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과학백과사전 "냉면 중 제일은 평양냉면·진주냉면이라"

◇ 북 평양냉면, 남 진주냉면

필자가 1998년도 중국의 도문 지역을 여행하다, 북한에서 넘어 온 1994년 1월 25일 북한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가 발행한 <조선의 민속전통 1식생활풍습편>을 보게 되었다.

식생활문화를 연구하는 필자 입장에서 반가운 김에 책을 읽어 보다 깜짝 놀란 내용이 눈에 띄었다. "냉면 중에 제일로 여기는 것은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이다."라는 구절이다.

평양냉면은 알겠지만 진주냉면은 금시 초문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남한에서 우리가 함흥냉면이라고 부르는 함흥식 물냉면은 농마국수, 비빔냉면은 '회국수'라고 씌어 있다는 사실이다. 평양냉면과 진주냉면만 냉면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평양냉면은 남한 전 지역에 전파되고 함흥 농마국수나 회국수는 함흥냉면으로 둔갑해 있는데, 진주냉면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점점 쇠퇴하다가 1980년도 중반까지 진주시 중앙시장 나무전거리에서 평화식당을 운영하던 아주머니(김점순·61)를 끝으로 서서히 사라져 버렸다.

진주냉면을 언제부터 만들어 먹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나 구전이 명확하지 않지만 1900년도 초반까지만 해도 강수영(1909년 출생) 씨 어머니인 순흥안씨인 안장금 할머니가 운영하던 수영이네 집으로 불리던 수영식당 냉면집을 비롯해서 진주시내에 서너 군데가 있었다고 한다.(진주시 상봉동 거주 강대백 (83)씨 증언)

당시 진주시내에는 북 평양기생, 남 진주기생이라고 불릴만큼 미색(美色)과 재색(才色)이 뛰어난 관아의 진주 기생과 숙수(요리사)들이 조선이 망하면서 권번과 요정(料亭)으로 나와 기생문화가 발달되었고 이들은 돈 많은 왜인(倭人)이나 지주(地主)등 한량들과 함께 기생놀이를 하고 야심한 밤에 냉면집을 찾아 냉면을 야참으로 먹었다고 한다. 특히 요정이 많고 기생들이 많이 살던 진주시 옥봉동과 가까운 냉면집들이 장사가 잘 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기생문화와 냉면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당시 기생뿐만 아니라 일반 부유한 가정집에서도 냉면을 배달시켜 먹어 냉면집에는 배달을 주로 하는 남자 하인들이 서너명씩 있었다고 한다.

◇ 사라진 진주냉면, 필자의 노력으로 재연

평양냉면이 동치미국물을 사용했다면 진주냉면은 동치미국물 대신 거제, 남해, 사천 등지에서 잡히는 죽방멸치를 이용한 멸치장국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이한 것은 멸치장국을 끓일 때, 멸치의 잡내를 없애기 위해 동이나 무쇠를 불에 벌겋게 달궜다가 끓는 멸치장국에 넣어 순간적으로 높은 온도로 가열하여 멸치의 잡내를 없애는 순간가열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멸치장국을 기본으로 하여, 진주냉면을 조리하는 집에 따라 각자의 맛을 내는 비법이 다른데, 첨가하는 재료와 육수의 맛이 조금씩 달랐다.

예를 들어 평화식당 계열의 김점순 아주머니는 멸치장국을 만들 때 멸치, 개발(바지락), 건홍합, 마른명태, 표고버섯 등을 넣고, 재래식간장으로 간을 맞추며 멸치장국을 만들었다. 수영식당 계열인 정태호(71) 씨는 멸치와 재래식 간장을, 1928년부터 자기의 어머니가 진주냉면을 했다는 상봉동 거주 김양훈(81) 할머니는 멸치와 양파를 넣고 재래식 간장으로 간을 했다.

한편 이 사람들 모두 쇠고기의 사태살 또는 정강이 살을 푹 고아 기름을 건져 내며 육수를 내 멸치장국으로 빛깔과 맛을 맞추었다.

그런데 여기서 김점순 씨와 정태호 씨는 쇠고기 덩어리 살을 넣어 삶는데, 김양훈 할머니는 쇠고기를 잘게 편육으로 하여 마늘을 빻아 재래식 간장으로 양념한 후 쇠고기 편육을 무쳐 두었다가 이것을 삶아 육수를 만들었다.

김점순 씨는 꾸미로 김장배추김치를 그대로 잘게 썰어 얹고 배·오이를 채 썰어 얹고, 계란 황백 지단, 실백과 깨소금을 얹어 내 놓았다.

