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을 못마땅히 여겨 까닭없이 탓하고 원망하는 짓


1960년대 이전, 우리들의 어머니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 중에 하나가 “지청구 좀 부리지 말라” 였다.
‘어떤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겨 까닭없이 탓하고 원망하는 짓’을 ‘지청구’라 하고, ‘지청구 댄다’ ‘지청구 부린다’고 한다. 순수한 우리말이다.
“그런데도 나의 지청구에 체념을 한 듯하였다”, “정주 바닥에 퍼질러 앉았던 매월이가 선잠깬 주막 노파를 붙잡고 지청구가 늘어졌다”(김주영 <객주> 중)는 용례가 있다.
소견 있는 어른들보다 철없는 아이들의 지청구는 많은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고 슬프게 한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의 아이들의 지청구가 까닭 없는 것이 아니라, 그 탓하고 원망하는 것이 단순히 배가 고파서, 사랑 받지 못해서 그리한 것 같다.
어린것들의 배를 채워 주지 못해서 배가 고프고, 몸도 불편했고, 사랑해 주지 않으니 막연한 불안감에 짜증을 내며 보챘을 것이다.
일제(日帝)가 이 땅을 강점하여 모든 것을 빼앗아 갔을 때, 광복 후의 혼란한 사회에 이리저리 끌려 살 때, 6.25 전쟁으로 가정이 거덜이 났을 때, 애면글면 살았던 우리네 어버이들은 못 먹이고 못 입히고 따뜻한 잠자리에 재울 수가 없었다.
어린아이가 학교 가는 시간에 골목에서 마을 밖에서 쫓겨나며 울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거리에서 아파트마을의 길에서, 놀이터에서 고만한 아기들과 어린이를 만나 본다. 한결같이 예쁘고 귀엽게 생겼고, 포동포동 튼실하고, 몸맨두리가 의젓하기까지 하다.
두세 살배기는 유모차나 자전거를 타고 놀고, 엄마와 손 마주잡고 걷기도 하고, 좀더 큰 아이들은 킥보드나 롤러스케이트, 큰 자전거를 타고 내달으며 신나게 논다.
포대기에 싸서 안고 업고 해도 짜증내고 보채는 모습은 없고, 어미 치마꼬리에서 떨어져 독립하여서는 티없이 밝은 얼굴로 잘도 노는 아이들, 지청구 같은 것은 볼 수 없다.
이제는 먹이고 입히고 하는, 물량이 확보된데다가 사랑과 인격적 대우(.)까지 받아서일까. 우리가 모든 것이 이만큼은 살게 되어서인가.
어려웠던 시절에 ‘지청구’를 제발 그만 하라던 말씀의 어머니는 세상 떠나시고, 그 말마저 잊혀가고 있다. 그리하나 말과 함께 그 시절이 기억에서 떠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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