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도 다양한 욕구 가진 사회 구성원”


14일 오후 2시 30분, 마산 가톨릭 여성회관에서는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두발제한 반대운동을 벌인 청소년 인권운동 1세대의 대표주자 박준표(21.한국외국어대 1년.청소년 웹진 ‘사이버 유스’편집장)씨가 마산 YMCA 청소년 회원 30여 명을 상대로 ‘청소년운동과 조직활동’을 주제로 강의를 한 것이다. 이날 강의는 마산 YMCA가 지난 7일과 14일 2주에 걸쳐 마련한 ‘청소년 인터넷학교’ 프로그램중 하나였다.
박씨에게 학교는 ‘억압과 통제, 규율과 체벌, 훈육과 보호라는 겉치레’일 뿐이었다.
박씨가 다닌 고등학교는 “숨어서 담배 피울 공간도 없었고, 대화도 없이 까닭없는 규제만 있었으며 7시에 출근해서 10시에 퇴근하는” 곳이었다.
학교에는 3cm의 자유와 상상력만이 있었다. 앞머리 3cm, 귀밑머리 3cm까지만 자유가 있었고 그 너머에는 통제와 체벌이 있었다.
선생님들은 3cm를 넘으면 불량해진다며 아무런 동의도 없이 머리를 잘랐고 “왜”라고 묻는 학생들에게는 “그래, 너 잘 났다”며 폭력을 휘둘렀다.
박씨는 머리가 잘릴 때 “사람의 인격과 함께 표현의 자유도 같이 잘리고, 자기자신에 대해 결정할 권리와 판단할 능력도 뭉개진다”고 느꼈다.
학교를 통한 뜻깊은 일이라든가 추억 만들기는 아예 이뤄질 수 없는 꿈이었다.
두발제한 반대운동. 지난해 5월 청소년 웹 연대 with(http://www.mywith.net)를 통해 시작된 이 운동은 5개월만에 10만명이 넘는 서명을 받아내면서 커다란 관심을 끌었다.
방송.신문을 통해 사회문제로 제기됐으며 교육행정당국은 두발 제한에 대한 토론회를 열라고 각급 학교에 지시하기까지 했으나 결국 실패한 운동이 되고 말았다. 청소년의 표현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에 대한 판단능력은 전혀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박씨는 두발제한에 대한 입장 차이는 상상력과 감수성의 차이와 이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자유를 꿈꾸는 이는 억압이라 말하고 ‘탈선.불량’이라고 보는 사람은 ‘보호’라 하는데 무엇이 옳은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박씨는 “대만에는 12시의 상상력이 있다”고 말한다. 두발제한은 10년 전 철폐됐지만 대신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거리를 돌아다니는 청소년은 경찰서 신세를 져야 하는데 대만의 어른들이 밤늦게 청소년이 나다니면 큰일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그런 규제가 없지만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물론 대만에서 두발제한이 없기 때문에 청소년 문제가 더욱 심해졌다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른들의 경직된 상상력은 곳곳에 진을 치고 있다. “청소년은 미래의 주인공이다.” 청소년을 보는 어른들의 시각이 담긴 것 가운데 가장 그럴듯한 말이다.
하지만 실은 “청소년은 현실의 주인공이 아니고 현실의 주인공은 어른들이며 따라서 청소년은 주인공의 보호와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삼단논법의 기초, 또는 “청소년들이 미래의 주인공이 되려면 현실에서는 다른 욕망을 버리고 열심히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교훈의 토대.
이제는 청소년도 여러 가지 욕구를 갖고 있는 현실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봐야 하고 청소년 스스로가 새로운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그렇게 깨닫고 말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인터넷 공간은 청소년들에게 세상을 향해 발언하는 입이 되고 사람과 사람, 세상과 자아를 이어주는 끈이 될 수 있으며, 청소년 인권문제에 대한 열린 토론이 가능할 때 학생과 선생님 사이의 믿음도 살아나게 된다”는 것이다.
두발제한이 없어졌을 때 시원하게 잘라버리기 위해 등뒤로 머리를 치렁치렁 기르고 있다는 박씨는 학생들에게 이메일 pyo@mywith.net로 연락을 주면 꼭 답장을 보내겠다는 말로 강의를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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