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또환갑씨의 시장사랑 ‘산물’

깡통골목 건물을 지은 고또환갑씨는 독특한 자본가였다.

1945년 해방을 맞자 조선인 자본가들이 일본인들이 버리다시피 한 공장들을 헐값에 인수해 나중에 대자본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고씨는 이 같은 길을 걷지 않았다.

▲ 아들 고봉덕씨가 고또환갑씨의 사진을 들여다 보며 설명하고 있다 /사진 이균석 기자
아들 고봉석씨는 “아버지께서 해방당시 일본인 기업을 인수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면 지금 우리 집안은 엄청난 부자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며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일본인이 두고 간 소주공장인 ‘유원회사’의 주식을 직원들의 부탁으로 조금 산 일 밖에 없다”고 밝혔다.

아들 고씨는 이 회사가 지금은 없어졌다고 밝혔다.

유원회사의 전신이 소주와 청주를 만들던 ‘소화소주’라고 아들 고씨가 말한 것으로 보아 지금 무학소주의 전신인 ‘소화주류공업사’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아들 고씨의 말대로 고또환갑씨가 제대로 유원회사에 투자를 했다면 현재 무학소주의 주인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고또환갑씨는 시장(市場)을 만드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다.

◇어시장 이전을 추진하다

깡통골목을 짓기 전 마산반월시장 번영회장을 맡고 있던 고 선생은 반월시장에 가축시장과 청과물시장을 만들 생각을 하고 마산시로부터 허가를 얻어냈다. 당시 반월시장은 마산에서 제일 큰 시장이었다.

하지만 고씨가 만든 두 시장은 장사가 안돼 결국 얼마안가 접고 말았다.

그러다 한국전쟁 직전 고 선생은 또 다른 기획을 하게 된다.

거듭되는 시장 조성 실패에도 ‘칠전팔기’

바로 어시장을 새로 내는 것이다. 당시 구 마산시가 쪽에 어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지만 너무 비좁다고 생각한 선생은 바닷가에 있던 큰 창고를 주목했다. 지금 마산여객터미널 자리다.

일제시절 지어진 이 창고는 당시 일부 사람들이 칸막이를 하고 살림을 살고 있었다.

선생은 역시 제 돈을 들여 이 사람들을 이주 시켰다. 그리고 창고를 비워놓고는 시의 허가를 얻어 어시장을 옮길 참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때 한국전쟁이 터졌다. 미군은 비어 있던 그 창고에 군수물자를 들였다. 결국 어시장 이전 계획은 전쟁 통에 물거품이 됐다.

이런 활발한 활동 때문에 지역 상인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선생은 해방 후 마산상공회의소가 생길 때 신구마산 상인들이 모여 한 회장 선임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하지만 선생은 초대회장 자리를 거부했다. 글을 읽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아들 고씨는 “당시 아버지께서 자신은 말은 잘 하지만 회의록만 쳐다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며 “많이 아쉬워했다”고 전했다.

선생은 특히 지난 1946년 마산에서 미군정을 상대로 10월 봉기가 일어났을 때 마산상공회의소를 해산하라는 요청을 강력히 거부하기도 했다.

당시 상공회의소 상인 중에는 공산당에 가입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당시 김종신 의원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결국 상공회의소를 해산했다.

66년 협심증으로 사망…공적비도 없어져

◇공적비를 거부하다

선생이 깡통골목을 세우고 반월시장 사람들에게 장사를 하게 하자 반월시장 사람들이 공적비를 세워주려 했었다.

선생은 극구 허락하지 않았다. 살아생전에 공적비를 세운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장 사람들은 공적비를 세웠다. 지금 마산 중앙고등학교 옆 이면도로 자리다.

하지만 지난해 도로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이 공적비는 사라졌다.

가족들이 공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쫓아갔지만 공적비는 흔적도 없었다.
선생은 지난 1966년 협심증으로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던 그 정신은 손자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선생의 손자 고굉무(43)씨는 사업을 하는 틈틈이 후원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현재 경남여성장애인연대 후원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아름다운가게 마산대우점을 만드는데도 적극 참여했고 지금도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손자 고씨는 “만약 어시장을 옮기는 등 할아버지의 기획이 그대로 실현되었다면 마산은 지금과는 또 다른 발전된 도시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며 “나도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사회에 좋은 일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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