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중심의 남녀관계가 보여주는 파멸성

영국의 작가 토머스 하디(1840~1928)의 소설 <테스 designtimesp=12356>는 한 여인이 겪는 삶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사랑이 없는 상태에서 억지로 가진 성관계가 진정한 사랑을 가로막고 평생을 지배하며 죽음에 이르게까지 한다.
아름다운 처녀 테스에게 비극의 씨앗은 가난이었다. 테스는 벼락부자가 된 가짜 귀족 집안에 일하러 들어간다. 안개가 자욱한 어느 날 새벽 숲 속에서 잠결에 이 집안의 청년 알렉과 성관계를 갖게 된다.
하디는 이 장면에서 ‘얇은 비단결만큼이나 연약하고 실제로 티없는 아름다운 여자의 몸에 마치 운명이기나 한 듯 이렇듯 추잡한 무늬를 찍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거나, ‘테스의 몇 대 조상이 싸움터에서 개선할 때 시골 처녀들에 대해 더 거친 방법으로 욕망을 채웠을 것에 대한 인과응보’라는 식으로 모호하게 처리하고 있다.
20일 뒤, 테스는 사랑하지 않는 알렉이 떠나고 그 뒤 사생아를 낳지만 아이는 병으로 죽고 만다. 반면 삶의 비극성은 죽지 않고 더욱 커진다.
생계를 위해 목장의 젖 짜는 일꾼이 된 테스는 목사의 아들 에인젤과 사랑하게 돼 결혼에 이른다. 첫날밤 서로 과거를 고백하는데 테스는 에인젤의 잘못을 용서하지만 에인젤은 테스가 순결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둘은 일단 헤어져 살기로 한다. 고원지대의 농장에 취직해 막노동을 하는 테스. 여기서 전도사가 된 알렉과 우연히 만난다. 알렉은 테스가 자기 때문에 가장 큰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은 하지만 “당신이 내 마음을 뒤엎어 놓은 것 같다”며 “당신의 매력과 행동으로 결코 유혹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라”고 다그친다. 결국 알렉은 전도사의 길을 버리는 대신 더욱 더 심해진 가난을 해결해 주고 테스와 함께 살게 된다.
남편 에인젤은 때 맞춰 테스에 대한 참된 사랑을 깨닫고 돌아온다. 후회와 원망에 사로잡힌 테스는 알렉을 찔러 죽인 뒤 ‘자신을 깨끗하게 사랑하고 순결한 여자로 믿어준 단 하나뿐인 남자’ 에인젤과 함께 달아나 일주일 가량 지내다가 붙잡혀 처형된다.
소설 <테스 designtimesp=12364>에는 성행위나 성욕에 대한 직접적이거나 노골적 묘사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남성 지배 사회에서 빚어지는 남녀 관계의 적대적.파멸적 성격을 훌륭하게 드러내 보인 작품임은 부정할 수 없다.
알렉의 이기주의는 파멸을, 에인젤의 잘못된 도덕관은 고난을 테스에게 안겨줬다. 심지어 뒤늦게 되찾은 에인젤의 참 사랑은 살인의 계기가 되어 테스를 교수대로 이끌 뿐이었다. 모든 사회제도와 관습이 여성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정조’를 절대시하던 당시의 관행에 비춰 보면 테스는 ‘순결을 잃은 살인자’일 뿐이다. 하지만 하디는 작품에 ‘충실하게 재현한 어느 순결한 부인’이라는 부제를 다는 등 테스를 적극 감쌌으며 덕분에 ‘도덕적 건전성을 잃은 불온한 작갗로 취급돼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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