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된 여성의 몸을 재생하다

창원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박서영(38) 시인의 첫 시집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가 출간됐다. 10년간 각종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들을 모은 것.

   
시인의 시집에는 죽음에 대한 은유가 넘친다. 아니 죽음의 은유로 가득찬 세상을 여리지만 독한 몸으로 기꺼이 감내하는 모습이 숙연함을 자아내게 한다. 그렇다고 죽음은 절망이고 삶은 희망인 이분법의 세계에 결코 빠지지 않는다. 죽음은 죽음일 뿐이고, 그 죽음의 이미지를 소름 끼치도록 느낄 수 있게 한다.

“일몰 무렵이던가/아이를 지우고 집으로 가는 길/태양이 내손을 잡고 어디론가 갔다/그후론 내몸에 온통 물린 자국들이다(‘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 부분)”

이처럼 시인의 몸은 훼손되어 왔고 점점 폐허가 되어간다. “들어가야 할 곳과 빠져나와야 할 곳이/점점 같아지는 37세(‘빈집’)”에 “살과 뼈가 소리 없이 이별을 견뎠다는 생각(‘경첩에 관하여’)”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그럴 때면 “은색 냄비의 손잡이처럼 얼굴 양쪽에 매달려 있을 뿐(‘귀’)”인 귀를 양쪽 손으로 부여잡고 “내 얼굴에 가득 찬 오물을 쏟아버리고(‘귀’)” 싶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시집의 표지 색깔처럼 시집 전편에는 붉은 핏물이 곳곳에 배어 있다. “내 가랑이에 조그만/쇠사슬이 걸려있(‘새의 부족’)”어 “공포가 살을 뚫고 들어”오고, “대가리에 피갚 흐르는 동물들이 배회를 한다.

시인은 죽음의 직유법인 ‘무덤’순례를 감행한다. 시집의 2부는 ‘무덤 박물관에서’라는 연작시 23편이 수록돼 있다. 김해의 구산동 고분군과 대성동 고분박물관을 돌며 “아직도 숨쉬고 있는 육체의 죽음”을 발견한다. 육체는 죽었으되 아직도 숨쉬고 있다?

   
이를 두고 평론가 강경희씨는 발문에서 “폐기되는 몸, 한없이 존재를 억누르는 억압의 대상인 여성의 몸을 다시금 건강한 생명력을 지닌 재생의 몸으로 뒤바꿔 놓는” 시인의 시선을 높이 평가한다.

박서영 시인의 시는 온 몸의 감각을 이용해 읽어야 할 듯싶다. 살아 움직일 듯한 “글자의 근육(‘점자책’)”을 포착한다면, 죽음을 목도하면서도 몸 속에 따뜻함이 차 오르는 걸 느낄 것이다.

박서영 시인은 “이번 시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100여편의 시를 폐기하는 등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며 “첫 시집의 작품성을 뛰어넘기 힘들다고들 하는데, 어쨌든 창작에 열중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서영 시인은 1968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1995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천년의 시작. 136쪽.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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