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 맑은 국'을 '지리(ちり)'라 부르는 식민지 근성

먼저, '지리(ちり)'란 '찌개'가 아니고 '탕(湯)'이다.

음식점에 가면 '대구지리'나 '복지리' 이런 메뉴판을 흔히 볼 수 있다. 


고춧가루를 넣어 얼큰하게 끓인 생선국을 '매운탕'이라 하는 데 비하여, 고춧가루를 쓰지 않은 생선탕을 '지리'라고 부른다.

굳이 우리의 고운 말과 글을 두고 '지리(ちり)'라는 외래어를 사용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복백탕((鰒白湯) : 복 맑은 탕)이 일본에서 유래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지 아니면 자기 집 분위기가 왜색(倭色)이 짙어야 매출이 많이 오르는 건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우선 전자라면 바르게 알아야 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어느 책에서는 '지리'를 대신할 우리말로 '백숙(白熟)'을 예로 들었는데, 양념하지 않은 채로, 곧 하얗게 익혔다는 뜻으로 표현한 것 같다. 하지만 '지리(ちり)'를 '대구백숙'이나 '복백숙'이라고 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

우리의 가열동사에서 '삶다'와 '끓이다' 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백숙'은 삶는 것이며, '복지리'라 불리는 것은 끓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맑은 탕'이다.

물론 맑은 국(羹)이라고 해도 무난할 것 같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祖實錄)>에 2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왕세자로 지냈던 조선 5대왕 문종은 동궁(東宮)에서 복백탕을 끓여 왕세자비와 함께 소갈증(지금의 당뇨병)을 앓는 부왕인 세종에게 아침 문안을 다녔다고 한다.

정재륜이 쓴 <공사견문록(公私見聞錄)>에 보면 조선의 임금 인조(仁祖)가 '복백탕(鰒白湯)'을 즐겨 드셨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복백탕을 한글로 해석하자면 '복 맑은 탕'이 된다.

<규합총서> 등 고 요리서(古 料理書)나 조선시대 문헌에도 복백탕 끓이는 요리법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복 맑은 국'은 일본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즐겨 먹었던 우리 전통음식의 하나이다. 오히려 일본은 복어탕의 국물은 먹지 않는다.

/김영복(경남대 전통식생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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