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 앨 고어 후보와 공화당의 조지 부시 후보의 전면전은 점점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든 이번 2000년 대선은 전례없는 법정에서의 결투가 될 것이다.

사실 미국만이 가지는 독특한 선거 방식인 선거인단 승자 독식제는 누가 보아도 처음부터 그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그들 자신의 오만으로 그 모순을 외면해 왔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어차피 전 국민이 투표를 한다면 직접 그들의 의사가 반영되게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걸 귀찮게 선거인단이라는 간선제를 동원하고 거기다 한 주에서 한 표차이라도 이기면 선거인단을 몽땅 가져가는 별 희한한 선거 방식을 만들어 저들 스스로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사실 직접선거였다면 여론조사에서도, 표에서도 고어가 이겼다지 않는가. 그런데도 그들 나름의 선거방식이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제꾀에 제가 넘어갔다는 표현이 여기에 해당할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나라를 대표하는 수장을 선출하는 신성한 축제가 한편의 코미디로 전락해 버렸다.

어쨌거나 동서의 냉전구도가 무너지자 내정간섭으로 비칠 만큼이나 오만과 독선으로 세계의 질서를 그들 나름의 기준으로 재편해 왔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그들 이 정해놓은 법을 그들 스스로가 지키지 않고 있어서 더욱 우습다.

사실 선거란 어떤 한 인물을 결정하기 위한 신호이며 표시의 행위라고 볼 때 어떤식으로 그 행위를 나타내고 유효한 행위는 어떤 것이며, 언제까지, 어떤 도구를 써서 등의 것은 법이라는 테두리에서 정해진다.

때문에 플로리다주의 재검표 행위는 법에 정해진 시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이미 한번 끝난 검표는 그것으로 끝나야지 시간을 넘겨 수작업 재검표라는 또 다른 방법이 동원되어서는 안된다.

즉 선거는 조지 부시의 승리로 끝나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잘못된 검표방식이라도 법에 정해진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지 법으로 정한 시간을 넘어선 재 검표작업은 어쨌거나 잘못된 것이다. 이미 재검표작업은 여러 가지의 문제점을 노출시키며 말을 만들고 있다.

고어측이 문제 삼고 있는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의 수작업 재검표 중단, 팜 비치 카운티의 수검표 결과 집계 불포함과 딤플표 불인정, 나소 카운티의 재검표 결과 취소 등과 당연히 거기에 반발하는 부시측의 수작업 재검표에 대한 항소 등 갈수록 복잡해지는 것이다.

법원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는 기다려 봐야 알겠지만 만약 고어의 손을 들어주고 재검표 작업결과 고어가 백악관의 주인이 된다면 사실 초법적인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다.

비 합리적인 선거방식이 법으로 정해진 이상 비 합리적인 그 법에 맞추어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잘못된 법이라면 다음에 고치면 되는 것 아닌가· 이미 끝난 대통령 선거가 변호인단에 의해 결판이 난다면 서부 영화의 총질이 아니라 변호인에 의한 입싸움으로 대통령이 선출되는 볼썽 사나운 모습이 연출될 것이다.

어쨌든 누가 이기든 우스운 대통령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재투표할 수도 없다. 진퇴양난에 처한 미국은 곤혹스럽기 그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상황을 보며 비웃음을 날리던 미국언론들이 정작 자신의 문제는 법원의 결정으로 넘기려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 모습을 쳐다보며 자꾸 깨소금맛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오랜만에 통쾌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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