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 팔도서 온 ‘웰빙간식’

지난 23일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를 보내서일까. 29일 창원 팔룡동 5일장에는 가을을 재촉하는 햇고구마, 햇밤, 햇땅콩이 발길을 붙들었다. 어릴 적 시골집 마루마다 소쿠리 가득 담겨있던 ‘주전부리’들이다. 한때 오색 별맛 과자들에 밀려났지만 최근 과자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면서 옛 주전부리들이 되레 ‘떠오르는 맛’이 됐다.

▲ 창원 팔룡동 5일장에 나온 햇고구마·감자·연근사진. /박종순 기자
“요즘에는 웰빙이다 뭐다 해서 깨끗한 것 보다 흙이 붙은 것을 더 찾습니더. 함 삶아 먹어 보이소. 요 고구마는 황토 속에서 기른 고구마고, 요 고구마는 모래땅에서 나온 고구마라서 색깔이 좀 달라예. 둘 다 햇고구마라 억수로 맛있어예.”

햇고구마는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밤고구마다. 물고구마에 비해 겉모양은 둥글고 속살은 노란 편이며 전분이 높아 부드럽고 달콤하다.

밀양 연근, 여주 밤고구마 등 제 각각 원산지가 적혀 있다. “외국산이 워낙 많으니까, 자꾸 어느 산인지 물어서 어디서 가져왔다 적어놨다 아입니꺼.”

늦가을이 제철인 연근이 조금 일찍 모습을 드러냈다. 수능을 앞둔 고 3 수험생을 둔 부모라면 번쩍 할만한 말을 던진다. “아이들 코피 난 데 그만이고 피로 회복에도 참 좋습니더. 갈아서 마시면 제일 좋고 먹기 좀 그러면 튀김가루 발라서 튀겨 먹어도 되고….”

햇고구마에 비해 가을의 상징인 햇밤 또한 아직 이른 편이다. 진주 집현면 냉전리에서 왔다는 한 할머니가 집에서 따왔다며 쌀 한 되 담는 통에 밤을 가득 담는다. 한 되에 3000원이라며 건네니 가져온 양이 반으로 준다.

“저기 진주 촌구석에서 왔다 아이가. 상추며, 고구마 줄기며 다 내가 심은기다. 밤은 이제 익기 시작해서 요거 가져왔어. 혹시나 해서 가져왔더니 다른 데는 많이 없네. 다해서 5000원, 색시야.”

가을을 부추기는 햇주전부리 속에는 늦여름이면 제 맛을 낸다는 찰옥수수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전 10시, 이른 시간인 탓에 창녕에서 왔다는 한 할아버지가 첫 물건도 못 팔았다며 안 사려면 묻지 말라고 딱 잘라 얘기한다. “햇땅콩이 참 맛있겠네요. 한 주머니 줘 보세요”했더니 그제서야 말문을 연다.

“땅콩은 창녕 함안에서 가지고 왔어. 지금이 제철이제. 검붉은 찰옥수수는 흰옥수수보다 쫀득쫀득하지만 알이 단단한 편이라 오래 삶아야 맛있어. 이제 묻지마. 장사해야 돼.”

▲ 창원 팔룡동 5일장에 나온 옥수수·땅콩사진. /박종순 기자
지나가는 길에 호박 같이 생긴 채소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조선오이란다. 누렇고 울퉁불퉁한 게 어디 하나 이쁜 데가 없다. 사천 서포에서 왔다는 한 부부가 직접 기른 것인데 다섯 개만 가져왔단다. 대형시장에서 볼 수 있는 미끈하게 빠진 것은 종자를 개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푸른 오이보다 시원하고 아삭아삭한 맛이 더해 한 번 먹어보면 조선오이만 찾게 된다고.

갓 나온 햇채소·과일이 장터에서 볼 수 있는 신선함이라면 토종 자연산은 특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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