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손맛 알아버렸죠”

시골 구석구석 돌며 안 먹어 본 것이 없다. 먹는 것 앞에서는 거침없다. 꿈틀대는 산낙지부터 흙이 채 떨어지지 않은 갓 캐낸 고구마까지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맛보다 김치를 쭉 찢어주는 할머니의 자잘한 손때와 배에서 갓 잡은 생선회를 초고추장에 푹 찍어주는 아저씨들의 넉넉함이 더 맛있다.

▲ 어릴 적 아귀찜 심부름으로 양은냄비를 들고 왔던 그 집에서 그녀는 스스로 터득한 입맛의 비결을 이야기했다.사진/박종순 기자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아 일이 즐겁다는 KBS창원총국에서 근무하는 <6시 내고향> 김연주(36) 리포터다.

‘맛 전문 리포터’ 경력 10년. 생명력이 짧기로 소문난 리포터계에서 10년 넘게 자리를 지키기란 쉽지 않다. 그녀의 10년 내공에는 어딜 가나 잘 먹는 ‘내숭 없는 입맛’과 눈을 감고도 알아낼 정도로 뛰어난 미각이 밑거름이 됐다.

“어머니의 역할이 컸어요. 넉넉하게 산 편도 아니었는데 어릴 때 도시락 반찬이 8가지 정도였어요. 콜라는 1년에 딱 두 번 먹었는데 봄·가을 소풍 때였죠. 간식거리로 연근 튀김, 말린 코다리를 주셨고 햄버거도 빵만 사고 속은 만들어 넣어주셨어요.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셨던 어머니 덕이죠.”

너무 잘 먹었더니………내숭없는 입맛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면 마냥 즐거운 그녀의 성격이 가장 큰 장점이다. 시골 맛을 찾아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면 묻고 싶은 게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할머니의 자글자글한 주름사연을 여쭈면 한편의 소설처럼 고생한 사연이 새끼 꼬듯 엮어지고 얼굴이 곱기 그지없는 할머니는 말씀 속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정이 담겨 나온다. 생각지도 못한 답변을 잘 끌어낸다는 평을 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인터뷰하기 전에 할머니와 워낙 친해지다 보니 예상치 못한 값진 답변이 나오고 인터뷰도 손녀랑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와요. 처음엔 군소리 많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이젠 스태프도 그런 소리 안하시더라고요.”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연만큼이나 ‘묵은 손맛’을 찾는 편이다. 이날 찾은 식당은 30년 단골집인 마산 오동동 원조 아귀찜집 ‘원조 진짜 초가집’이다.

특별한 날 남들은 통닭을 먹었지만 어머니는 항상 이 집 아귀찜을 내놓으셨다.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6살 때부터 한 달에 최소 두 번씩은 양은냄비를 들고 사러간 덕에 이 집 할머니는 척 보면 그녀를 알아볼 정도다.

여름에는 맵고 칼칼한 이 집 아귀찜 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 말린 아귀는 생 아귀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이 있단다.

   
아무거나 안먹어………까다로운 미각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말 그대로 깊은 맛을 자아내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이맘때면 젓갈 색을 띠는 푹 삭힌 묵은 김치도 빼 놓을 수 없다. “국수와 곁들여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잖아요. 그리고 8월말은 은어가 제철이에요. 은어밥에서 수박 향이 가장 많이 날 때죠. 하동 사람들은 라면에도 은어를 넣어 국물을 우려낼 만큼 즐긴다고 하더라고요.”

첫 맛에 빠진 맛들이 꽤나 있다.

10년 전 낚시 프로그램에서 제대로 물오른 감성돔을 먹었다. 그때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전에는 회 맛을 잘 못 느꼈는데 그때 느꼈죠. 살은 연하고 맛은 고소한 것이 이 맛에 사람들이 회를 먹는구나 싶었어요. 낚시꾼들의 심정이 이해가 됐어요. 그때 이후 횟집 생선은 왠지 싱겁더라고요. 소금 뿌려 구워먹은 볼락도 그 맛이 기가 막혔죠. ‘이놈을 구우면 십리 밖까지 소문이 난다’는 옛말 그대로더라고요. 여하튼 입맛이 점점 더 까다로워져 큰일이에요”

어디든 찾아간다………끊임없는 ‘밥심’

그녀는 가리는 건 없지만 맛없는 건 안 먹는다. 합천댐 근처 송씨 고가의 메밀국밥, 의령시장 쑥국수, 밀양시장내 60년 전통 돼지국밥, 함양 마천 석이버섯까지 <6시 내고향>을 진행하면서 싱싱하고 맛있는 음식만 찾아 먹다보니 자연스레 입맛이 까다로워졌다. “결혼해서 아이를 가지면 남편이 고생을 많이 할 것 같아요. 매일 이 동네 이 집 이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할거 아니에요.(웃음)”

10년 넘게 일하면서 가장 착잡할 때는 맛을 내던 할머니의 손길이 끊길 때다.

“하동에서 뻑뻑하고 구수한 콩국수를 싸고 넉넉하게 주시던 할머니가 얼마 전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팠어요. 맛은 흉내낼 수 있을지 몰라도 할머니의 세심한 손맛과 정은 그 할머니만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앞으로도 잊혀져 가는 손맛을 찾는다면 어떤 험한 곳을 가도 상관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에게는 맛을 찾는 사람들과 맛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튼튼한 ‘밥 심(힘)’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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