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여년만에 일어난 최악의 가뭄으로 전 국토가 바짝 바짝 타들어가고 있다. 애타는 농민들의 가슴은 아예 숯덩이가 돼버렸다. 물 한방울이라도 구하겠다고 민·관·군이 밤잠을 설쳐대며 구슬땀을 흘리는 모습에서 어쩌면 전쟁을 치르는 양 긴박감과 처연함이 묻어난다.
역사적으로 말한다면, 우리의 건국신화에도 환웅이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태백산 신단수로 내려올 때, 비를 관장하는 우사(雨師)를 데려온 것만 봐도 비는 그만큼 신성하고 생명수로 여긴 것이다. 농업에 힘을 기울였던 조선 건국초기 태조때부터 각 주·군·현마다 권농관을 두고 제언수축에 힘썼다. 수령은 기우제(祈雨祭)를 법제화하여 한발이 심할 때면 관과 민이 합세하여 제를 지내도록 했다. 기록에는 왕실을 비롯해 민·관이 기우제를 지낸 예는 허다하다.
그 중에서 가장 극적이고 기적과 같은 기우는 ‘태종우(太宗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태종이 국정을 살필 때는 가뭄이 극심하여 민심마저 흉흉했다.
그 당시 진주출신으로 혁신파의 대표격인 진산부원군 하륜이 이방원을 보필했을 때, 심한 가뭄이 돌자 보수세력이 똘똘 뭉쳐 하늘의 재앙을 가져온 장본인이라고 그를 지목하는 바람에 관직에서 물러난 일이 있다.
태종이 임종을 맞아 아들 세종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어 혼이 있다면 이 날에 반드시 비를 내리게 하마’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승하하였다.
그가 숨을 거두자, 아니나 다를까 그토록 기다리던 단비가 내리고 말았다. 그래서 태종의 제삿날인 음력 5월 10일 전후 내리는 비를 태종우라고 부른다.
<악학궤범>을 편찬한 성현(成俔: 1439~1504)의 <용재총화>에 보면 기우제를 지낸 기록이 나타난다.
“기우지례는 먼저 동서남북 중앙의 개천을 수리하고 종묘사직에 제사를 올린다. 그리고 교외(郊外)사방에 청백적흑의 4룡과 중앙 종루가에는 황룡을 만들어 놓고 사흘동안 제사를 드린다 … 경회루 묘화관 앞 못에서는 도마뱀을 넣은 물동이를 띄워서 청의동자 수십명이 버들가지로 동이를 두드리며 ‘도마뱀! 도마뱀! 구름을 일으키고 안개를 토하며 세찬 비를 내리면 너를 돌려 보내리라!’했고, 또 왕께서는 자신의 부덕한 탓이라 하여 식음을 감하고 초가로 거처를 옮겨 근신했으며 옥중의 죄수들은 특사하기도 했다. 백성들은 집집마다 물통에 버들가지를 꽂아 비오기를 기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근년에 와서도 한발이 계속될 때 김해에서는 4개 면민 수백명이 동원되어 부근 산을 헤매면서 무덤을 파헤치고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이런 일은 바로 암장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난 산신령의 노여움을 풀기 위한 하나의 방책이었다. 창녕에서는 거북등처럼 갈라진 냇바닥, 명덕지 못바닥으로 시장을 옮겨 전을 벌였고, 진동에서도 동촌냇가 숲에 저자가 서기도 했다.
이렇듯 대한발이 와서 기우제를 지내는가 하면 겨울가뭄이 길어 기설제(祈雪祭)를 지내는 것도 애간장이 탄다.
이와 반대로 장마기간이 길어서 논밭의 곡식이 썩고 상할라치면 이 또한 환장할 지경 아닌가.
이미 신라시대 ‘천상제(川上祭)’·‘성문제(城門祭)’라 불리는 국가적 행사인 기청제(祈晴祭)가 베풀어졌었다. 조선초에는 유명사찰 등지에 기청을 한 사실이 있었고 헌종때는 제를 지내도 비가 멎지 않자, 삼정승이 부덕의 소치라 여기고 사직소를 내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비가 멈추지 않으면 수령방백들은 더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받아야만 했다. 성문의 다락이나 봇도랑에다 제단을 만들어 기청제를 올리며 고천문을 읽는다. ‘지금 비가 너무 많아 오곡백과가 상해 드는지라. 미주가효를 바치오니 비를 멎게 하소서.’ 정성껏 기도를 해도 비가 멎지 않으면 온 몸에다 생채기가 나도록 채찍질을 해댄다. 피가 흐르도록 모질게 후려치는 것이다. 수령의 딸은 양색(陽色)인 붉은 옷을 입고 골방에 갇힌다.
비가 멎을 때까지 가혹한 형벌이 이어지는데 단식을 강요받는 등 자학기도를 서슴지 않았다. 이 모두가 하늘에 시위하는 처절한 몸부림이 아닐 수 없다. 어디까지나 하늘은 가능의 공간이다. 굽어 보는 하늘을 향해 비오기를 비는 절실한 바람과 자연에 순응하겠다는 티없는 영혼이 하늘에 닿는다면 생명수같은 비가 내려 목타는 이 대지를 흠뻑 적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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