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자로 젓 담그고 껍질 무쳐먹고…머리부터 꼬리까지 버릴 것 없는 귀한 생선

대구어는 입이 큰 생선이라 해서 대구어(大口魚)라 부르고, 머리가 커서 대두어(大頭魚)라고도 한다. 우리 바다에서 나는 대구어는 동해군과 서해군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서해에서 나는 대구는 50㎝ 미만으로 동·남해에서 잡히는 60㎝ 이상되는 대구어보다 다소 작은 편이라 '왜대구'라고 부른다.

'大口' 입만 크겠소 통도 크다오

입이 큰 만큼 대구어는 식성이 좋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 청어, 명태, 가자미, 오징어, 문어, 새우 등을 통째로 먹어 치울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 크기의 3분의 2 정도 되는 것도 삼켜 버린다.

대구는 쉴새 없이 먹어야 하는 식욕 때문에 아래턱 밑에 '수염'이 있는데, 이 수염은 감각기관으로 물이 흐려 먹이가 보이지 않을 때 그 촉각으로 먹이를 찾아 사냥을 한다.

조선 정조 때 간행된 <공선정례(貢膳定例)>는 각종 공선(貢膳) 진상품의 물목(物目)을 적은 책인데, 건대구, 대구어란해(알젓), 대구고지해(이리젓) 등이 포함돼 있다.

또한 1815년께 빙허각(憑虛閣) 이씨가 쓴 <규합총서(閨閤叢書)>에 의하면 "대구어는 다만 동해(東海)에서 나고 중국에는 없기 때문에 그 이름이 문헌(文獻)에 없으나 중국 사람들이 진미(珍味)라고 했으며, 북도(北道) 명천(明川)의 건대구(乾大口)가 유명하다"는 기록이 있다. 대구어는 한대성(寒帶性) 심해어(深海魚)로 겨울철 산란기(産卵期)에 내만(內灣)으로 옮겨 오는데, 동해 뿐 아니라 서해, 남해, 오호츠크해, 베링해, 미국 오리건주 연안까지 분포되어 서식하고 있다.

특히 요즘은 환경오염으로 대구어가 귀하지만 옛날에는 진해의 옛 지명이던 웅천의 가덕동 일대 즉 속칭 깽이 바다의 대구어를 제일로 여겼다. 이 깽이 바다는 대구어의 산란장으로 유명했다. 이곳에서 겨울철에 잡히는 무게 2관(貫)이상 나가는 대구어를 일명 '누렁이'라는 애칭을 붙여 최상급으로 여겼다. 태조실록에서 중종실록에 이르기까지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매년 10월 천신 품목으로 "웅천의 대구어를 진상했다"는 기록이 나와 있고, 일제시대에는 "일본 사람들이 깽이 바다의 도미, 청어, 대구어의 맛을 못잊어 진해를 떠날 수가 없다"고 했다고 한다.

진해는 생대구탕, 대구뽈찜, 대구매운탕을 맛있게 하는 진해시 이동 대구요리전문점 <진상>(055-547-1678)이 있으며, 가을에서 겨울까지 제철에 가덕대구의 진미를 맛 보려면 대구요리 풀코스를 하는 가덕도 앞바다의 진해 용원 <미락정>(055-552-9090)에 가면 된다.

예부터 젖이 부족한 산모에게 대구탕을 끓여 먹이면 젖이 많아진다고 믿었다. 회충(蛔蟲)이 많은 사람에게 대구어를 씻지 않고 달여 구충제로 먹이는 등 민간요법이나 음식으로 즐겨 해 먹었다. <동의보감>에 대구는 '성질이 평(平)하고 맛이 짜며 독이 없고, 먹으면 기(氣)를 보(補)한다. 장(腸)과 기름의 맛이 더 좋다. 민간에서는 대구어(大口魚)라 한다'하여 일반의 이용을 권했다.

대구어는 겨울철에 산란을 위해 연안 내만으로 옮겨와 짝짓기를 하게 된다. 짝짓기 기간 동안 암수가 서로 마주 뽈(뺨)을 비벼대며 화끈한 사랑을 불태운다고 한다. 그래서 짝짓기를 하며 비벼댄 뽈에 굳은살이 박이고 이 부분에는 쫄깃쫄깃한 사랑의 맛이 깃들여져 있어, 대구뽈찜은 연인들이 즐기기에 좋은 담백하고 화끈한 음식이라 하겠다.

대구뽈찜이 맛있는 집으로는 부산 대연동 부산은행 사거리에서 못골시장 방면(박물관 방향 반대편)으로 가다보면 '김유순대구뽈찜 (구)충무식당'(051-627-4319) 집이 맛을 알고 찾아 오는 사람들이 번호표를 받고 기다릴 만큼 맛이 있는 집이며, 부산동래구청 옆 '일성식당'(051-553-4546)의 대구뽈찜 맛도 부산에 소문이 날 정도로 맛이 있다.

