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고가 잇따라 교명변경, 학과개편, 인문고전환 등 변화를 시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신입생 정원미달이다. 실업고에 다니는 학생 중 많은 수가 대학진학을 원하고 있다는 주장도 실업교육 부실을 부채질한다. 결국 실업고는 해마다 정원을 줄이면서 학생을 뽑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실업고의 정원미달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경남의 경우 지난해 전체 실업고 61개교 정원 1만1940명 중 41개교에 1937명이 미달해 평균경쟁률 0.84대1을 기록했다.



올해 실업고가 58개로 줄고 정원도 1만375명으로 줄었지만 2147명이 미달돼 44개 실업고가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전국적인 상황도 경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처럼 실업고가 위기를 맞고 있는데는 교육부의 부실한 실업고 정책이 가장 큰 원인이다.



□교육부의 실업고 정책



교육부의 실업고 정책은 지난해 1월 13일 발표된 ‘실업계고교 육성대책’에 잘 나타난다. 이 육성책의 핵심은 부실한 실업고는 점차 일반계고로 전환하는 방법으로 정리하고 소수의 경쟁력 있는 실업고를 집중 육성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인문교육과 직업교육을 함께 할 수 있는 통합형고교를 2006년까지 시범운영할 방침이다. 현재 인천 강남종고, 충북 진평상고 등 모두 5곳을 통합형고교 시범학교로 지정해 올해부터 운영할 예정이다.



이 계획에는 직업기초교육 강화, 교육과정에 대한 자율권부여, 지역별 공동실습소 육성, 학과개편이나 학교체제개편에 대비한 실업고 교사들의 복수자격·부전공자격연수 등 실업고 운영내실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이밖에 실업고에 대한 정보제공과 홍보강화를 위해 데이터베이스 구축, 실업고 학생에 대한 장학금지원 확대, 시도별·학교별 진로정보실 운영, 학교와 산업체의 연계를 통한 취업지원, 연례적인 직업교육박람회 개최, 그리고 전문대 및 대학에 대한 특별전형 계속 권장 등 행정·재정적인 지원을 강화하게 된다.



□실업고 육성책의 문제점과 대안



이같은 교육부의 실업고 육성대책에 일선학교나 교사들의 반응은 차갑다. 교육부가 실업고에 대한 재정지원을 해마다 줄이면서 육성책을 발표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창원의 한 실업고 관계자는 “이미 정부가 실업교육의 중심축을 전문대로 옮기는 정책을 발표한 마당에 지난해 내세운 실업고 육성책은 실업고를 살리는 정책이 아니라 실업고를 죽이는 정책일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3년간 실업고에 지원되는 실험실습확충·수리·실험실습비가 해마다 격감하고 있다.



경남의 경우 실업교육에 가장 중요한 예산인 실험실습 확충비가 97년 74억7200만원에서 이듬해 54억9000만원으로 줄었고, 99년에는 전년에 비해 무려 44억여원이 줄어 10억4100만원이었다. 실업고 육성책이 발표된 지난해 예산은 전년도에 비해 2억원이 증가한 12억4000만원에 불과했다.



실험실습 기자재 수리 등에 쓰이는 수리비도 97년 4억3300만원에서 98년 1억9800만원, 99년 9400만원으로 급감했다. 실험실습 소모품에 지원되는 실험실습비도 97년 20억6000만원에서 해마다 줄어 지난해는 14억4500만원이 지원됐다.



이는 경남뿐 아니라 전체 시·도 교육청의 일반적인 현상으로 대부분의 실업고에서 실험실습을 위한 투자가 끊긴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일선 학교에서는 10여년전에 구입한 낡은 기자재로 실험실습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 실업고 관계자들은 대학위주의 편협한 가치관과 사회구조, 학력에 따른 임금차별 등 사회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업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없이 실업교육 정상화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실업교육 정상화를 위해 △실업교육체제 개편(2~5년제 도입 등 학제 다양화) △자격증제도 개편과 기능대회제도 개선 △실업계 고교 수업료 감면 △동일계 대학진학 특별전형 확대 △실업고 투자 확대 △직업·기술교육 지원체계 강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실업고 한 교사는 “정책당국이 교육수요자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실업고를 방치하고 있다”며 “이들의 인식전환이 없는 한 무원칙적인 인문고전환은 계속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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