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또환갑씨, 상인위해 자비로 건립
“미군부대 있어 장사되겠다” 하천복개

마산시 반월동 반월시장 옆 깡통골목이 철거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골목에 있는 2층 목조건물이 어떻게 건립됐는지에 대해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알려진 바로는 ‘고또원갑’이란 독지가가 한국전쟁 중 깡통골목을 지어 마산시에 기증했다고 한다.  이에 ‘고또원갑’이란 사람을 수소문하고 있던 취재진은 지난 9일 한 독자의 이메일을 받았다. 이 독자는 “지난 7일자로 보도된 ‘마산 깡통골목의 화려한 과거’란 기사에 나온 독지가가 자신의 시조부”라며 “이름이 ‘고또원갑’이 아니라 ‘고자, 또자, 환자, 갑자’해서 정확히 고또환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독자는 “시아버지(고또환갑씨의 아들)가 많이 서운해 하셨다”며 “아직 건강하시니 궁금한 게 있으면 연락을 하라”고 덧붙였다. 9일 오후 독자가 살고 있는 마산시 월영동 동아 2차 아파트를 찾았다. 고또환갑씨의 아들 고봉덕(78)씨는 소파에 앉아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 고씨의 증언을 토대로 고또환갑씨는 어떤 사람이었고 왜 깡통골목을 지었는지 2회에 걸쳐 알아본다.

◇깡통골목을 지은 이유 = 고봉덕씨는 우선 깡통골목이 생긴 때는 한국전쟁이 막 시작되던 시기라고 말했다.

고씨는 “그 때 도랑 양쪽에 피난민들이 ‘하꼬방’을 지어 살고 있었다”며 “아버지께서 딴 데 가서 살라며 돈을 줬던 기억이 난다”고 밝혔다.

요즘으로 말하면 보상을 해준 셈이다.

고또환갑씨는 이렇게 피난민을 내보낸 뒤 하천을 덮고 그 위에 집을 지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깡통골목의 건물을 지었던 것일까. 아들 고씨는 지역민들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 마산 반월시장 옆 깡통 골목 전경. /김구연기자

고씨는 “당시 아버지께서는 마산 반월동 시장 번영회 회장이었다”며 “시장 바로 밑에 미군부대가 있기 때문에 장사가 잘 되겠다 싶어 시장 사람들에게 가게를 지어줬다”고 전했다.

처음부터 2층 건물로 지어 2층은 살림집으로 하고 1층은 가게로 쓰게 했다고 고씨는 덧붙였다. 하지만 하천을 덮어 건물을 짓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마산시에서 허가를 내 주지 않으려 했다.

수소문 끝에 만난 아들 고봉덕씨 증언

아들 고씨는 “시에서 개인명의로는 허가를 못 내주겠다고 했다”며 “그래서 결국 아버지께서 돈을 댔지만 시에서 지은 것으로 하고 임대료도 시에서 받게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아마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하천을 복개해 집을 지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고또환갑씨는 술 도매상을 했다. 전쟁이 나고 부산에만 술 공장이 돌아가던 시기였다.

아들 고씨는 “당시 미군부대에서 일하던 노무자들이 저녁 일을 마치고 오면 주로 깡통골목에서 한 잔 씩 걸쳤다”며 “깡통골목 모서리에도 가게를 열었다”고 기억했다.

당시 깡통골목에 들어가는 술은 고또환갑씨가 다 댄 것이다.

아들 고씨는 이런 아버지의 ‘힘(?)’으로 미군부대 경비대장을 맡기도 했다고 밝혔다.

◇특이한 이름 ‘고또환갑(高又還甲)’ =  고또환갑씨는 1905년 6월 7일 고성군 고성읍 수남동에서 태어났다.
 

▲ 빨간 테두리 부분이 '깡통골목'. 지도출처 : 네이버

형님 이름은 ‘고환갑(還甲)’이었는데 말 그대로 아버지가 환갑인 해 태어나서 붙인 이름이다.

두 해 뒤 아버지가 진갑(進甲)을 맞았을 때 고또환갑 선생이 태어났다. 그래서 ‘다시(又) 환갑’이란 뜻으로 이름을 “또환갑”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고씨는 항상 배우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 고또환갑씨 생전 모습./사진 이균석 기자

아들 고씨는 “당시 할아버지께서 아버지가 공부를 못하게 하셨다”며 “모두 큰 아버지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할아버지는 큰 아들인 고환갑씨에게 공부를 시켰다. 하지만 고씨는 나중에 시골에서 농사짓기 싫다며 일본으로 도망을 갔다고 아들 고씨는 전했다. 때문에 할아버지는 동생인 고또환갑씨에겐 공부를 시키지 않으려 했다.

고또환갑씨가 결혼을 하고 아들 고씨를 낳자 일본에 있던 큰 아버지가 귀국했다. 그래서 고또환갑 선생은 마산으로 독립해 이사를 왔다.

마산에 온 고 선생은 간장공장에 취직했다. 당시 마산시 자산동에 있던 산전(山田)장유양조장이었다. 지금 몽고간장의 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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