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마다 만원...자연·연극·인간 ‘하나가 되다’

연일 계속되는 불볕더위. 계곡물에 몸을 담근 사람들은 느긋하다. 따가운 햇볕은 오히려 물놀이를 더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해가 지면 쌀쌀하다.

계곡은 하얀 입김을 뿜으며 사람들을 밀어낸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느긋함이 초조함으로 변하는 건 아니다. 뙤약볕 아래서 신나는 한때를 보낸 이들은, 해가 지면 극장 속으로 빠져든다.

▲ 지난 5일 거창국제연극제에서 선보인 <서툰사람들>공연 중 한 장면./박일호 기자
극장 안은 한 낮의 계곡처럼 사람들로 꽉 찬다. 열기가 넘쳐나는 건 당연지사. 그러나 이도 잠시, 계곡의 그늘 속에 숨어 있던 서늘한 바람이 극장을 휘감아 돈다. ‘자연’과 ‘연극’과 ‘인간’이 절묘하게 섞이는 순간이다.

지난달 28일 막을 올린 제18회 거창국제연극제. ‘내안의 열정, 세상을 담아오다’라는 주제로 흥행가도를 달린 지 10일이 지났다. 축제의 절반을 채운 셈이다.

이 기간에 천혜의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거창 수승대 국민관광단지를 비롯한 거창읍내에서는 9만 여명이 무료공연을 즐겼고, 이미 2만 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직접 표를 끊고 연극을 관람했다. 산술적으로 단순 계산을 해보면 지난해 무료관람객 수(15만여명)와 유료관람객 수(3만여명)를 모두 갱신할 전망이다.

◇ 극장마다 만원

수승대 내에서 유료공연이 펼쳐지는 위천극장(500석)·축제극장(800)·거북극장(350)·돌담극장(700)·감나무극장(400)은 모두 야외 극장이다.

해가 지면 극장 옆 티켓박스 주변으로는 인산인해를 이뤘고 극장마다 길게 줄을 서는 것은 예사다. 연희단 거리패의 뮤지컬 <천국과 지옥> 마지막 공연이 있던 지난 3일에는 공연이 시작되기 2시간 전부터 몰려든 관객들로 인해 축제극장 주변이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다.

특정 극장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다고 해서 다른 4곳의 극장이 한산 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하루에 2~3 곳의 극장에서는 입장하지 못해 티켓을 환불하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생겨났다.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위원장 이종일)에서는 올해 무료초대권을 거의 모두 없앴다. 관행적으로 나가던 무료초대권이 사라짐으로써 주변 주민들의 항의를 들어야 했을 정도다. ‘집행위’로서는 일종의 모험이었다. 현재까지 하루평균 유료관람객수는 2000 여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보다 유료관객 수가 20% 정도 상승할 것 같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집행위’ 이영철 홍보국장은 “전체 무료관람객 수(수승대 방문객)는 지난해와 비교해 그리 많이 늘 것 같지는 않은데, 무료 초대권을 없앴음에도 유료관객수가 20% 정도 늘어나고 있어 상당히 고무적이다”고 말했다.

◇ 관객들 “만족한다”

5일 저녁 부산 시립극단의 <십이야> 공연을 보기 위해 줄을 선 이숙선(36·대구 동구)씨는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 짜증스럽지 않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서서 기다리는 것도 재미있다”고 웃어넘겼다. 그러나 차영기(33·진주시 신안동)씨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연극 한편 보는 게 너무 어렵다”며 “예약을 한 손님들에게 우선 입장 기회를 왜 제공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볼멘 목소리를 냈다.

5일 저녁 <서툰사람들> 공연을 보고 나오던 정경미(31·대구)씨는 “5000원으로 이렇게 재미있는 연극을 볼 수 있어 대만족이다. 야외극장이라 주변이 조금 소란스럽긴 했지만 관람하는데 그리 큰 방해는 안 되었다. 어차피 야외극장이라는 점을 감안했다”고 말했다.

축제 기간의 또 다른 재미는 야외 무료공연. 특히 물속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 꾸며진 ‘무지개 극장’은 ‘물놀이 관광객’을 ‘유료관객’으로 유인하는 ‘바람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무지재극장 공연을 관람하고 물 밖으로 빠져나오던 김욱철(43·대구)씨는 “물 속에서 공연을 보기는 처음이다. 재미있었다. 저녁에 연극 한편 볼까 생각중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일부 ‘경연 참가작’의 경우 야외무대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등의 문제로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 ‘벤치마킹’ 행렬도

그야말로 ‘축제의 현장’이 되고 있는 수승대에 연극 관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방문객들의 출연이 잦다. 이종일 위원장은 거창국제연극제를 두고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연극을 편하게 접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축제는 ‘무색무취’라고 정의 내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바로 이 ‘무색무취’라는 특징 아닌 특징을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 타 지자체 공무원들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일에는 황철곤 마산시장을 포함한 해당 부서 직원들이 다녀갔고,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가 열리는 밀양시와 또 하나의 축제를 기획하고 있는 창원시에서도 해당 부서 공무원이 4일과 5일 각각 수승대를 방문했다.

또 문화관광부 최대용 예술국장이 직접 축제 현장을 방문하는 등 18회째를 맞는 ‘거창국제연극제’에 수많은 관심의 눈길이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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