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국물, 주당을 깨운다

속풀이는 복국이 최고

중국의 송나라 때 시인 소동파는 '복요리를 먹은 후 가히 죽음과도 바꿀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했다.

정재륜이 쓴 <공사문견록(公私聞見錄)>에 보면 '인조(仁祖)가 복백탕(鰒白湯 :복 맑은 국)을 즐겨 먹었고 문종(文宗)은 세자 시절 동궁(東宮)에서 세자빈과 함께 복국을 직접 끓여 소갈증을 앓고 있는 부왕(父王)인 세종(世宗)에게 문안 인사를 갔다'고 기록돼 있다.

옛날에는 복국을 먹고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예전에 복어를 먹고 중독이 되면 마당 돌리기를 한다. 복어 중독이 된 사람이 잠을 자면 죽는다 해서 추운 겨울에 복어중독이 된 사람의 머리를 한쪽 팔로 끼고 이마를 치면서 잠을 못 자게 마당을 돌렸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복어독(테트로도톡신)을 이용해 마취제를 개발하기도 한다는데, 복어독을 제거한 후 남는 미량의 복어 독은 오히려 술 해독에 좋다고 한다. 숙취해소에 좋은 복어의 테트로도톡신, 콩나물의 아스파라긴산, 미나리의 복어독 중화 작용과 간 해독, 황달과 숙취해소에 복국만한 해장국은 없을 것이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복을 잡아 처마 끝에 매달아 놓고 꾸덕꾸덕하게 마르면 미나리, 콩나물과 함께 넣고 된장을 풀어먹고 긴긴 겨울밤 삭신이 쑤시는 관절염의 고통을 이겼다고도 한다. 김해 일송생복정(김해시 어방동 1089-14, 전화 (055)322-8921~2)이 이러한 전통적인 방법으로 복 된장국을 한다.

그러나 복국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마산을 빼 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마산의 1960~70년대 언론인 고 김형윤 선생이 쓴 <마산야화(馬山野話)>에 보면 마산의 미각(味覺)이 나온다.

이 책에 보면 '버들다리거리 석태네집 복국과 창원집 생선국 맛을 술꾼들이 비위를 맞추어 주는 곳이었으나 이들도 세상을 떠나 다시는 그 맛을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마산에는 오동동 어시장 일대 복국거리에 남성식당을 비롯해 복집이 무려 27군데가 있고 생선국을 파는 집들도 여러 집이 있어 어시장을 찾는 식도락가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다. 남성식당은 복국을 3대(김승길: 마산시 오동동 251-79, 전화 (055)246-1856)에 걸쳐 이어오고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소문을 듣고 찾아 와 복국을 먹고 갔다고 한다.

마산의 전통적 서민들의 해장국하면 '장어국'을 빼놓을 수 없다. 고 김형윤 선생의 마산야화에는 아귀찜이 언급되었으나 장어국은 기록에 없다. 그러나 아귀를 맨 처음 찜 형태로 만들어 팔던 아귀찜의 원조 혹부리 할머니가 원래는 선창 초가집에서 어부들을 상대로 장어국을 팔던 할머니다. 마산의 장어국은 아귀찜이나 복국 그 이전부터 서민들의 해장국으로 즐겨 먹던 음식이며, 어민들의 보양식이었다.

마산 장어국과 장흥 개두국, 이만한 해장국이 또 있을까?

마산 앞바다 등대가 있는 신포동에 가면 동해장어구이집을 비롯해 바다장어를 요리해 파는 집들이 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 곳에서 장어국이나 장어탕의 맛을 볼 수가 있는데, 동해장어구이집(마산시 신포동 2가 121-14, 전화 (055)224-1004)의 장어국이 담백하고 시원하다.

허균(許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에도 전복 등 다양한 패류(貝類)가 나오는데, 재미있는 것은 제곡(齊穀)이라는 강릉 경포대 산(産)의 작은 조개가 있는데, 이 조개는 흉년(凶年)에 많이 잡혀 주림을 면했다는 전설(傳說)이 있고 곡식(穀食)과 같다하여 제곡(齊穀)이라 불렸다고 한다.

비속어(卑俗語)지만 흔히 여자를 '조개'라고 한다. 그런데 여자를 조개라고 부르게 된 것은 '조가비'를 혼돈(混沌)해서 부르는 말이다. 조개의 무는 힘을 '조가비'라고 한다. 조개 가운데 젖꼭지 모양으로 생긴 것을 패주(貝柱)라고 하는데, 이를 조개관자라고도 부른다.

'키조개' 조개관자는 4~8cm의 원형 근육으로 생겼으며, 이 패주의 수축으로 조개의 입이 열리고 닫힘의 운동을 하는 것이다. 이 조개관자를 일본말로 '貝柱(かいばしら) 가이바시' 라 한다. 패류 중에 조개관자가 크고 잘 발달된 사세목 키조개과의 연체동물로 암수구별이 있는 조개를 '키조개'라고 부르는데, 일본에서는 조개관자가 크다 해서 이 조개를 '(貝柱: かいばしら)가이바시'라 부른다.

우리가 키조개라고 부르는 것은 키조개가 크기도 하지만, 곡물(穀物)을 절구에 찧어서 돌이나 쭉정이를 골라내기 위해 까불릴 때 사용하는 도구 '키(챙이)'와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전남 장흥 정남진에 가면 이 키조개를 '개두'라고 부른다. 역시 일본 말 '貝柱(かいばしら) 가이바시'와 비슷한 이름의 어원(語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개두'란 조개관자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러니 '키조개'는 어원이야 어찌 되었든 우리말 현대어에 속하지만 '개두'가 장흥지역 방언(方言)이 아니라 키조개의 원래 이름일 것으로 추측해 본다.

장흥 사람들은 무를 엇썰어 가마솥에 개두와 함께 넣고 끓여서 국으로 먹는다.

필자가 장흥에 토요시장이 열린다 하여 지인과 함께 장흥의 먹을거리도 취재할 겸 토요일 오후 네댓 시간에 토요시장을 방문했는데, 아쉽게도 이미 파장(罷場)이 되었다. 마침 토요시장에 특산물판매장이 있어 그 곳의 직원들에게 "장흥의 향토음식이 뭐냐?"고 물으니 "키조개와 표고버섯"이라고 한다.

"그건 향토음식이 아니라 특산물이죠"하며 씁쓸하게 나와 장흥의 향토음식 하나쯤은 발굴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수소문해 찾은 것이 바로 '개두국'이다.

일년 내내 키조개가 특산물로 공급이 가능하므로 '개두국'은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게 재현해 낸다면 충분히 향토음식으로 자리매김은 물론 인근 보성 녹차 밭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좋은 먹을거리가 될 것이다.

필자는 전통적인 개두국에다 콩나물을 넣고 끓인다면 참 맛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장흥 안양면 모령리 기와장을 하다 도자기 만드는 일을 하는 하재만· 박순진 부부 도공(陶工)집에 들러 개두해장국을 끓여 달라 청해 맛을 보니, 그 맛이 시원하고 입에 착 달라붙었다. 도공의 집에서는 조개구이를 하는데, 기왕이면 장흥의 향토음식으로 '개두해장국'도 함께 손님에게 내놓으라고 권했다.

/김영복(경남대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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