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의혹투성이다. 어떻게 이 정도로 시민을 철저히 속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온몸이 오싹해질 정도다.

   
사람에게 치명적인 중금속이 어마어마할 정도로 묻혀 있다는 한국철강 터 얘기다.

우선 이 땅을 한국철강으로부터 매입한 (주)부영이라는 회사는 오염된 땅 위에 그대로 아파트를 지어 팔아먹으려 했다.

영원히 비밀이 지켜질 것으로 생각했을까?

용역을 받아 조사·분석을 진행한 경희대 연구소도 알고 있고, 마산시 공무원들도 알고 있었으며, 이 땅의 토양복원사업에 참여하려던 관련업체들도 다 알고 있던, 그러나 마산시민들만 모르고 있던 그 사실을 영원히 속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강심장이 두려울 정도다.

이런 사실이 들통 나자 부영은 ‘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재검사를 의뢰하겠단다. 국가가 인정한 법정조사기관은 믿을 수 없고, 폐기물 위에 아파트를 지어도 좋다고 한 경남대 보고서는 믿을 수 있다는 건지도 궁금하다.

마산시도 그렇다. 이런 어마어마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조치 없이 빠져나갈 수 있는 길만 찾고 있었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특히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공직자란 사람이 시민들에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는 건 용납할 수 없다. 이미 거짓말로 밝혀진 “몰랐다”는 말도 그렇지만, 도시주택국장인 정규섭씨는 “땅에서 6~7m 올린 지점에 아파트를 지을 예정이므로 인체에 해를 끼칠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는 대목에선 어이가 없다.

마산시민만 모르고 있던 사실

‘인체에 해가 없는데’ 황철곤 시장은 왜 토양복원명령을 내리겠다고 하는가.

황 시장의 말마따나 아파트 건축허가권을 시가 쥐고 있기 때문에 업체는 행정기관 앞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마산시가 갖고 있던 경희대 연구소 자료를 업체가 ‘회수’해 가는가 하면 이번 자료 유출에 대해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내고, 복원명령을 내리겠다고 하자 ‘보고서를 믿을 수 없다’고 큰소리를 뻥뻥 치는 것도 이상하다.

그리고 경희대 연구소가 밝혀낸 오염물질 가운데 유독 석유계 총탄화수소(TPH)에 대해서는 이미 정화조치를 시켰다고 하는 것도 그렇다.

업체측이 마산시도 모르게 살짝 공사를 했던 게 아니라면 이미 그런 오염 물질의 처리와 관련, 부영과 마산시 사이에 뭔가 ‘협의’가 이뤄졌다는 추론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황 시장이 서둘러 토양복원명령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문제는 그걸로 적당히 봉합돼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중금속 오염 사실이 들통나기 이전까지 업체와 마산시-경남도 사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이 터에서 공장을 가동하다 부영에 팔고 떠난 한국철강의 책임은 없는지 등 시민들이 품고 있는 의혹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업체-마산시-도, 무슨일 있었나

특히 이 일은 한국철강 터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당장 시민들은 같은 시기에 대규모 아파트로 개발되는 한일합섬 터에 대해서도 불안과 걱정을 제기하고 있다. 또 부영이 소유하고 있는 진해화학 터의 오염문제도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마산과 경남을 떠나 전국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이번 경우처럼 도심에 있던 공장이 외곽으로 떠난 뒤 주택지로 개발되는 곳은 이전부터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과 관련, 내집마련을 준비하고 있는 몇몇 주부들에게 물어봤다. “중금속 오염 사실을 알고도 한국철강 터 아파트를 분양받아 살고 싶은 의향이 있느냐?” 대답은 당연히 ‘노(No)’였다.

다시 물어봤다. “그렇다면 마산시의 조치대로 완벽하게 토양복원을 한 뒤 아파트를 지어도 분양받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 그래도 찜찜해서 직접 들어가서 살긴 싫단다.

투자가치가 있다면 분양받아 되팔 수도 있겠지만, 오염 사실이 알려진 마당에 투자가치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는 분석과 해설까지 곁들이는 사람도 있었다. 복원을 한다 해도 과연 제대로 되겠느냐는 뿌리깊은 불신도 적지 않았다.

민심이 이럴진대 아직도 보고서를 믿을 수 없다며 재검사 운운하는 부영에 충고하고 싶다. 위의 질문으로 여론조사부터 먼저 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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