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9일) 타계한 향토 서예계 큰별 은초(隱樵) 정명수 선생은 생전의 명성만큼 일화도 적잖습니다. 은초 선생과 호형호제 사이였던 파성(巴城) 설창수 선생이 생시 적 어느 날, 거나해진 술김에 은초 선생과 대작할 국화주(?) 한 병을 고이 들고 비봉서실을 찾았습니다. 방 안에는 습자생(習字生)이 제법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취중에도 드레있게 방으로 들어서던 파성 선생이 어쩌다 그만 실수를 하여 술병을 깨트리고 말았습니다. 쏟아진 술 향기가 방 안에 퍼졌습니다. 그때 한 스님이 글씨를 쓰다 말고 무심결에 코를 벌름거리며 감탄조로 말했습니다. “허, 그 술 향기 한번 좋다!” 그러자 파성 특유의 뼈있는 대꾸가 점잖이 건네졌습니다. “술에서 꾸룽내(구린내)가 나면 사람들이 먹을 리가 없지!”

그 스님이 잠시 술 향기에 팔렸듯이 심혼 안 실린 서도(書道)로 묵향 아닌 비릿한 정취(政臭)를 풍기는 원로 지도자도 있습니다.



쓴 사람 혼 담긴 글씨

보는 마음 곱게 높이듯

그런 묵향 근처도 못갈

허랑한 휘호들이여

가거라

그리고 대신 나서라

옳거니, 너 ‘老馬好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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