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 직원들의 의자를 대부분 바꾸었다. 기존 의자는 창간 직후부터 사용하던 것이어서 바퀴가 빠진 것도 더러 있고 팔걸이가 부서진 것도 부지기수, 게다가 앉는 자리가 딱딱하다보니 오랫동안 앉아서 일을 하던 내근 직원들에겐 많이 불편한 의자였다. 그러하더라도 직원들은 회사의 재정이 넉넉지 않기에 영 사용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면 조금씩 불편을 감수하며 지내왔다.

   
 
 

교체된 의자는 두 종류다. 국장 부국장 부장용은 목받침이 있는 조금 비싼 거고 평직원용은 몸을 뒤로 조금 젖힐 수 있는 것으로 가격으로 봐서 한 단계 낮은 의자다.

의자는 여전히 권위주의 상징

예전부터 부장용 의자와 평직원용 의자를 구분해서 비치해왔던 터여서 뭐라고 잘못했다는 투의 말을 꺼내기 어렵지만 이왕 의자를 대대적으로 바꾸는 김에 간부직원이나 평직원이나 똑같은 의자로 바꾸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을 했다. 오랫동안 앉아서 일하다 피곤하면 뒤로 목을 젖혀 기댈 수 있는 그런 의자로 통일했더라면 하고.

의자 이야기를 꺼내고 보니 오래 전에 <좋은 생각>이라는 작은 책에서 읽었던 칼럼이 떠올랐다.

한국의 건설회사가 말레이시아에서 큰 다리를 만드는 기공식을 마련했다. 이 자리에 이 나라 수상부부를 초청하면서 단상에 커다란 의자 두 개를 나란히 배치하고 햇볕이 따가운 나라라는 점을 감안해 그늘막까지 쳤다. 그랬더니 수상의 비서실장이라는 사람이 행사 책임자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수상의 자리엔 그늘이 있는데 일반인 5000명이 앉는 자리는 어떻게 그늘을 만들 겁니까?" 그래서 비서실장의 지시로 단상의 그늘막도 치우고 크고 고급스런 의자도 일반석과 똑 같은 것으로 바꿨다는 얘기다.

의자는 전통적으로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모계를 중심으로 한 원시공동체 사회에서 계급사회로 변하면서 서서히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받는 사람이 구분되면서 권력이 탄생했다. 의자는 바로 그 지배자의 권력을 대변하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의자의 기원은 원래 권좌에서 유래하는데 고대 이집트의 옛 왕조시대에 왕좌로서 비롯됐다는 해석도 있다. 그래서 아주 옛날엔 의자란 안락하게 앉는 가구로서보다는 왕후·귀족의 권위를 나타냈다. 물론 권위를 나타낸 것이 의자뿐이랴. 모자도 왕이 쓰던 것과 귀족이 쓰던 것, 또 서민이 쓰던 것이 다 달랐고 의복도 마찬가지였다.

그랬던 것이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많이 평등해졌다. 우리나라야 모자를 써야하는 기후가 아니어서 별로 모자를 쓰진 않지만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세계 어느 나라든 대통령이 쓰는 모자나 서민들이 쓰는 모자에 구분이 없고 옷 또한 생활 형편에 따라 가격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서민들이라 해서 돈만 있으면 대통령과 똑 같은 옷을 입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런데도 유독 의자만은 권위에 따라 아직도 차별을 두고 있다. 이는 기업뿐만 아니라 행정기관, 종교단체도 마찬가지로 계급에 따라 차등이 있다.

말하자면 계급이 높을수록 크고 좋은 의자에 앉고 계급이 낮을수록 작고 불편한 의자에 앉는다. 아직도 그런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정치꾼들이 즐겨하는 말 중에 '국민들의 종이 되겠다'는 표현이 있다. 예수가 "훌륭한 지도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지도자 반열에 든 사람 중에 지위가 낮은 사람과 똑 같은 의자에 앉아 일을 하는 사람이 과연 몇 있을까 싶다. 요즘 시대에 누구나 평등을 이야기 하지만 그 원칙을 지키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아직도 왕정시대 마키아벨리즘에 빠져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사람들은 권위가 그 사람이 가진 인품에서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앉아 있는 의자에서 드러난다고 믿고 있다. 아랫사람보다는 좀 더 좋은 의자에 앉아 으스대면서 일을 시키기 좋아한다.

직위보단 직책에 가치 우선을

그런데 정작 따지고 보면 일이란 게 그 계급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에 따라 정해지는 것 아니던가. 그러면 의자도 그 직책에 따라 어떤 것이 적합할 지를 먼저 고려해야하고 하는 일이 비슷하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같은 의자를 사용하는 게 사소한 것 같지만 바람직하다고 본다.

지난 10일치 <구효송의 올림픽 오디세이>에 난 글, 쿠베르탱이 "상은 예술적 가치에 차이를 보일지언정 재질은 같아야 한다"는 주장에 새삼 공감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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