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班上)차별, 반찬 수로 구분

우리가 한정식이라고는 하지만 과연 그 뜻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정식(韓定食)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우선 정식이 무엇인지 그 뜻을 살펴보기로 하자.

정식은 조선시대 다리 셋과 두 귀 달린 1인 솥에 밥을 해 정승들이 먹던 정식(鼎食)이 있고, 불교의 계율에 어긋나지 않는 깨끗한 식사를 말하는 정식(淨食)이 있으며, 일정한 식단에 의해 차려 내오거나 일정하게 정해진 차례에 따라 차려 내는 정식(定食)이 있다.

임금님 수라상에 12첩미·색·향 균형잡힌 최고의 종합건강식

여기서 정식(定食)은 양식(洋式)의 만찬(디너)의 경우를 정식(定食)으로 표현하므로 한정식(韓定食)이라 함은 한국의 음식을 양식(洋式)식사처럼 일정하게 정해진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내오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밥과 반찬을 한꺼번에 차려 내오는 전개형 상(床)은 한정식(韓定食)이라는 표현은 옳지 않고 반상(飯床)이라야 맞다.

그러면 한정식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쓰게 되었는가.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한정식이라 하지 않고 요릿집이라는 말을 썼다. 이 요릿집은 일본 사람들이 만든 이름이다.

1885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해에 일본 거류민들 300여명이 모여 살던 진고개에 왜 각시를 둔 최초의 요릿집이 생겼고, 이에 영향을 받아 1887년에 일본 기생을 고용한 화월루(花月樓)가 탄생했고, 친일파 송병준(宋秉畯)은 친일정객의 아지트로 청화정(淸華亭)이라는 일본요릿집을 내어 당시 이 요릿집들이 3대 일본 요릿집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요릿집 간판이 한정식으로 바뀌게 된 것은 해방이후 미국 장병들이 들어오면서 서울에 양식집이 들어서게 되었는데, 서울에서 제일 먼저 개점한 집이 현 제일은행 서쪽에 위치해 있던 청목당(靑木堂)이며, 그 다음이 종로에 위치한 YMCA식당, 그 다음이 백합원(百合園)이고, 서민적인 대중식당으로 개업한 집은 공평동의 태서관(太西館)이다. 지금은 YMCA식당을 제외하고는 모두 없어졌다.

이 양식당의 영향을 받아 우리의 한식 반상이 코스음식으로 변형되고 한정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이 한정식을 잘못 이해하여 전개형 반상을 내는 한식집도 한정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차림이라는 말은 음식의 종류(메뉴)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반상차림은 밥을 주식으로 하여 먹기 때문에 그에 어울리는 국과 반찬으로 구성한다. 우리는 아침, 점심, 저녁상을 일상 식으로 하고 있으며. 반상은 전통적으로 독상이 기본이다.

조선시대에는 반상(班上)을 엄격히 구분하는 계급의식과 장유(長幼)와 남녀 차별의식이 강해 식생활도 신분에 따라 심한 차별제도가 생기게 되었고, 이로 인해 독상(獨常)이라는 식생활 관습이 생겨났다.

찬의 가짓수에 따라 3첩, 5첩, 7첩, 9첩 반상으로 나뉘고 궁중에서는 12첩 반상을 차린다. 첩이란 밥, 국, 김치, 조치, 종지(간장, 고추장, 초고추장 등)를 제외한 쟁첩(접시)에 담는 반찬의 수를 말한다.

이 반상차림은 3첩 반상, 5첩 반상, 7첩 반상, 9첩 반상으로 홀수 첩 반상으로 나가다가 궁중 수라상은 12첩 반상으로 차려 내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과연 왕은 쟁첩이 짝수 반상이고 우리 백성들은 홀수 반상으로 차별화 하였을까? 문헌 자료를 보면 임금님의 수라상만 짝수 첩이었던 건 아니다.

조자호의 <조선 요리법 1938년>에는 8첩 반상을 특히 새신랑, 새색시 첫날 저녁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그보다 훨씬 이전의 저술인 <목민심서>에도 '조선의 밥상은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김치 한 접시, 장 한 접시 외에 4첩에 그쳐야 한다'고 해 일반 가정에서 반드시 홀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상은 밥을 주식으로 하는 아침, 저녁상에 쓰이는 상차림이며 밥, 국, 김치, 조치(찌개) 그리고 장이 기본이 되고 생채, 구이, 조림, 전, 마른 찬, 회 등 재료와 조리법이 다른 반찬이 3가지, 5가지, 7가지 혹은 9가지가 차려진다.

이 반찬 수에 따라 3첩 반상 혹은 5첩, 7첩, 9첩 반상이라 하며 12첩 반상은 임금님이 드시던 수라상이다. 5첩 내지 7첩은 어느 정도 여유 있는 반가(班家)의 상차림이었고, 7첩과 9첩은 사대부가 등의 호화로운 상차림으로 어느 정도 허락된 상차림이었다.

다만 양반가에서도 외상일 경우 5첩 기준으로 하였다.

이 경우 국은 밥을 조화시키고 김치는 전체를 조화시키고 조치는 다섯 종류의 반찬과 어우러지게 구성하였다.

다섯 가지 반찬은 청신한 채소, 단백질과 지방 공급원인 육류, 마른반찬, 짜고 쫄깃한 것 가운데서 구성하며 제철에 나는 채소를 취해 나물로 하여 다섯 가지 맛을 즐길 수 있게 구성하였다.

여기서 오미가 합성되어 칠미가 되고 오색(흰색, 검정색, 노란색, 붉은색, 푸른색)의 아름다움, 식 재료 본래의 오향(누린 냄새, 볶은 고소한 냄새, 향기로운 냄새, 삭힌 냄새, 절인 냄새)을 살리고, 덥고 차고 서늘하고 시원하고 감칠 맛의 느낌에서 오는 오감, 맛을 이어주고 끊어주고 식혀주고 데워주고 씻어주는 오행이 첩 반상에 담겨 있어 오장(간, 심, 비, 폐, 신)을 튼튼히 해주는 영양소나 기(氣)가 담겨 있다.

밥 한상의 차림에는 음식 맛을 이어주고, 끊어주고, 씻어주고, 데워주고, 식혀주는 오행(五行)은 식도락의 극치를 보여준다 할 것이다.

최근에 영양식단 운운하지만 4계(4季)에 따라 오미, 오색, 오향, 오감, 오행이 담겨 있는 반상차림이야말로 종합건강식이며 균형식이 아닐 수가 없다.

전류(煎類), 젓갈 등은 주로 육류나 어패류를 재료로 만들어지는 조리 식품으로 5첩 이상의 반상에나 올랐다. 7첩 이상일 때는 곁상을 놓았으며 곁상에는 반주(飯酒), 반과(飯果)등을 차렸다.

조치(일명 찌개)는 3첩 반상일 경우 없으며, 5첩에는 조치가 1개, 7첩에는 조치 이외에 찜(갈비, 닭, 생선, 달걀 등)을 하여 두 가지를 겸해 차렸다. 7첩은 최상급 상차림이라는 뜻으로 '7첩 반상에 쌍조치'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김영복(경남대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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