 예부터 삼복 더위에 즐겨먹던 음식이었다.  
 
◇삼복에 즐겨먹던 음식 중 하나가 '개장국'

육개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육개장이라는 단어를 '육'과 '개장'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우선 우리는 육=고기(肉)하면 쇠고기를 말한다. 개장은 개(狗)와 장(醬)을 말한다.즉 개장국을 말한다. 요즘 보신탕, 사철탕이라 부르고 북한에서는 단고기국이라 부르는 개장국(狗醬)은 예로부터 우리민족이 삼복에 즐겨 먹던 음식 중의 하나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 '복날에 개를 고아 자극성 있는 조미료를 얹은 이른바 개장이란 것을 시식하여 향촌 여름철의 즐거움으로 삼았다. 개고기가 식성에 맞지 않는 자는 쇠고기로 대신하고 이를 육개장이라 하여 시식을 빠뜨리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809년에 저술된 <규합총서>에 멍멍이찜의 요리법이 있다.

<조선요리(朝鮮料理)>나 1939년 조자호(趙慈鎬)가 쓴 <조선요리법(朝鮮料理法)>에 만들기가 소개되어 있다.

△ 재료 : 개고기 1.2Kg, 청장(진하지 않은 간장), 고추장 3큰술, 기름, 초, 깨소금, 후춧가루, 미나리 50g, 파 50g, 밀가루 3큰술, 소금, 참기름

△ 만들기 1. 살진 개 한 마리를 법대로 잡아 씻지말고 창자만 깨끗이 씻어 청장에 고추장을 조금 넣고 기름, 초, 깨소금, 후춧가루, 미나리, 파를 넣어 함께 삶는다. 2. 먼저 고기를 넣고, 그 다음에 나무새를 넣고 뚜껑을 제껴두고 물을 붓는다. 그리고 수건으로 둘러 김이 나지 않게 하여 끓는 소리가 나면 불에서 내려 뚜껑의 물을 버리고, 찬물을 부어 뭉근한 불로 끓인다. 3. 이렇게 3회를 하면 고기가 무르고 뼈가 스스로 빠진다. 4. 다 고아지면 살은 고기 결대로 손으로 찢고 칼은 대지 않는다. 5. 내장은 썰어 다시 삶은 국에 양념하고 간을 맞추어 국을 끓인다. 이때 밀가루를 많이 풀면 걸쭉하다. 개장은 깨소금과 기름을 많이 쳐 양념하여 다시 주물러 중탕하여 쓴다.

◇개고기 못먹는 사람들은 육개장·닭개장

본초에 살구씨, 마늘, 소천어와 같이 먹지 말고, 개를 구워 먹으면 소갈증이 난다고 하였다. 이 개장국에 개고기 대신 쇠고기를 넣어 끓이는 게 다를 뿐 개장을 끓이는 법과 다를 게 없다. 그리고 닭고기를 넣으면 닭개장이 된다.

삼복더위에 개고기를 못 먹는 사람들을 위해 태생된 음식이 바로 육개장과 닭개장이다. 이 육개장에 대해 1940년 손정규(孫貞圭)가 쓴 책에 이렇게 적혀 있다. "양지머리와 사태를 쇠양 등과 함께 푹 삶아 건져내고 국물을 식혀서 기름을 걷어 낸다. 건져낸 고기는 결대로 찢거나 칼로 썰고 양도 저민다. 이 고기나 양을 진간장, 다진 파와 마늘, 참기름, 깨소금, 후춧가루 등으로 양념한다. 한편 고춧가루에 참기름을 끓여 넣어서 잘 개어 놓고 대파를 데쳐 놓는다. 이들을 끓어오르는 장국에 넣어 한 소끔 끓여 낸다." 이것이 서울식 육개장이다.

◇'서울식 육개장'으로 유명한 집

을지로 3가에 가면 '안성집'(1957년 개업·전화 02-2279-4522)이 있다. 여주인은 안성집 가는 골목 초입에 있는 대구탕으로 유명한 '조선옥' 초기 멤버로 10여 년 근무하다 독립해 '안성집'을 열었다. 빨갛고 탁한 국물에 고기와 파만 보이는 육개장은 일반적 육개장에 비해 투박하고 꾸밈이 없다. 하지만 고춧가루를 사골 우릴 때부터 넣고 오래 끓여 맛 내는 요소들이 깊게 어우러진 국물은 얼큰하고 뒷맛이 개운하다. '조선옥' 대구탕이 요즘의 육개장으로 탈바꿈하는 과도기 맛이라 할 만하다.

북창동 '우선옥'(02-753-2602)하면 서울식 육개장의 대표적인 집이다. 한우뼈와 양지머리, 치맛살 등 모두 순수 한우고기에 고사리, 토란대, 대파, 고춧가루, 채소 등 국산만을 고집한 신토불이 육개장이다. 특히 놋그릇에 담아 낸 육개장은 고유의 미감을 더했고, 조미료도 전혀 안 들어가 가정에서 먹는 맛과 거의 흡사하다.

1963년 문을 연 충무로 '진고개'(02-2267-0955)도 있다. 국물에서 생강향이 나는 진고개 육개장은 검붉은 고추기름 때문에 맵고 기름져 보이지만, 막상 먹어보면 맵고 은근한 맛이 나는 것이 국물맛도 시원하다. 건지로 쪽파와 삶은 계란을 넣어주는 점이나, 생강향과 후추향 나는 진한 국물이 특이하다.

