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스러워서 더 유쾌한 토론

정칟경제·사회 현안을 다루는 시사 토론프로그램들은 밤늦은 11시쯤에 시작하는 게 거의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여기 가정주부들을 주 시청자 층으로 하는 토론프로그램이 오전 11시에 방영되고 있다. 딱딱한 테이블을 앞에 두고 설전을 벌이는 모습은 좀체 보기 힘들지만 보는 이들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다. 별도의 패널이 정해져 있긴 해도 방청객들 모두가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한다. 사실 토론이라기보다는 ‘수다’로 비쳐질 수도 있는 형식이긴 하지만 ‘수다’도 이쯤 되면 ‘뒷담화’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기에 모자람이 없다.

방청객 전원 적극적 참여

<주부, 세상을 말하자>의 제작진은 이 프로그램을 두고 “주부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정의 내린다. ‘주부, 세상을 말하자’라는 제목에서도 제작진의 이 같은 의도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주부들의 시각’이라는 게 따로 존재하는지 의문이지만 이 프로그램은 ‘주부들의 시각’에 한정되어 있지도 않다. 방송 시간대가 오전 11시라서 ‘주부 프로그램’의 범주에 묶일 수는 있다고 쳐도, 여기에서 논의되는 사안들은 정칟경제·사회를 아우르는 것들이다.

지금까지 다루어진 주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택담보대출 제한, 내 집 마련(7.5) △법을 알면 생활이 편하다(7.17) △주부 알코올중독, 이제 벗어나고 싶다(7.20) △전국을 삼킨 물난리 지원책 어떻게(7.24) △상속재산 절반은 아내의 몫, 여성 재산권 강화(7.26) △자녀양육 해결해야 이혼할 수 있어요(7.31) △꼬리 무는 실종,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 무엇이 문제인가(8.2) 등이다.

여성 관련 사회 의제 반영

주로 여성들의 권익과 관련한 내용들이긴 하지만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사회적 의제’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들이기에 여성들만이 주 시청자가 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지난 2일 방송된 ‘꼬리 무는 실종…’ 편에서는 경찰청 여성청소년계 관계자와 동국대 경찰행정과 교수 등이 출연해 실종사건 현장에서 발생한 수사의 허점을 진단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미덕은 정용실 아나운서의 노련한 진행이다.

그 자신이 ‘주부’이기도 한 정 아나운서는 사안의 핵심을 찌르는 멘트들로 출연진의 참여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단순 비교의 오류를 약간 저지르자면 <MBC 100분 토론>의 손석희를 연상케도 한다. 그럼에도 ‘여자 손석희’와 같은 표현은 삼가는 게 좋을 듯하다.

사회자 노련한 진행 ‘백미’

그 나름의 특징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31일에 방송된 ‘…이혼 할 수 있어요’ 편에서 패널로 참가한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이 자신의 논지를 펼치는 과정에서 “문제는 여자들이 법을 너무 모른다는데 있어요”라는 말을 불쑥 내뱉자 정 아나운서는 “법이 너무 어려운 게 아닌가요?”라며 능숙하게 교통정리를 해나간다.

<주부, 세상을 말하자>를 보고 있으면, 시장 거리를 거닐며 ‘한미 FTA’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 찜질방에서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는 주부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물론 그 이야기는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딱딱하지 않고 쉽고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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