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심신 강물서 씻고 바람에 말리고...

낙동강은 창녕군 남지읍 용산리 위쪽에서 남강과 만나면서 수량이 크게 늘어난다. 남지철교에서부터는 강폭도 넓어져 흐름은 훨씬 유장하고 부드러워지며 씀씀이는 더욱 넉넉해진다. 게다가 비온 뒤끝이라 싯누런 황톳물로 더욱 풍성한 느낌이다.
벼포기들도 쑥쑥 키 자라기를 다툰다. 한 주일 전만 해도 색깔도 여리고 키까지 작았지만 이제 다시 보니 부쩍 자란데다 제법 초록색까지 짙어졌다. 덕분에 논 사이로 난 길을 한가롭게 오가면서도 죄스러운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된다.
따지고 보면 직장에 목을 맨 사람들이 한 달에 한두 번 식구들과 들과 산으로 가는 나들이는 전혀 탓할 것이 못된다. 다만 농사라는 게 일주일 단위로 짜이는 게 아니다 보니, 대부분 농민의 아들딸인 직장인들이 쉬는 날 농촌을 지나면서 괜히 미안해하고 멋쩍어하는 것이다.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 여기서부터 14km 남짓 되는 강변 도로가 이어진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가 말년을 보낸 망우정이 있는 곳이다. 남지에서 창녕으로 가다가 송진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1km쯤 가면 우강리가 나온다. 우강리 들머리 오른쪽 나무가 우뚝 솟은 데 망우정이 숨어 있다.
곽재우는 임진왜란 직후인 1600년부터 2년 동안 벼슬을 마다했다는 까닭으로 탄핵을 받아 전라도 영암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망우정은 지긋지긋한 귀양에서 돌아와 만년을 설계한 곳이다. 과연 낙동강을 무대로 왜적과 싸운 곽재우답게 전망이 좋은 데 자리를 잡았다.
망우정 대문은 주로 열려 있으나 잠겨 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대나무 꼬챙이 정도 되는 막대로 빗장을 질러놓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옛날, 망우정 대청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은 참으로 좋았다. 지금은 멋대로 자란 아카시아가 시야를 가로막고 있어서, 사람들은 집 뒤쪽 유허비가 있는 데서 낙동강을 조망한다. 큰 나무 그늘 아래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바라본 낙동강은 가로 누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건너편으로는 하얀 모래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이쪽으로는 강물이 휘어감아 바위가 속살을 내보이고 있다. 강물은 그 사이를 유장하게 뉘엿뉘엿 휘어져 내려온다.
우강리에서 내동까지 1.8km는 그냥 평범한 농촌길이다. 하지만 느릿느릿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의 손놀림이나 벼포기의 간질거리는 속삭임에 마음을 두고 보면 괜찮은 길이다. 내동에서 길곡주유소에 이르는 2.8km는 또 길이 강과 나란히 나아간다. 여기서 사람들은 강물도 아주 탄력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저녁 무렵이면 더욱 좋은데, 내리쬐는 햇살을 강물은 굽이굽이 출렁이며 되쏘는 것이다. 되쏘는 빛이 이쪽에는 전혀 미치지 않는데도 마치 얼굴까지 환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여기서 다시 임해진까지 평탄하게 이어지는 5.2km를 지나면, 노리~학포까지 3.2km 되는 가장 빛나는 강변 산책로가 기다리고 있다. 처음 오르막길은 꾸불꾸불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쪽 곧아진다. 낭떠러지를 사이에 끼고 강과 길이 바짝 붙어 있는데, 위험하다기보다는 색다르고 재미있다는 느낌을 준다. 길가나 산기슭 알맞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대청마루 드나들듯 자유로운 바람이 소름을 돋게 한다. 강가로 내려가 물 속에다 손발을 담가도 좋겠다. 하지만 지금은 비온 뒤끝이라 아주 맑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오세요

창원.마산에서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남지에서 빠져나오거나 처음부터 국도 5호선을 따라 가면 된다. 국도 5호선은 송진에서 1022번 지방도와 만나는데, 아직까지는 다시 찾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한 강변 산책로 노릇을 해주는 게 바로 이 길이다.
아니면 이렇게 찾아가는 방법도 있다. 마산.창원에서 동읍을 거쳐 부곡으로 이어지는 1008번 지방도를 타고 나간다. 밀양과 창녕의 경계 지점에 인교라는 동네가 있는데 여기서 왼쪽으로 30번 국도를 찾아들어 학포까지 가도 된다. 이렇게 되면 학포에서 노리를 거쳐 우강리 망우정까지 거꾸로 짚어 나가는 셈이다. 하지만 학포에서 노리에 이르는 짧은 구간이 채 포장이 돼 있지 않은 게 단점이다.
이렇게 가려면 며칠 전 개통된 본포교를 이용해도 된다. 창원과 창녕을 곧장 이어주는 다린데 동읍과 북면을 거쳐 바로 학포로 갈 수 있으니 위치에 따라 편한 대로 하면 되겠다.


▲낙동강변 산책은 이렇게

강변 산책은 자동차를 타고 할 수도 있지만 되도록이면 자전거로 하는 게 좋겠다. 거리가 14km로 꽤 되어 걷기는 부담스럽고 군데군데 강변이 아닌 데도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쌓아 내려온 둑이 눈길 둘 데를 가려버린 것이다.
하지만 임해진~노리~학포에 이르는 3km 남짓은 반드시 걷기를 권하고 싶다. 시야가 탁 트인데다 강바람이 그지없이 시원하기 때문이다. 가보지 않으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즐거움과 상쾌함이 기다리고 있다.
산기슭에 있는 개로비(犬碑)를 볼 수 있는 것도 즐거움이다. 전설에 따르면 임해진과 노리 사이의 길을 개 두 마리가 닦았다. 임해진과 노리마을에 암컷과 수컷 개가 한 마리씩 살았는데 서로 그리는 정을 잊지 못해 날마다 오가는 바람에 두 마을을 이어주는 오솔길이 생기게 됐다는 것이다. 덕분에 서로 드나들게 된 두 마을 사람들이 개의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는데, 관청에서 만든 안내판은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다.
밀양쪽에서 부곡으로 가다보면 밀양시 초동면 소재지를 지나 범평리에 ‘미리벌 민속박물관’이 있다. 폐교한 범평초등학교 터를 빌려 98년 7월 문을 열었는데 성재정 관장이 평생에 걸쳐 모은 소중한 민속품 2500여 점을 보관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가 옥돌에 새겨 초의선사에게 준 반야심경도 보관하고 있는데, 지금은 볼 수가 없다. 대신 조상의 손때 묻은 반닫이와 개다리밥상.평상.베틀 등 1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연중 쉬는 날 없이 문을 여는데 관람료는 어른 3000원, 아이는 2000원이다. 꼭 들러볼 만한 곳이다.
오가는 길에 온천욕도 빼놓을 수 없다. 온천으로 유명한 부곡과 북면 사이에 낙동강이 끼여 있기 때문에 방향에 따라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