대구뽈찜 외에도 탕문화가 잘 발달된 우리는 대구어로 아주 기막힌 해장국을 만들었다. 콩나물, 미나리를 넣고 파·마늘·생강 등으로 양념한 후 고추장을 풀어 간을 해 국물을 넣고 끓이다가 토막낸 대구어를 참기름과 함께 넣어 약한 불에 끓여낸다. 이 대구매운탕은 찬바람 부는 겨울에 온 몸을 훈훈하게 해주면서 숙취를 말끔히 해소해 줘 해장국으로 제격인 담백하고 시원한 우리 전통음식이라 할 것이다.

특히 대구어는 껍질요리가 잘 발달되어 있었다. 1670년경에 안동장씨(安東張氏)가 쓴 <음식디미방>에 보면 "대구어 껍질을 삶아서 가늘게 썰어 무친 것을 '대구껍질채'라 했고, 대구껍질과 파를 길게 묶어 초간장에 밀가루 즙(汁)을 한 것에 찍어 먹는 것을 '대구껍질강회'라 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이 대구어로 구이, 전유어, 지짐이, 조림과 얼간 자반 등을 해 먹었다. 배를 가르지 않고 등을 갈라 뼈를 추려 내고 머리도 함께 쪼갠 뒤 햇볕에 말려 나중에 대구로 먹는 것을 '열짝'이라 했다.

어두육미(魚頭肉尾)라는 말은 생선은 머리부분이 맛이 있고 육고기는 꼬리 부분이 맛있다는 말인데, 대구 머리는 그 맛에 반한다고 한다. 대구의 간(肝)은 50% 가량이 기름이다. 간에서 추출한 기름이 간유(肝油)인데, 간유는 비타민 A, D가 풍부하다. 대구간유 1g에는 비타민 A가 1000~1만IU(국제단위)나 들어 있다.

요즘 우리는 흔히 대할 수 없지만 필자가 최근에 일본 간사이 지방에 갈 기회가 있어 젓갈시장을 둘러보게 되었다. 이곳에 옛날 우리 조상들이 담가 먹던 소금에 절여 벌겋게 익힌 대구알젓이 어느덧 일본 정통 음식화 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외에도 대구어의 아가미와 창자를 가지고 창자젓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김영복(경남대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깡다구 맛이 그립다...사라진지 오래인 그 맛

비록 대구어의 산지가 진해(鎭海)라고는 하지만 진해는 군항도시(軍港都市)라 대구어 등을 잡으면 고기잡이배들이 인근 마산 공동어시장(馬山共同魚市場)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부터 대구탕집도 진해보다 마산이 더 유명했다.

이성우(李盛雨) 교수가 쓴 <한국요리문화사(韓國料理文化史)>에 기록된 마산(馬山)이 고향(故鄕)인 이은상(李殷相)의 이야기에 보면 "어장(漁場) 아비들이 대구를 산더미처럼 배에다 잔뜩 싣고 항구(港口)로 돌아온다. 가난한 오막살이 집도 대구 한 동강이 쯤은 차례가 돌았지요. 대구 한 가지만 가지면 다른 반찬 백 가지를 당한다는 마산 사람치고 대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생(膾)으로 먹고, 말려(乾) 먹고, 국(羹) 끓여 먹고, 전(煎) 부치고, 달여(湯) 먹고, 구워(燔) 먹고, 포(脯)도 뜨고, 김치까지 넣어 먹는다고 했다. 이렇게 살만 먹는 게 아니라 암놈 알은 생으로 먹기도 하고 쪄 먹기도 한다. 수놈의 대구곤(이리:魚白)은 홀몬 200%라 하거니와 창자니, 아감지니, 심지어는 '깡다구'라는 이름의 등뼈다귀까지 발라먹는다. 그야말로 전신봉사(全身奉仕)라고나 할까?"라고 했듯이,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마산의 대구어 요리가 다양했다고 한다.

아귀찜 요리가 마산에 등장하기 전 마산 사람들 입맛을 사로 잡던 요리는 미더덕찜과 대구깡다구찜이다. 지금 마산에는 아쉽게도 미더덕찜의 쇠퇴와 함께 대구깡다구찜이 사라지고 없다.

물론 대구어요리 전성기도 지난 듯 대구어요리를 하는 집이 많지가 않다.

다만 대구어와 각종 해물들을 넣어 콩나물과 함께 찜을 해 얼큰하고 화끈한 음식을 좋아하는 마산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어 가는 대구해물찜을 하는 <중성대구해물찜집>(055-245-3130)이 있다.

이 집의 매운 맛은 손님의 주문대로 해 준다. 이 집의 아주 매운 맛은 마치 머리는 불파마를 하는 것 같고 엄동설한에도 온 몸에서 땀이 줄줄 흐를 정도다. 보통 맛도 필자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맵다.

마산의 대구깡다구 맛이 그립지만 어쩌랴. 대구해물찜 매운 맛으로 그리움을 씻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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