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18일 정치자금을 돈세탁방지법의 규제대상에서 제외키로 합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 이루어진 합의는 이전의 합의를 뒤집는 결정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한국정치의 단면이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이번 합의는 밀실야합의 전형에 불과하다. 먼저 돈세탁방지법에 정치자금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은 국민적 요구에서 출발한다. 이런 요구를 민주당의 소장파의원들이 받아들이면서 세상의 이목을 끌기 시작하였고, 한나라당도 지난 3월 9일 이회창 총재가 직접 나서서 당론으로 확정하였다.
하지만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야당탄압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우려가 있다고 한나라당이 강력히 주장하면서부터 돈세탁방지법의 원래적 의미는 사라져버리게 된다. 다른 정당들도 금융정보분석원이 행사할 무제한적인 계좌추적권이 자신들의 목줄을 옭아맬 수도 있다는 우려를 공공연하게 퍼뜨리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 정치자금의 정당성을 은연중에 내세우기 시작하였다. 즉, 불법적인 마약자금과 정치자금을 동일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정보분석원의 활동이 마비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당 내에서도 높아져가면서 밀실야합이라는 구태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집권여당은 시중 자금흐름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계좌추적권을 가진 기관이 존재해야하는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정치자금은 제외한다는 주장을 펼쳐 앞뒤가 맞지 않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 셈이다. 정경유착에 사용되는 자금은 추적이 불가능하게 해놓고 민간기업의 활동 자금은 감시하겠다는 기가 막힌 말을 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치자금을 누가 얼마나 은밀하게 모으고 사용하는가에 따라 정치인으로서의 위상이 달라지는 것이 한국정치의 현실이다. 지역주의와 계보정치라는 말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한국의 정치풍토는 정책을 중심에 두는 정당이 아닌 개인의 인맥과 연고가 중시되는 인물정치로 굴절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정치자금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사정을 알만한 사람은 모두가 아는 평범한 상식인데도 불구하고 유독 정치권만 모르쇠를 계속 내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그간 누려 온 특권을 스스로 제약하는 법률을 만들라는 국민들의 요구에 처음에는 짐짓 수용하는 척하다가 나중에는 현실을 들먹이며 불가론으로 입장을 모으는 기성 정치인들의 놀라운 순발력 앞에 국민들은 말문이 막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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