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도 하고…서로 부대끼며 보낸 지난 3개월

꽹과리 소리가 신명나다. 사물놀이패의 꽹과리소리에 이끌려 한 떼의 아이들이 가지런히 줄을 맞춰 입장한다.
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이도 있고, 흰옷에 댕기머리를 하고 머리띠까지 두른 그럴싸하게 방자흉내를 낸 한 아이도 눈에 들어온다. 분홍색 한복 치맛자락을 허리춤에 동여맨 향단이, 춘향이와 이도령, 월매와 기생들….
아이들은 지금 뮤지컬에 흠뻑 빠져있다. 해는 지고 으스름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에야 시작된 뮤지컬 〈춘향전〉 연습에 열심인 아이들은 창원시 북면 동전리 창원여성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가출소녀들이다.
이도령 몫을 맡은 효임이도, 춘향이 몫의 유미, 기생역 맡은 소녀와 진아.연진.가영이는 모두 학교와 집을 떠나 무지개 뜨는 쉼자리(창원여성의 집에서 운영하는 가출소녀들의 보금자리)에서 짧게는 한달, 길게는 일년을 넘겨 생활하고 있다.
아이들은 스스로 하나를 끝까지 해 본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한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남을 배려하면서 생활하기 보다 나 자신을 먼저 챙기는 게 더 익숙하다. 그런 아이들이 춘향전 뮤지컬을 3개월 동안 서로 부대끼며 대본연습에 춤동작에 표정연습까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연극이나 드라마 보는 것밖에 없잖아요. 막상 해보면요, 배역에 맞는 음도 다듬어야 하고, 대본연습도 해야 하고요, 춤 연습도 해야 하니까 어려웠죠. 연습 되게 많이 했어요. 밤늦게 연습한 적도 있어요”(기생역 소녀)
배역이 수도 없이 바뀌었다. 뮤지컬을 연습하다가 힘에 부치거나 자기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못하겠다’며 포기해버린다. 다른 사람에게 간섭을 받거나 충고를 듣는 것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 아이 중에는 무작정 배역을 못하겠다고 쉼자리를 박차고 나가 며칠동안 떠돌다가 들어온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춘향전과 함께 살아온 몇 달 동안 아이들은 많이 바뀌었다. 아니 변했다. 가출소녀들의 연극수업을 부탁받고 처음에는 망설이기도 했다는 연출가 문종근(극단 ‘객석과 무대’ 상임연출) 씨는 누구보다 아이들의 변화에 가장 많이 놀란다.
“마음을 쉽게 열지 않더군요. 쉽게 포기하고 자신을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않았어요. 자신감이 없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감을 찾아가더군요. 특히 춘향극이 복잡한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고전이라 쉽지 않은데도 자기 노력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무지개 뜨는 쉼자리의 아이들이 연극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99년 처음으로 가출청소년의 아픔을 그린 〈철부지들〉을 무대에 올렸고, 지난해는 <니끼 내끼>를 공연했다. 그때 참여했던 아이들 중에는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한 아이도 있고, 대학공부를 위해 서울과 대구로 유학을 떠나기도 했다.
연극 끝나면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진아, 공연 때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와달라고 외치는 소녀와 연진이 목소리에는 한결같이 자신들이 만든 춘향전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설렘이 서려있다.
연극을 처음 경험한 아이들에게는 짧은 시간이었다. 스스로 연극이란 것을 해 보고 싶다는 아이들만 참여시켰고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아이들의 작품은 오는 10일(오후 7시30분)과 11일(오후 4시.7시30분) 창원성산아트홀 무대에 오른다.
연극을 소개하는 홍보지에는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색다른 뮤지컬 〈춘향전〉’이라고 적혀있다.





인터뷰: 창원여성의 집 조현순 관장

“체험교육 위주의 학교 만들 터”

“청소년을 기존 교육틀에 가두는 것은 무의미하고 적절한 방법도 아닙니다. 20명의 아이들을 위한 작은 학교를 만들 생각입니다.”
창원여성의 집 조현순(49) 관장은 오는 9월에 20명의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를 열 계획이다. 그 일을 위해 지난달 2명의 교사.총무와 함께 미국 LA에 있는 사립학교 그린 패스츠 아카데미(Green Pasture Academy)를 2주동안 견학하고 돌아왔다.
그린 패스츠 아카데미는 기존 학교에 적응 못한 청소년들이 현장 체험교육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배우고 있는 사립학교다. 이미 그린 패스츠와 개교를 위한 업무협조까지 마쳤다. 새로운 개념의 학교가 생기는 것.
현재 ‘쉼자리 아이들’도 15명의 교사로부터 검정고시준비를 비롯해 연극이나 음악.무용.차밍스쿨 등 정규교육이나 다름없는 교육을 받고 있다. 조관장은 이를 체계화시켜 정상적인 체험수업형태로 만들어 볼 생각이라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다시 원하지 않는 수렁으로 빠져들어서는 안되죠. 하지만 지금까지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을 제대로 못했던 것 같습니다.”
체험위주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숫자 개념이 약하면 교과목으로서의 수학을 가르치기 보다 실제 시장에서 시장조사도 하고 계산도 하면서 숫자 개념을 익히게하고, 일상법규도 무단횡단을 했을 때 얼마의 벌금이 주어지고 어떤 처벌을 받는지 알 수 있는 현장학습위주가 되는 것이다.
조 관장은 단순히 졸업을 위한 검정고시나 학교수업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 3년 동안 그런 교육이 아이들에게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올해 학교에 재입학 시킨 아이들이 중도 탈락, 쉼자리를 떠난 아이들이 사회적응에 실패하는 경우를 봐왔던 터였다.
그는 여성의 집이 청소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한다. 그 마지막보루를 위해 새롭게 문을 여는 학교에 거는 기대도 그래서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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