여기서 필자는 진주냉면의 공통된 특징을 알게 되었다. 첫째, 순메밀에 고구마전분을 물에 개어 이 전분물로 메밀 반죽을 하여 면발을 뽑는다는 것이다. 둘째, 쇠고기 육수에 멸치장국으로 육수의 빛깔과 맛을 낸다는 것이다. 셋째, 김장배추김치를 채 썰어 꾸미로 얹는다는 것이다. 넷째, 진주지방의 제사음식으로 만들어 먹던 쇠고기 육전이 꾸미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복과 해삼, 석이버섯을 데쳐 채를 썰어 냉면 꾸미로 올렸다고도 한다.

이러한 다섯가지의 특징이 진주냉면의 원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다섯가지의 원형이 훼손된 냉면은 진주냉면이라 할 수가 없으며, 이 원형을 중심으로 맛이나 모양을 내기 위해 추가되어 조리된 냉면은 모두 진주냉면이라 할 수가 있다.

한양대학교 고 이성우교수가 쓴 <한국의 조리문화사>에는 "옛날부터 찡하다는 표현의 평양냉면이 유명하였지만 이 평양냉면에 견줄만한 진주냉면은 남국적인 맛으로 유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주냉면의 원형을 복원하여 진주냉면 마지막 맥을 이어오던 평화식당을 하던 김점순 씨 아들 내외가 진주냉면집을 시작하였으나 실패하고 그 맥이 다시 끊어지게 되었다. 필자는 진주냉면의 맥이 끊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진주냉면을 재현시키기로 마음 먹고, 진주에서 60여년 동안 냉면집을 해오던 당시 부산냉면(진주시 봉곡동 28-11 서부시장 내) 황덕이(80) 할머니를 찾아가 재현된 진주냉면 레시피를 주고 상호변경은 물론 진주냉면을 만들어 팔 것을 부탁하여, 황덕이 할머니와 사위 정운서 씨가 진주냉면(전화 055-741-0525)을 시작하게 되었다.

필자에 의해 사라졌던 진주냉면과 진주헛제사밥이 진주에서 다시 재현되고, 진주비빔밥의 문헌 정리를 하여 진주 3대 전통음식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한 것은 식생활문화연구가로서 뿌듯한 보람을 느끼게 한다.

다만 필자는 진주시나 어느 개인 단체로부터 자료조사비나 연구비를 받고 연구 조사를 한 결과물이 아니다. 그런데 홈페이지나 자료로 사용하면서 필자의 동의는 물론 출처도 밝히지 않고 필자의 인용 문헌만 표기한 채 내용을 불법 도용하는 사례가 있다. 누가 자료를 조사하여 정리, 재현한 것이라는 것은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참 아쉽다.

/김영복(경남대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문헌에 소개된 평양냉면과 진주냉면 조리법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의 조리법을 살펴 보기로 하자.

우선 주요한 사실은 냉면의 최초 기록인 <동국세시기>에 나와 있는 1849년 당시의 냉면은 "메밀국수에 무김치, 배추김치를 넣고 돼지고기를 넣은 냉면이 있다."고 기록 되었다. 이 기록을 근거로 한다면 메밀국수를 사용한 것은 평양냉면이나 진주냉면 똑 같다. 그러나 무김치와 배추김치가 평양냉면(무김치)과 진주냉면(배추김치)으로 갈라진다. 즉 평양냉면은 동치미무를 얇게 저며 올려 놓고, 진주냉면은 배추김치를 얇게 썰어 넣는 것이다.

좀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평양냉면은 국수의 재료가 주로 메밀이며, 국물은 초겨울에 담근 동치미국물이나 꿩 육수(또는 쇠고기 육수)를 썼는데, 평양동치미는 "무, 마늘, 생강, 파, 배, 밤, 준치젓, 실고추 등으로 양념을 잘하여 독에 넣은 후 김치물을 많이 부어 놓고, 잘 봉하여 익혀 추운 엄동설한에 살얼음이 언 국물에 만 냉면 맛이 시원하고 감칠맛이 있다" 했다. 또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으나 꿩 대신 쇠고기 육수를 쓰는데, 쇠고기 육수는 소뼈와 힘줄, 허파, 지레, 콩팥, 천엽 등을 푹 고아 기름과 찌꺼기를 다 건져 낸 다음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열어 놓은 채로 더 끓여서 간장 냄새를 없애고 서늘한 곳에 두어 식힌다 했다. 이 육수가 맑고 개끗해 '맹물'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한편 평양냉면은 놋대접을 주로 사용하고 이 놋대접에 먼저 국물을 조금 붓고 국수를 사려서 수북이 담은 다음 그 위에 동치미김치를 얇게 썬 무김치, 고기, 양념장, 닭알, 배, 오이 등의 순서로 꾸미를 얹고 실파, 실고추로 고명한 후 국물을 부었다고 기록 되었다. 진주냉면 역시 메밀국수를 사용하는 것은 평양냉면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옛날에는 평양냉면이나 진주냉면이나 모두 순메밀로 국수를 뽑았으나 점성이 약해 교착력을 높이기 위해 평양냉면은 약간의 감자전분을, 진주냉면은 고구마전분을 물에 개어 메밀반죽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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