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떠들썩했던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가 요즘은 각종 언론매체에서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있다.
이번에도 냄비처럼 들끓던 여론이 끓어 넘쳐 제풀에 다시 꺼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요즘도 때때로 일본군들에 의해 성폭행을 당하는 악몽에 시달리다 식은 땀을 흘리며 깨어나곤 한다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한 두 분이 아니다.
피해자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오십년 간의 침묵을 깨고 용기있게 자신의 경험을 증언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성의 있는 사죄와 그에 상응하는 법적 배상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계속 훼손당하고 있다고 가슴을 친다.
더욱이 최근 일본 교과서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피해 당사자로서 느끼는 분노가 남다르다.
군대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진상규명과 법적 배상,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역사교과서에 올바르게 기록하여 후손에게 가르쳐달라는 할머니들의 요구가 단순히 구호에 그쳐버릴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의 수정 요구에 대해 일본 정부와 언론이 보여준 태도는 이미 예견한 것이었지만 역시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일본의 영향력있는 신문인 요미우리는 사설에서 “일본 법률에 기초해 검정을 완료한 교과서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 동원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수정할 필요가 있는 것은 공장 등에 근로 행위를 위해 동원됐던 ‘여자정신대’를 군대 위안부 징용이었던 것처럼 오기한 한국 교과서”라며 우리 쪽에 화살을 돌렸다.
일본군 위안부제도는 이미 국제적으로 전쟁범죄이며, 인도에 반한 죄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다.
일본 정부도 1993년 당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을 통해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영된 것이고,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도 자기 편의식 역사 해석이 횡행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재수정도 피하고 한국과의 관계도 유지하기 위해 한일 역사학자에 의한 공동연구기관을 설치하여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라고 한다.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해결책으로 내세운 것이 연구기관 설치라면 그러한 발상은 비등한 여론을 잠재우려는 제스처이며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의 근사한 도피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은 현재 이 현안을 담당하고 있는 한일 당국자들은 물론이고 언론도 역시 직시해야할 문제이다.
근본적인 해결은 뒤로 미룬 채 이 문제를 정치 협상으로 매듭짓는 것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나치전범을 스스로 처벌하고,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피해자를 지구의 반대쪽에 위치한 한국에서조차 찾고 있는 독일의 자세를 보라.
2차대전의 전범국인 독일과 일본의 전후처리 방식이나 태도가 어떻게 이처럼 다를 수 있는가.
일본이 진정으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자존감.자부심을 북돋워주는 교과서를 만들어 가르치고 싶다면, 이웃의 인권과 인격을 존중하는 자세부터 어른들이 본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잘못을 잘못이라고 밝히는 것이야말로 큰 사람, 큰 나라의 용기이다. 수많은 피해자들의 한숨과 원망과 절규를 짓뭉개고 아름답게 치장한 역사 교과서가 진정으로 일본의 미래를 밝혀줄 장밋빛 교재가 될 것인가 묻고싶다.
청산하지 않은 역사는 대를 이어 후손에게까지 오욕의 잔을 넘길 것이다.
언제까지 과거의 망령이 국가간의 선린 관계를 훼손시키며 떠돌게 할 것인가.
피해자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출발점이 될 때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 세대를 이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상호 이해를 넓혀나가는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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