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고기 먹고싶어요" 진땀 뺀 스무고개 놀이

   
 
 
"엄마, 친구가 이렇게 때렸어요." "어떻게?" "이렇게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 "때리지 마, 그랬어요." "그래, 잘했어. 친구가 때리면 그렇게 말하는 거야."

아이는 순수해 있는 그대로 말한다고 누가 그랬던가. 처음엔 4살 난 딸아이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다음날 아이가 그 날 놀았던 얘기를 풀어내다 느닷없이 또 이런 얘길 했다. "재밌게 놀았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이렇게 때렸어요."

아이는 '왜'라는 물음은 무시하고 어떻게 때렸다고만 했다. 뭔가 꺼림칙했다. 믿고 맡기지만 이젠 자초지종을 알아봐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상상력이 풍부한 4·5살 난 아이들은 부모가 흥분하면 할수록 더 상황을 부풀려요. 말 하다보면 전혀 다른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죠. 살짝 치고 지나가도 아이들은 표현에 한계가 있어 때렸다고 해요."

친구들과 놀 때도 수없이 많은 오해가 오갔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이 녀석. 매일같이 친구가 때렸다며 말할 때마다 은근히 속을 끓였던 엄마 마음을 알긴 알았을까.

엄마의 속을 뒤집은 며칠 뒤 이번엔 아빠 속을 확 뒤집은 반찬사건이 일어났다. 평일 어린이집에서 세 끼에 중참까지 해결하고 오는 딸아이. 주말은 아이의 밥상을 차려 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엄마가 없는 사이 아이의 밥 반찬을 준비하게 된 아빠. 딸아이가 아빠를 졸졸 따라다니며 말했단다.

"아빠, 고기가 먹고 싶어. 고기 주세요."

고추장 양념은 안 먹는다는 것을 알았던 아빠. 아이가 좋아하는 간장양념에 돼지고기를 절여 냉장고에 1시간 정도 숙성했다. 밥 시간이 지나자 배가 고프기 시작했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맛있게 해주겠다는 마음에 고픈 배를 부둥켜안았던 아빠. 한 상 가득 차리고 딸아이를 부르는 순간 아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거 말고, 고기~"

도대체 어떤 고기를 말하는 것일까. 양념 안한 고기를 말하는 것일까. 그때부터 생고기를 굽기 시작한 아빠. 밥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하지만 이젠 됐겠지. 밥상에 앉은 아이. "이거 말고~ 앙∼"

남편은 도대체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며 나에게 전화를 했다. "뭘 달라는지 모르겠어." "혹시, 생선인가?"

그랬다. 딸아이에겐 생선도, 돼지고기도, 닭고기도 모두가 고기였다. 냉장고에 언 조기를 보여주자 그제서야 아이는 울음을 그쳤다. 녹이고 굽는데 30분. 아이가 맛있게 먹는 순간 아빠는 배가 고파 쓰러졌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