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가 붕괴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뭘까? 나는 그걸 노동조합의 존재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노조가 없었다면 벌써 폭동이든 혁명이든 통해 체제변혁이 되고 말았을 거란 얘기다. 그래서 나는 압력밥솥의 수증기 배출꼭지나 주전자 뚜껑의 구멍 역할을 노조가 하고 있다고 본다.

   

어차피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조합의 힘이 아무리 강해진다 한들 노동자가 자본가를 지배할 순 없다. 다만 어느 정도 불만과 요구의 분출 통로를 마련해 줌으로써 뒤집어 엎어버리는 사태를 방지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노동조합이라는 것이다.

공무원노조도 마찬가지다. 전체 사회는 급속도로 민주화가 이뤄졌는데, 공직사회만 과거 권위주의 체제로 남아 있다면 언젠가는 물이 끓어 넘치거나 밥솥이 폭발하는 사태가 올 수밖에 없다.

사실 까놓고 이야기해서 공무원노조가 생긴 후 언론환경만 해도 얼마나 깨끗해졌나. 과거엔 행정기관의 ‘기자실’이라는 음습한 공간에서 공공연히 촌지봉투가 오갔고, 그 방에 배치된 임시직 여성공무원은 ‘공용촌지’를 관리해주는 총무 노릇까지 했었지 않나. 그 방에 있던 기자들은 또 얼마나 권위적이었나.

시민의 세금으로 제공된 사무실을 빌려 쓰는 주제에 마치 오래 전부터 그 방의 주인이었던 것처럼 공무원이나 시민의 출입을 제멋대로 통제하고, 심지어 같은 기자라도 힘없는 매체는 못 들어오게 하는 횡포를 부려왔던 게 사실 아닌가. 그러면서 몇몇 기자들끼리 ‘당고(だん-ごう : 담합의 일본말)’하여 멋대로 기사를 빼주거나 조지는 짓들을 했던 곳도 기자실 아니었나.

노조는 주전자 뚜껑의 구멍

그런 기자실을 지금의 개방형 브리핑룸으로 바꾼 건 도지사나 시장·군수가 아닌 공무원노조였다. 공무원노조가 총대를 메고, 언론노조와 민언련이 뒷심을 보탰던 것이다. 덕분에 적어도 ‘공공연히 주고받던 촌지’만큼은 사라지게 됐고, ‘당고’라는 말도 언론계의 은어 목록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공무원 조직은 또 어떤가. 이것도 솔직히 한번 이야기해보자. 옛날엔 조직의 수장이 맘대로 연줄인사·금품인사를 해도 내부에선 ‘찍’소리 한마디 못했다. 명절 때면 돈봉투나 선물 꾸러미를 든 업자들이 도청과 시·군청 복도를 휘젓고 다녀도 아무도 통제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게 사라진게 불과 몇 년 전인가. 공무원노조가 명절 떡값·선물 추방운동을 벌이면서부터였지 않은가.

이 밖에도 노조 덕분에 공직사회가 투명해진 사례를 열거하자면 숨이 찰 정도이지만, 위의 두어 가지 공적(功績)만으로도 국민들이 상(賞)을 줄만한 가치가 있다. 공무원노조에게 최고의 상은 ‘노동3권’을 주는 것이다. 혹자는 공무원에게 파업권까지 주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공무원들이 그렇게 단순·무식·과격하지는 않다. 나는 오히려 3권을 다 보장해 주어도 공무원들의 속성으로 보아 ‘어용화’ 될까봐 걱정이다. 인사권을 쥔 단체장에게 빌붙어 사욕만 채우는 어용노조로 변질되지만 않는다면 국민에게 덕이 됐으면 됐지, 해가 되지는 않을 거란 뜻이다.

국민의 마음 얻어야 승리

그럼에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노조를 어용화하는데 혈안이 돼있다. 서로 물어뜯고 싶어 안달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지만 희한하게도 공무원노조에 대해선 죽이 척척 맞는다.

우리는 단결권과 교섭권, 단체행동권 3개를 노동자의 기본권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정부는 두 가지는 사실상 빼버리고, 하나 남은 단결권마저 제한하는 법을 만들어 합법 테두리 안에 들어오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 법대로 하면 공무원노조는 어용이 될 수밖에 없다. 머슴의 팔 다리 다 잘라놓고 열심히 일하라고 강요하는 셈이다.

문제는 그런 정부의 논리가 국민들에겐 더 먹히고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이 무슨 노조를 한다고 난리야.” “합법노조 인정해줬으면 됐지, 더 뭘 바라.” “인사협약 파기 때문에 저런다고? 그거 다 자기들 밥그릇 싸움 아냐?” 이런 반응이다. 공무원노조로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 때문이라고? 물론 그런 탓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볼 땐 공무원노조의 홍보전략이 틀렸다. 틀리거나 서툰 건 고치면 되지만 소홀하기까지 하다. 도지사가 홍보에 기울이는 노력의 10분의 1만큼이라도 해보라.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법외노조로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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