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동네 친구들과 둘러앉아 별 희한한 내기를 하던 기억이 난다.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긴다느니, 소머즈하고 600백만 불의 사나이가 팔씨름을 하면 누가 이길 것이라든지, 마징가 제트와 로보트 태권 브이가 붙으면 누가 이길까’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논쟁하던 기억이 새롭다.
자기 말이 옳다고 박박 우기다 보면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황당한 이론을 들먹이게 된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어려운 이야기 같으면 대번에 반박이 이어진다.
그 반박이란, “야, 너 그 소리 어디서 들었어!”이다. 그러면 십중팔구, “우리 형님이 그랬어” 아니면 “책에서 봤어”이다. 그렇다, 형님과 책은 거의 우상이었다. 힘의 원천이고 지식의 샘이었다.
형님과 책(활자)은 권위의 상징이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쥐약을 가져왔다. 음식물에 섞어서 사용하는 잔잔한 알갱이 약이었다. 색깔도 알록달록 참 고왔다.
호기심에서 이리저리 살펴보던 친구 한 녀석에 의해 예의 논쟁이 붙었다. 말인즉, 쥐약은 쥐가 죽게 만들었기 때문에 사람은 먹어도 죽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럴까. 온갖 이론과 경험(?)이 튀어나오고 용감한 누군가가 먹어 보기로 하였다. 죽지 않는다고 고집을 피우던 친구가 생체 실험으로 증명하겠다는 것이다. 모두들 무서웠다. 사실 그 친구도 두려움에 떨었다. 누구도 결과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보여주기 위하여 먹을 것인가! 결국 쥐약은 먹지 못했다.
동네 어른에게 들켜서 혼이 나고, 그 논쟁은 뒤로 미루어 졌다.
난 아직도 과연 쥐약을 먹으면 죽을까 죽지 않을까 알지 못한다.
그러나 가끔 동네 개들이 쥐약 풀어놓은 음식을 먹고 토하고 있으면 비눗물을 먹이던 모습을 보았다. 아마도 쥐약을 사람이 먹으면 죽을 것이다. ‘아마도’ 라고 한 것은 이 논쟁을 나 혼자서는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옛 친구들이 다 모이면 그때서야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마산 동네에 논쟁이 한창이다. 마산만을 매립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매립하자는 쪽도 이유는 있고, 매립을 반대하는 쪽도 이유는 있다. 그 이유들을 이 자리에서 시시콜콜하게 다시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그 결과를 우리는 확실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동네 개가 쥐약을 먹고 죽어 가는 것을 보고 짐작하듯이, 경제 논리에 의해 바다를 매립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매립 시행 기관에서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하여 쥐약을 먹을 필요는 없다.
설사 쥐약을 먹고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바다의 매립은 쥐약을 먹는 것 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시화호’와 ‘새만금’ 그리고 죽어간 무수한 갯벌들을 통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매립을 반대하는 쪽은 주로 시민단체와 환경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매립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신항만의 개발은 친 환경적으로 해나가고, 거기에서 나오는 준설토를 이용한 매립에 대해서는 모든 정보를 공개하여 진지하게 함께 고민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매립 시행 기관과 시민단체간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불필요한 마찰을 없앨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마산만 살리기의 새로운 출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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