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 택시기사로 변신했다·’ 이 말만 들으면 우선 또 무슨 포석을 까는 것인가 하는 선입견이 생긴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정치인은 부패와 타락의 상징처럼 여겨져 불신의 벽은 높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사람에게 희망을 건다>에서 박계동 전국회의원이 택시기사로 변한 사연을 풀어놓는 자전적 에세이를 읽으면 솔직하고 담백한 그의 인간성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실체를 폭로했던 ‘스타의원’이었지만 그것은 그의 정치인생에 종지부를 찍게 한 동기이기도 했다. 비자금 실체를 알리려 시국강연회 등에 치중하다 지역구를 잘 돌보지 못했고 이는 1996년 총선때 재선실패의 결과로 드러났다. 또 시국강연회연설로 선거법위반으로 구속되었고, 선거기간중 사면·복권이 되지 못했다. 선거가 끝난 뒤 8·15가 되어서야 사면복권됐다.

4·13총선은 그에게 다른 고민거리를 제시했다. 진로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정치가 귀족화하고 국민의 비판을 듣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바꾸어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은 그로 하여금 현실로 눈을 돌리게 했고 가장 시급하게 와닿은 것이 서울의 복잡한 교통문제였다. 그 교통시스템을 알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택시기사였다.

택시운전 면허증을 따기위해 시험을 보러가던 날. 전철을 타고 가는 동안 그는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쑥스럽기도 했으나 시험공부할 시간이 없었으므로 전철안에서 문제집을 펼쳤다. 문제집마다 ‘택시기사 자격시험 문제지’라는 글씨가 큼지막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문제지로 꽂혔다. 다행히 합격했다.

나름대로 프로기사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화장실에서 “어서 오십시오, 어디로 모실가요”를 연발하며 친절연습을 하기도 하고, 어떠한 경우라도 화를 내지 않겠다는 신조를 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루 12시간의 근무, 사납금을 채워야 하는 압박감에다 바가지로 머리를 얻어 맞고, 술취한 승객의 오줌시중까지 들고, 냄새나는 승객을 싣고 욕까지 얻어먹는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경험을 한다.

그럼에도 그는 ‘소리없이 이웃을 돕고, 우유를 배달하거나 신문을 돌리고 새벽의 쓰레기길을 청소하는 사람들, 새벽손님을 모시려 캄캄한 밤에 대문을 나서는 버스기사, 전대에서 장사한 돈을 몇번이고 헤아려보는 시장상인들’같은 이런 사람들이 좋다고 한다. 그는‘택시는 나의 마음을 닦게 하는 도장’이라 자랑스레 말한다.

책은 4장으로 구성되어있다. 택시기사로서의 삶과 그 길에 접어들기까지의 시간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동네 아저씨처럼 들려준다. 특히 거의 수배와 투옥생활로 점철된 지난 시간들은 콧등을 시큰하게까지 한다. 그는 6·25 전쟁 와중에 태어났고, 고려대학시절은 유신헌법으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1974년엔 민청학련사건이 있었고 이듬 해엔 긴급조치 9호가 발동되기도 했다. 비자금폭로는 1992년 초선의원으로 당선된 뒤 3년만의 일이었다.

‘박계동은 재야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홍길동이라 불렸다. 모두 다 잡혀도 그만은 언제나 살아남았다. 내가 아끼는 후배 박계동이 택시기사를 한다 했을 때 역시 그 답다고 생각했다’(김지하 시인), ‘그와 나는 유신시절 공범으로 서대문구치소에 갇힌 적이 있었다. 그는 감옥속에서도 항상 바보처럼 웃고 다닐 정도로 극한적인 상황에서조차 낙관적인 사람이다.’(최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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