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인가.
지금으로부터 41년 전인 1960년. 당시 마산양민학살유족회가 검찰에 제출한 고발장을 보면 ‘강상봉’과 ‘노장현’이라는 이름이 눈에 띈다. 마산경찰서 사찰계 형사였던 사람들이다.
유족회는 50년 마산에서만 1681명의 시민을 재판도 없이 학살한 ‘천인공노할 만행’의 책임자로 이들을 포함한 11명을 지목했던 것이다.
이들 두명의 이름이 특별히 눈에 띈 것은 그들이 60년 3.15마산의거가 일어났을 때에도 가장 앞장서 시위군중을 탄압.고문하고, 용공조작에 나섰던 ‘원흉’이었기 때문이다.
사찰계장 강상봉은 당시 최고의 세도가였던 이용범 자유당 국회의원의 수족 노릇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고문하는 등 또 한번 악명을 떨쳤다.
사찰계 주임이었던 노장현은 3월 15일 밤 경찰의 발포로 숨진 학생 3명의 시체 호주머니에 ‘인민공화국 만세’라고 적힌 쪽지를 집어넣고 이날 밤 시위를 ‘공산당의 사주에 의한 것’으로 조작하려 한 장본인이다.
이들 뿐만 아니다.
역시 3월 15일 몽둥이와 쇠사슬 등을 들고 시위대에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 ‘반공청년단’도 50년 당시‘대한청년단’‘민보단’ 등 각종 단체의 이름으로 학살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했다.
또 이들 우익단체 간부들은 전쟁 당시 ‘비상대책위’라는 이름으로 마산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전쟁후 대부분 자유당간부가 됐고,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마산의 유지로 행세해 왔다.
또 이들 중 상당수는 일제말기 경방단 등 친일단체 간부를 지냈던 인물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친일파들이 해방 후 친미.반공주의자가 됐고, 자유당과 공화당을 거쳐 5.6공 및 문민정부,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모든 기득권을 행사해 왔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취재관정을 통해 기억하고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배운다.
우리의 삶이 ‘기억과의 투쟁’이어야 할 이유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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