서울식 육개장 중 고급스런 맛을 내는 집하면 을지로 '우래옥'(02-2265-0151)을 들 수 있다. 이 집은 냉면도 유명하지만 넉넉하게 찢어 넣은 양지머리 고기에 파와 고사리, 계란, 당면으로 맛을 더했다. 고깃국물의 진한 감칠맛이 난다.

서울식 육개장집 중 공덕동 '뚱땡이집'도 육개장집으로는 남다른 집이다. 지하철 공덕동 5번출구를 나와 언덕을 따라 올라 가다보면 왼쪽에 위치한 이 집은 전화도 없지만 육개장 값으로 3000원을 내면 100원을 거슬러 준다.

대전 동구 삼성동 삼성초등학교 뒤에 위치한 '명랑식당'(042―623―5031)은 1975년 충북 청주에서 10평 남짓 점포로 시작하여 1978년 대전의 현재 위치로 이전해 지금까지 성업중이다. 대전 뿐만 아니라 전국의 식도락가들에게 널리 알려진 집이다.

◇육개장이 대구식으로 변한 게 '대구탕'

이 육개장이 대구식으로 변해 대구탕이 되었다. 1869년에 씌어진 연대(延大) <규곤요람> 육개장에는 "고기를 썰어서 장을 풀어 물을 많이 붓고 끓이되 썰어 넣은 고기점이 푹 익어 풀리도록 끓인다. 종지 파잎을 썰지 않고 그대로 넣고 기름 치고 후춧가루를 넣는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규곤요람>은 육개장보다 대구탕(大邱湯)에 가깝다. 대구탕은 서울식 육개장과 비슷하지만 고기를 찢어서 넣는 게 아니라 덩어리 고기를 넣는다. 아마 연세대 <규곤요람>의 육개장이 변형되어 대구탕이 된 것 같다.

대구는 다른 지방에 비해 지형적으로 분지형태로 되어 한 여름이 되면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푹푹 찌는 날씨를 견뎌내기 위해 삼복에 개장국을 즐겨 먹지만 이열치열(以熱治熱)의 대표적 음식 개장국(狗醬)조차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변형되어 태생된 음식이 바로 '대구식 육개장'이며 이를 다른 이름으로 '대구탕'이라 부른다.

대구탕에는 파, 부추, 마늘 등을 엄청나게 많이 넣는다. 이 재료 모두 냄새가 진하다. 이 냄새 성분이 유황화합물이다. 이 유황화합물은 충분히 삶으면 냄새 성분의 일부는 휘발하고 감미성분(甘味成分)으로 변한다. 이것은 유황화합물이 프로필 메르카프탄(propyl mercaptane)으로 변하는데, 이것의 단맛은 설탕의 50~60배라고 한다. 따라서 대구탕에는 매운맛 속에 단맛이 도는 독특한 맛을 낸다. 대구에서 예전부터 유명했던 집은 해방 전 대구 약령시 뒷골목에 있던 '청도식당'의 육개장이 유명했다.

◇대구식 육개장에서 '따로국밥'까지

경북 경주가 고향인 소설가 김동리(金東里) 선생은 "따로국밥이라고 하면 누구나 오늘날 서울의 그것을 생각하게 되겠지만 내가 말하는 육개장은 그것이 아니다. 우선 빛깔부터 오늘날 그것처럼 시뻘겋지 않고 고기를 그렇게 가늘게 찢어서 놓는 법도 없지만, 재료부터 상당히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물론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렴풋한 기억으로 일종의 쇠고기 국인데, 풋고추와 부추(정구지)와 파를 엄청나게 많이 넣어서 끓인 것으로 생각된다. 고기는 살코기인지 내장인지 뼈인지 어느 것이 등심인지 잘 모르겠다. 하여간 풋고추, 부추와 마늘 따위를 엄청나게 많이 넣어서 그것을 곤 물로서 절로 국물이 될 정도가 아니던가 생각된다. 하여간 이 음식은 특별한 것으로 내가 어릴때는 고향인 경주에서 가끔 먹을 수 있었고 그 뒤에는 대구나 부산서 두 번씩 먹어 본 기억이 있다"고 썼다.

우리나라 최초의 맛 칼럼니스트인 홍승면(1927~1983) 선생이 1976~1983년까지 쓴 <백미백상(百味百想)>에 보면 "육개장과 비슷했던 대구탕(大邱湯)은 지금 어디로 갔는지 육개장에 자리를 양보하고 은퇴한 것인가. 지금 서울거리에는 대구식 따로국밥이 퍼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서울에서 대구탕집으로 제일 오래된 집이 있다. 을지로 3가 '조선옥'(02-226-0333)으로 해방전 1930년대부터 있던 집이다. 여기서 대구식 육개장 → 대구탕 → 따로국밥으로 이어진다.

따로국밥은 1940년대 초 대구 포정동 중앙사거리 나무장(場)에 국밥집이 있었는데, 이 당시 이 국밥집들은 대구식 육개장을 가마솥에 끓여 뚝배기에 밥을 담아 끓는 대구탕 국물에 뜨끈하게 토렴하여 담아 주었는데, 1946년 문을 연 '국일 따로국밥집(대표 최영자 : 대구시 중구 전동 1. 전화 053-253-7623)'의 손님들이 육개장을 주문할 때 "따로!" 하며 밥과 육개장을 따로 시키면서 '따로국밥'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이 따로국밥이 서울까지 상경하여 전국의 식도락가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었다.

/김영복(경남대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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