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한국철강 터 중금속 오염’ 왜 이지경까지 왔나

속보 = 뒤늦게 밝혀진 옛 한국철강 터 중금속 오염 자료 때문에 마산지역이 발칵 뒤집어졌다.

(주)부영이 의뢰해 지난해 10월께 경희대 지구과학연구소가 낸 보고서에는 약 3000가구, 1만 여 주민의 삶터가 될 아파트 땅에 기준치가 넘는 중금속이 다량 묻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아파트를 지으려면 폐기물을 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3월 9일 5면,7월 27일 1면 보도·관련기사 3면>

문제는 이 땅이 이미 지난 11일 경남도와 마산시로부터 ‘아파트를 지어도 좋다’고 허가를 받았다는 점이다. 도는 사업승인을 내 준 근거로 지난 6월 제출된 경남대 환경문제연구소의 용역 결과를 지목했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폐기물을 그대로 놔 둔 채 아파트를 지어도 유해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 27일 마산시청에서 열린 옛 한국철강 터 중금속 검출 관련 해당 건설사와 마산시 담당공무원의 기자회견에서 (주)부영 이길주 이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유은상 기자
마산시 “심각한지 몰랐다”


이는 사업 승인권자인 도가 시에 ‘한국철강 터가 주택단지로 적합한지 아닌지를 가릴 수 있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라’는 지시에 따라 (주)부영이 경남대에 의뢰한 것.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든다. 부영은 왜 도가 지시한 용역 외에 경희대에 따로 용역을 의뢰한 것일까. 경희대 용역 결과를 마산시와 경남도는 몰랐을까. 또 같은 터를 두고 벌인 두 대학의 용역 결과가 이토록 상반된 이유는 무엇일까.

△부영의 도덕 불감증 = 부영 관계자는 경희대 용역에 대해 “아파트를 짓고 분양을 하려면 여러 가지 검토가 필요하며 자체적으로 벌인 여러 가지 용역 중 하나”라며 “왜 내부 자료가 유출돼 이런 말이 오가는지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사업승인에 필요한 용역은 경남대에 의뢰해 ‘문제없다’는 결론을 받았으니 내부 문서인 경희대 용역 결과를 밝힐 필요까지 있느냐는 말이다. 이렇게 유출될 줄 알았으면 ‘관리’를 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부영 “경희대 보고서는 여러가지 용역 중 하나”

따로 경희대에 용역을 의뢰한 이유에 대해 민원이 제기됐거나 환경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 아니냐는 질문에 “부지 매입 때 폐기물이 있는지 몰랐고 오염 문제 때문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또 “사업승인을 내 준 행정기관에 물어야 할 질문”이라며 경희대 자료에 대해서도 “회사 내부자료에 대해 일일이 해명할 필요는 없다”고 일관했다.

이 외에도 부영은 경희대 연구소에서 마산시청에 보낸 문제의 용역 보고서를 역시 내부자료라는 이유를 들어 회수했고, 경희대에 용역을 의뢰했을 때도 한철 터를 주택지역이 아닌 공장지역으로 분류해 훨씬 헐거운 기준치가 적용되도록 했다.

△마산시와 경남도의 안이한 대처 = 앞서 지적한 대로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경희대 용역 자료는 지난해 말 부영과 마산시청에 한 부씩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보고서를 받은 환경보호과는 어떤 법을 적용해야 할지 몰라 12월 초와 말 두 차례에 걸쳐 환경부에 질의를 하게 된다.

마산시, 환경부에는 문의, 담당인 주택과엔 안알려

환경부는 처음에는 폐기물관리법에 따를 것을 권유했으나 나중에는 ‘토양오염 우려 기준을 초과하는 오염토양은 토양환경보전법의 규정에 따라 정화되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관련 부서는 일부 오염물질에 대한 정화 조치를 내렸지만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주무부서인 주택과에 주요 사안으로 보고하지 않았고, 그 사이 부영은 경희대 자료를 회수해 갔다.

부영은 사업에 불리하니 쉬쉬했고, 마산시는 안이하게 대처한 것이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할 아파트 개발 사업을 거침 없이 진행시킨 원인이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이 사실을 안 이상 기준치에 맞춰서 토양을 개량한 후에 사업하도록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흙과 폐기물 다르다? = 두 연구소가 같은 터를 두고 상반된 결과를 내놓은 데 대해 경남대 연구소 관계자는 “조사 물질이 다르고 적용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업의 대상과 근거법이 다르다는 것. 경희대의 ‘한국철강 부지 토양환경평갗는 토양환경보존법에 따라 토양을 조사했고, 경남대의 ‘한국철강 부지 폐기물에 대한 환경성 검토’는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폐기물만을 조사했기 때문에 다른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땅 아래 폐기물과 폐기물을 덮고 있는 흙을 조사해서 오염 정도가 다르고, 그에 따라 아파트를 지어도 된다, 안된다는 상반된 결론이 나왔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실제 이런 용역이 맞다면 시와 도는 부영에게 철강 폐기물을 매립한 한국철강 터의 특수성을 고려해 두 용역 결과를 모두 검토해 사업승인 여부를 결정해야 옳다.

철강 폐기물을 매립해 만들어진 땅이므로 폐기물관리법을 적용해야 하는지, 땅 위에 아파트가 들어서 1만 여 명 주민의 삶터가 될 것이므로 토양환경보전법에 따라야 하는지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복원 명령의 주체인 마산시의 대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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