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차 시절 만찬 들고빈차 세상 빈 가게도...저렴하고 푸짐한 곳 매력 여전

2007년도 3일 연휴가 끼인 탓에 고속도로는 분주했지만 시내는 한적했다. 정비소 하는 사람은 사고가 나야 돈 잘 벌고 기자들은 사건이 터져야 재미를 본다고 하지 않는가.

고속도로가 만들어지고 자가용이 집집마다 없는 집이 없어지면서 언제부터인가 술 먹고 택시 타는 사람들보다 가족이 오순도순 놀러 가는 모습이 흔해졌다. 한편으론 부럽다가도 원망스러운 게 택시기사의 심정이다.

   
 
 
라디오가 택시기사들의 벗이라면 기사식당은 하루의 피로를 푸는 공간이자 낙이다. 쉼 없이 돌고 돌아 동료들이 모여있는 기사식당에 도착해 하루의 회포를 풀고 마음을 가다듬곤 한다.

혼자먹기 편해 독신자들에 인기...집에서 먹고 나오는 알뜰파도

택시기사들은 이 집이 맛있더라 저 집이 맛있더라 입소문을 주고받는 주인공이었기에 '맛의 달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 택시기사들이 모이는 기사식당에는 '맛은 보장된다'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어느덧 일반인들의 발길도 잦아졌다. 그렇게 이어온 기사식당과 택시기사들의 끈질긴 인연. 그 사연의 끈을 좇아가 봤다.

◇ 정성 담긴 한 끼의 행복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텅 비어있던 한 기사식당 주변에 노란차들이 하나 둘 들어섰다. '빈차'라는 깜박이가 꺼지고 이어 택시기사들이 하나 둘 모습을 보인다. 점심시간, 저녁시간은 굽혔던 몸을 원 없이 펴보는 유일한 시간이다.

식당 안에 들어서자 간판이 마치 글로 그림을 그려놓은 듯 빽빽하다. 김치찌개, 된장찌개부터 시작해 삼겹살, 오리불고기까지 메뉴만 20여가지. 반찬 가짓수만 해도 10가지에 이르지만 어느 기사식당을 가나 가격은 약속이라도 한 듯 4000원이다. 저렴하고 푸짐한 곳, 그 곳이 바로 기사식당의 매력이다.

"영업택시들은 하루 12시간 돌면 두 끼를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예. 두 끼를 똑같은 거 먹을라 하겠습니꺼. 당연히 메뉴가 늘어날 수밖에 없지예. 저기 마산 자산동에 가면 기사들이 잘 가는 기사식당이 한 곳 있는데, 거기는 같은 정식인데도 국 종류를 원하는대로 골라 먹을 수 있어예. 맨날 국 종류도 달라서 싫증이 안난다고 우리 기사들이 많이 가지예."

원하는 메뉴를 마음껏 고를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혼자서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는 매력도 있다.

"기사들은 혼자서 먹어야 할 때가 많지예. 부담 없이 삼겹살도 먹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기사식당입니더."

기사식당에는 삼겹살 메뉴가 빠지지 않는다. 저녁시간이면 기사들이 가장 많이 먹는 메뉴도 삼겹살이다. "삼겹살이 근기가 있거든. 점심때야 아무것이나 후닥닥 먹으면 그만이지만 저녁은 한 끼 먹으면 끝이거든예. 밤새도록 일 해야되니까 배가 빨리 꺼진다 아입니꺼. 근기가 있는 것을 먹어둬야 버티지예."

◇ 택시기사와 기사식당의 인연

기사식당에 택시기사보다 혼자 들어서는 일반인들의 발길이 더 많다. 마산 산호동 대림기사식당 주인 이경환(48)씨는 요즘은 택시기사보다 독신자들이 오히려 많이 찾는다고 귀띔했다. "기사식당에서는 혼자서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고 음식종류도 많다보니 매일 밥을 챙겨먹어야 하는 독신자들의 발길이 잦지예. "

30년 전 만해도 창원∼진영 국도변, 김해 삼계 등에 기사식당들이 몰려 있었지만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기사식당의 흔적도 하나 둘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아직도 고속도로 휴게소 뒷길에는 옛 명성을 이어가는 소문난 기사식당들이 손님을 기다린다.

"얼마 전 TV에서도 소개돼서 손님이 더 많이졌대예. 휴게소 밥이 마음에 들리 만무하지예. 휴게소 뒷길에 기사식당이 참 많았었는데 이제는 남해고속도로에 몇 개 밖에 없더라고."

자가용이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만 해도 숨은 곳곳을 찾아다니며 여행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은 택시기사였다. 그래서 택시기사들은 맛있는 집만 찾아다녀 입맛이 까다롭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영업택시 기사들의 경우 아예 집에서 먹고 나오는 이들도 많이 늘었다.

"식사 두 끼를 해결하기엔 부담스럽지예. 그래서 밥 먹으러 갈 때쯤 되면 일부러 마누라한테 얘기해둔다 아입니꺼."

아무리 기사식당이 일반인들에게 유명해졌다 한들 택시기사들과의 인연과 떨어질 수 있으랴. 택시기사들의 세상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지듯 기사식당도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택시기사들 잘나갈 땐 서비스 안좋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지예. 하지만 이젠 손님 보는 게 반가울 정도니, 타는 손님이 고마울 뿐이지예. 골목골목 없는 곳이 없었던 기사식당도 이제 많이 사라졌지예. 지금은 마산에는 자산동하고 산호동에, 창원은 봉곡동하고 사림동에만 좀 남아있지예."

택시기사들은 든든한 기운을 준 기사식당을 뒤로 하고 하나 둘 '빈차'라는 깜박이를 켰다. 돌고 도는 세상사처럼 오늘도 그렇게 일상을 시작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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