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부터 노래가 좋았어요 출연도 했죠”

어스름 녘, 동네 골목길에 열 대 여섯 명의 꼬마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시끌벅적한 모양새는 아니지만 들뜬 분위기다. 다들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지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이름하여 ‘골목 노래자랑’이 시작되려 하는 순간이다. 그 자리에 모인 꼬마들은 관중이자 출연자가 되고, 마이크는 줄넘기 손잡이다.

   
“그때 초등학교 2~3학년이나 되었을까요? 제가 줄곧 1등을 했죠. 주요 레퍼토리로는 하춘화의 <쌓인 정>,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서유석의 <그림자> 등등이고 남진·나훈아 노래를 섭렵했습니다. 그게 다 할머니의 영향 때문이었죠. 그 당시 할머니가 <성주풀이> 같은 노래를 부를라치면 그 구성짐과 애잔함이 이루 말로 표현 못 할 정도였으니까요. 노래를 부르고 듣기를 즐겨하셨던 할머니 때문에 자연스럽게 많은 노래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렇게 한 번 노래를 듣고 나면 쏙쏙 외워졌다는 거였어요.”

박미란씨는 고교시절 영어선생님에게서 비틀즈의 <Yesterday>를 배운 계기로 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연히 들르게 된 음악감상실에서 수많은 노래들을 접하게 된다. 자주 갔던 곳이 마산의 ‘무아 음악감상실’이었다.

당시는 그야말로 ‘음악다방의 전성시대’.

“DJ 오빠가 너무 멋지게 보였습니다. 쑥스러운 이야기지만 음악다방에 가기 위해 교복 대신 사복으로 옷을 바꿔입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박씨가 공을 들였던 일은 최덕수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마산 MBC <별이 빛나는 밤에>에 엽서 쓰기였다. 예쁜 글씨로 시를 적고 그림도 그려 넣어 듣고 싶은 노래를 적어 보내는 일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엽서 공모전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게 인연이 되어 <별이 빛나는 밤에>에 직접 출연을 하게된다.

라디오 방송 출연은 ‘DJ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보조였어요. 진행을 하는 시간도 손님이 뜸한 시간이었죠. ‘진보영’이라는 가명을 썼습니다. 호호.”

그때로서는 지역에서 거의 유일한 여성 DJ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박씨는 한사코 쑥스럽다고 손사래다. “제가 뭐 음악을 알았겠습니까. 그냥 음악을 좋아하고 많이 듣다 보니까 이런 저런 노래들을 알게 되고 그게 인연이 되어 DJ를 한 거죠.”

박씨는 4년째 재즈바를 운영하고 있다. 좋아하는 음악도 듣고 손님들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내는 게 행복하다고 한다. ‘음악’이라는 단어 하나에 그녀의 인생 이야기가 하나씩 풀려 나왔다. 물론 살아온 시절의 한 자락이며 추억의 한 조각일 뿐이다.

“오랜만에 옛날 이야기 하니까 좋네요. 그런데 이거 기사로 실리면 안될 것 같은데, 어쩌죠?” 추억이 들통(?)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소녀 같은 수줍음이 남아있기 때문이었을까? ‘기사게재 불가 요청’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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