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급물살에 온몸이 짜릿

산청에는 지리산이 있다. 아니, 지리산이 산청을 안고 있다. 지리산은 경남.전북.전남에 걸쳐 있는데다 경남만도 함양.하동.산청 3개 군에 자락을 깔고 앉은 큰 산이어서 산청만의 것이라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산청 사람들에게 지리산은 생명선이다. 사시사철 지리산을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산청은 붐빈다. 지리산 자락을 따라 밤나무과 감나무를 기르고 나물과 약초를 뜯는다. 감을 깎아 만드는 곶감과 산머루를 따 담그는 머루술은 특산물로 이름높다.
지리산 골짜기를 따라서 물줄기가 흐른다. 산청읍내를 휘감아 도는 물은 경호강이다. 굽이쳐 내려오는 물은 언덕 양쪽에다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고 곳에 따라 달라지는 물살은 강바닥에다 여러 가지 높낮이를 새겨준다.
경호강은 동강에 버금갈 만큼 래프팅에 알맞은 장소로 꼽힌다. 골 깊은 지리산에서 발원하기 때문에 강물이 풍부한데다 앞뒤 양옆으로 굴곡이 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강이 최근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경호강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래프팅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동강에 몰려 있던 업체들이 올들어 경호강이 있는 산청으로 옮기고 있다. 6년 전만 해도 하나뿐이던 래프팅업체가 지금은 모두 10개에 이른다. 여기다 한 군데가 더 등록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래프팅은 급류 타기를 기본으로 한다. 노를 저어 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고무보트를 들어 옮기기도 하지만 흐르는 물살에 온몸을 내맡기고 배 위에서 맛보는 짜릿함이란 말 그대로 ‘필설(筆舌)의 형용을 용납하지 않는다’. 오로지 몸소 느껴보는 수밖에 없다.
지난 24일,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퍼붓는 기세의 경호강물은 온통 싯누런 황토색이다. 언제 가뭄이었냐는 듯 불어난 물이 넘실거린다. 강폭 양쪽으로 물살에 휩쓸리면서 알맞추 자란 풀들이 자빠지고 있다. 곳곳에서 거품이 허옇게 피어올랐다가 사라진다.
태풍 ‘제비’가 갑작스레 올라온 데다(25일 새벽에 비켜갔다) 장맛비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빗속을 뚫고 직장인 30여 명이 나눠 탄 고무보트 3대가 물살을 가르며 내려온다. 남녀 혼성인 이들은 비에 젖어 입술이 시퍼렇게 질려 덜덜 떨기까지 한다. 그런데 표정은 정반대로 하나같이 즐겁다. 게다가 묵은 체증까지 쏴 쓸어내는 듯 목청높여 고함을 질러댄다. 급류 타기에서, 온몸이 빨려드는 듯한 짜릿함을 맛본 것이다. 이들은 전날 밤을 수련원에서 지내고 아침에 간단한 교육을 받은 뒤 보트에 몸을 실었다.
래프팅은 장마가 끝나는 7월부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까지 가장 많이 즐긴다. 겨울철 넉 달을 빼고는 언제나 색다른 맛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레포츠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경호강 래프팅은 대부분 읍내 조산공원에서 시작된다. 업체에 따라서는 이보다 1km 남짓 위쪽에 있는 경호1교에서 하기도 한다. 용이 살고 있다는 용소를 지나 자신마을 앞 급류까지 8km를 1코스라 하는데 흐름이 조용한 편이다.
급류는 자신마을에서부터 어천마을 들머리에 있는 잠수교까지 3km 남짓 되는 2코스에서 절정을 이룬다. 안전요원의 지도에 따라 흘러가면 탄성과 고함이 번갈아 터질 수밖에 없다. 3코스는 여기서 3km 떨어진 홍화원까지 이어진다. 나지막한 잠수교를 지나면 하류답게 물이 불어나 여태까지와는 색다른 느낌이 든다. 어머니 배에다 머리를 묻었을 때와 같은 기분이다.

△래프팅 이렇게 하면 기쁨 두배

경호강 조산공원에서 배를 띄워 홍화원까지 12km를 그냥 평범하게 내려가면 3시간 남짓이면 족하다.
그러나 어찌 밋밋하게 그냥 가겠는가. 안전요원의 안내와 지도에 따라 군데군데 여러 가지 게임을 즐기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더 빨리 가나 내기하는 것은 기본이고, 타이타닉.바이킹 타기와 생존게임 등을 흐르는 물위에서 즐길 수 있다.
래프팅의 가장 큰 즐거움은, 평소 미운털을 박아뒀으나 티는 내지 못했던, 윗사람에게 ‘학실하게’. ‘합법적으로’ 물을 먹일 수 있다는 점이다.
배를 여러 척 뒤집어서 붙여놓은 다음 시간을 정해 있는 힘껏 배밖으로 밀어낸다. 이른바 생존게임인데, 관심 있는 이성에게 다가가는 수단도 되고 윗사람 물 먹이는 방편도 된다고 안전요원이 귀띔을 해준다.
적당한 인원이 배 양쪽 끝으로 몰려 서서 널 뛰듯이 굴리는 바이킹 타기도 재미난다. 딱딱한 바닥에 붙박아 놓고 하는 그네나 널도 상큼한데 하물며 아래위로 요동치는 물위에서 하는 바야 따로 말할 필요조차 없겠다.
타이타닉.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영화 <타이타닉>에서 보여준 모습을 본뜬 놀이다. 뱃전으로 우와 몰려가 서로서로 붙잡고 버텨서면 고무보트가 90도 각도로 우뚝 선다. 물은 출렁대고, 떨어질 듯 말 듯하는 줄타기의 짜릿함이 뼛속까지 파고든다.
마지막으로 하나, 래프팅은 위험한 레저다.
물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갖는 착각일 뿐이지 절대 위험하지 않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구명조끼를 입은 상태에서 구명장비를 갖춘 자격 있는 안전요원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배타기에 앞서 간단한 교육을 통해 노젓기 등 기본을 익히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레저라는 것이다.
10살 이상이면 노를 맡겨 저어 나가게 할 수 있고, 그보다 어린 아이도 배 한가운데 앉혀서 래프팅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다고 앳돼 보이는 안전요원은 힘주어 말했다.
비용은 1인당 2만원 안팎이다. 타기 전에는 아깝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지만, 물에 젖은 채 배에서 내릴 때는 전혀 생각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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