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 들인만큼 맛도 오래가요"...충분한 거름 필수…묵힐수록 깊은 맛

박해영(60·마산시 석전동)·김명옥(57)씨 부부는 김장을 예년보다 보름정도 일찍 하기로 마음먹었다. 겨울이 갑자기 몰아친 탓에 자칫하면 옥상에 심어둔 배추가 얼까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할머니·딸·손자까지 오붓이 모여 김장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순 기자
최근 집에서 채소를 먹을 만큼만 직접 길러 먹는 사람들이 늘면서 빈 터마다 상추·고추는 기본이고 통통한 배추가 줄이어 있는 곳도 눈에 띈다. 박해영 씨 부부는 올 가을 옥상에 배추모종을 심어 지난 3일 손수 기른 배추로 김장까지 했다. '배추 모종을 심기부터 김장하기까지'는 방법만 안다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고 했다. 거름과 물만 잘 챙겨주면 옥상에서도 4인 가족 먹을 만큼의 배추는 거뜬히 심을 수 있고, 맛도 사먹는 배추보다 고소하고 묵히면 묵힐수록 맛있다고 한다. 박 씨 부부의 그간의 여정을 담아봤다.

◇ 얕은 땅에 모종 심을땐 거름 충분히

지난 1일 박해영 씨 집 옥상에 올랐다. 촘촘히 들어선 집들을 배경으로 퍼런 잎을 펼치고 있는 배추 50여포기가 옥상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네모난 스티로폼 통에 4포기씩 심어져 있다. 박 씨는 몇 년간 봄에는 상추, 여름에는 고추를 심어왔지만 배추는 올해 처음이라고 했다.

지난 9월 추석을 쇠고 고추나무를 뽑았다. 빈 흙을 놀리기엔 아까워 마산 어시장 종묘상에 들렀다. 지난해 도심 밭에서도 잘 자라는 다른 집 배추들을 보며 한번 심어볼까 생각만 하고 있던 터였다.

초가을쯤이면 종묘상마다 배추모종이 늘어서 있다. 지난 9월 어시장 종묘상에 들렀을 때는 100개 모종 한판 당 8000원, 9000원, 1만원까지 값도 천차만별이었다. 1만원짜리 한판을 사서 옥상에 있는 빈 흙에 심자니 '얕은 땅에 이놈이 잘 자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이미 상추와 고추가 거름을 다 빨아먹은 상태라 땅의 힘도 빠질대로 빠져 있었다. 방앗간에서 깨 찌꺼기를 얻어 종묘상에서 산 거름과 섞어 다졌다. 간혹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의 변도 좋은 거름이 됐다.

박해영·김명옥씨 부부가 집 옥상에서 기른 배추가 싱그럽게 영글었다.
◇ 초기에 벌레 잡고, 물 꾸준히


10월초 한창 자랄 즈음에 벌레가 생기기 시작했다. 커서는 어느 정도 벌레를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기지만 어릴 땐 자칫하면 자라지도 못하고 죽게 마련. '초기진압'이 필요하다 싶어 종묘상에서 농약 작은 것을 사 며칠 조금 뿌렸더니 벌레가 금방 사라졌다. 그 이후로 몰라보게 크기 시작했고 더 이상 약은 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워낙 가뭄이 심한 탓에 마르기 시작했다. 3일에 한번씩 잊지 않고 물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행여나 배추가 숨이 죽어 있으면 저녁에 물을 주면 그 다음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금방 활기를 되찾았다.

일 마치고 저녁때면 꼬박꼬박 옥상에 올라 배추 커가는 것을 확인하고 물을 주곤 했다는 김명옥 씨는 아침에 토실토실 살이 오른 배추를 볼 때마다 뿌듯했다고. "정성 들여 물 주고나서 다음날 몰라보게 싱싱해진 배추들을 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몰라요. 내가 다 힘이 났다니까요."

◇ '노란 속' 차지 않아 조마조마했는데

11월이 되자 짙은 초록색 배춧잎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 두 포기는 겉잎이 벌써 노란색을 띠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란 속'은 나올 기미가 없었다. 12월 들면 날씨가 추워져 잘 자라기 힘들텐데 걱정이 앞섰다.

"9월 말에 심어 속이 찰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늦게나마 알이 차서 다행이었지예. 내년에는 8월말이나 9월초에 심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동네 철물점에서 노끈을 사와 배추를 부드럽게 묶었다. 속은 햇빛을 보면 노랗게 영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달 즈음 지나고 노끈을 풀자 노란 속이 꽉 차 있었다.

◇ 기른 배추, 숨 빨리 죽고 부피도 몰라보게 줄어

지난 2일 박 씨는 배추를 뽑고 김 씨는 하나 하나 씻어 소금에 절였다. 이 집 저 집 나눠줄 겸 10여 포기는 시장에서 직접 샀다. 산 배추는 하루정도 놔 둬야 숨이 죽는데 반해 기른 배추는 반나절도 안 돼 숨이 죽어버렸다. 아무래도 집에서 기른 배추는 약 많이 주고 땅 힘이 좋은, 파는 배추보다 힘은 없다. 소금으로 절이기 전만 해도 산 배추보다 컸던 집 배추가 숨이 죽고 나니 산 배추의 절반 밖에 되지 않았다. 약을 안주고 기른다고 볼 때 50포기 정도면 3인용으로 충분하다.

◇ 촉감은 거칠지만 산 배추보다 맛 훨씬 고소해

옥상에서 가을을 난 50여 포기 배추를 뽑고 소금에 절인 후 다음날인 3일 빨간 양념을 발랐다. 할머니, 어머니, 딸, 손자까지 4대가 배추를 치대고 있다. 김장하는 일이 드물어진 요즘, 보기 힘든 풍경이다.

배추에 양념을 묻힐 때도 산 배추와 기른 배추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산 배추는 노란 빛이 감돌지만 집에서 기른 배추는 짙은 녹색이 새빨간 양념색까지도 압도해 양념을 많이 쓰게 됐다. 그런 탓에 자칫하면 너무 짜게 될 수도 있다.

기른 배추는 산 배추에 비해 잎 두께가 반정도 밖에 되지 않고 질감은 다소 거칠다.

맛에서도 차이가 난다. 산 배추는 물이 많이 나고 단맛이 있다. 반면 기른 배추는 약간 질기긴 하나 씹는 맛은 더 좋다. 먹을 때마다 배추향이 솔솔 올라오고 뒷맛은 구수하다.

"배추를 길러서 김장 해먹는 사람들 말이 기른 배추는 겉보기엔 못 생겼어도 맛도 좋고 묵히면 묵힐수록 그 맛이 더한다고 하데예. 오래 오래 먹을 수 있도록 산 배추 먼저 먹고 기른 배추는 아껴 먹어야지예."

부부가 갓 만든 수육에 손수 길러 김장한 시퍼런 배추 잎을 돌돌 말아 한 입에 먹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배추가 워낙 싸서 한 포기 500원도 하는 곳도 있더만은. 그렇게 생각하면 배추에 준 물 값도 안 나온 턱이지요. 하지만 돈과 비교하면 안되지예.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 보면 뿌듯하고 이렇게 김장해 먹으면 보람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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