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 속 같은 푸근함이 그립다

   
 
 
"이야, 이 얼마 만에 먹어보는 제대로 된 밥상이야."

반가운 밥상이다. 밥집 이름이 시골밥상이다. 탁자 대신 동그란 앉은뱅이 밥상이 놓여 있다. 스테인리스 밥 그릇의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뚝배기에 칼칼한 된장이 보글보글 끓는다.

고춧가루 솔솔 뿌려 손으로 쓱 버무린 콩나물 반찬, 마늘 넣고 살살 볶아 참기름으로 살짝 간한 깻잎나물, 물컹한 버섯볶음 등 오색반찬이 하나 둘 따라나온다. 그 옆에는 입에 넣으면 단 맛이 감도는 삶은 양배추가 있다. 밥을 얹고 젓갈을 살짝 올리니 그 맛이 포근하게 감돈다. 마지막엔 물을 넣고 팔팔 끓인 누런 누룽지가 올랐다. 한껏 들이켰다. 이대로 이불 깔고 낮잠을 청하면 그 어떤 것이 부러우랴.

얼마 전 식당에서 먹었던 밥상이다. 평범한 밥상 같지만 엄마의 품 같은 이런 밥상을 결혼 후에 제대로 차려보지도, 먹어보지도 못했다. 변명 같지만 바쁜 일상 탓에 하루하루 간단한 메뉴로 끼니를 때우다 보니 그렇게 됐다.

학창시절 입맛이 까다롭진 않았지만 밥상에 푸른 채소만 가득하면 "엄마, 바빠서 못 먹고 가겠다"며 투덜거리고 집을 나서기가 부지기수였다. 대학 다닐 땐 달착지근한 안주 맛에, 회사 다닐 땐 맵싸한 식당 음식 맛에 빠져 엄마 밥상을 더 멀리 했다.

엄마의 밥상이 가장 그리웠던 때가 떠오른다. 임신 7개월 때다. 요리책을 뒤졌다. 없는 재료는 어찌나 많은지…. 만들긴 만들어도 뭔가 허전하고 한번 만들어볼라 치면 반나절이 훌쩍 가버렸다. 결국 며칠 안되어서 계란, 김치, 김, 김치찌개로 돌아왔다.

엄마 밥상이 그리워졌다. 간간하면서 구수한 그 맛이 아련해졌다. 결혼하고 일주일도 안 돼서 음식을 하다 말고 엄마가 보고싶다며 펑펑 울었다. 그리고 뒤뚱뒤뚱 임신 7개월이 된 몸으로 남편과 함께 어시장에 갔다. 엄마밥상이 영화처럼 지나갔다. 봄에는 쑥국·씀바귀·돌나물과 여름에는 오이냉채, 막장에 푹 찍어먹는 커다란 고추가 늘 있었다. 엄마의 밥상은 그렇게 따뜻한 것이었는데 왜 결혼 전까지 차갑게만 대했는지 미안한 마음이 솟구쳤다.

요즘도 가끔 손맛이 젖어있는 나물반찬과 나른한 내 몸을 확 풀어주는 구수한 국과 입천장이 벗겨질 정도로 뜨끈한 누룽지를 흉내내 본다. 언젠가는 엄마의 맛, 깊은 맛이 우러나겠지 내심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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