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군부대 주둔...전쟁 중 최고의 번화가

속보 =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마산 반월시장 옆 깡통골목. 그 과거는 화려했다. <6월 14일자 5면, 7월 5일자 4면 보도>

◇ 한국전쟁 중 마산 최고의 번화가 =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많은 피난민이 마산으로 모여들었다. 1946년 8만 명이던 마산인구가 53년에는 13만으로 늘었다. 마산이 북적거리던 시기였다.

▲ 마산 반월시장 옆 깡통 골목 전경./김구연기자
전쟁 당시 마산은 병참도시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마산세관이 있는 자리엔 미군항만사령부가 있었고 그 옆으로 미군 제55 보급창, 미군 533부대 병기창이 자리 잡았다. 지금 대한통운 자리엔 한국 해병대 보급창도 있었다. 많은 마산시민들이 미군부대에 들어가 일했다. 이런 부대에서 가까웠던 깡통골목은 마산 최고의 번화가였다.

깡통골목에서 50년 이상 살아온 천화성(77) 할아버지는 ‘말도 못하게 성황이었다’고 말했다. 천 할아버지는 “전쟁 당시 토·일요일이면 깡통골목이 사람들로 넘쳐났다”며 “많은 미군들이 주변에 방을 얻어 사는 등 외화벌이에도 상당히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깡통골목은 대부분 ‘나래비 술집’이었다. 잔술집이었지만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고 골목 사람들은 전했다. 한 주민은 “손님이 술이 취해 조금이라도 행패를 부리면 주인에게 바로 쫓겨나기도 했다”며 “그렇게 해도 될 정도로 술집들에 사람이 넘쳐났다”고 회상했다.

이 정도로 장사가 잘 되자 깡통골목에 가게를 얻으려는 사람도 많았다. 천 할아버지는 “가게 한 칸을 얻으려면 25만원 정도는 줘야 했다”고 말했다. 당시 집 한 채 값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그래도 아는 사람을 통하지 않으면 가게를 얻기 힘들었다고 천 할아버지는 전했다.

◇ 한 독지가가 도랑위에 건물을 짓다 = 지금과 같은 형태의 깡통골목이 만들어진 것은 1950년 한 독지가에 의해서다. 전쟁 당시 지금 깡통골목 자리는 폭 3~4m 도랑만 흐르고 있었다. 일부 피난민들이 판자로 집을 지어 살기는 했다. 하지만 ‘고또원갑’이란 특이한 이름의 사람이 도랑위에다 건물을 지었다.

당시 이 과정을 지켜본 천화성 할아버지는 “미군부대에서 나온 커다란 목재로 도랑을 가로지른 다음 그 위에다 수십 칸의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에 분양했다”고 말했다. 이후 고씨는 건물 자체를 마산시에 양도했다고 한다.

외화벌이 짭짤 '최고 번화가'

하지만 고씨와 무슨 이유로 건물을 지었는지 왜 양도를 했는지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당시를 증언하는 사람들이 ‘독지갗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 단지 돈을 벌기위해서는 아니었다고 추측된다.

◇ 왜 깡통골목이지? = 깡통골목은 왜 ‘깡통골목’일까? 현재 깡통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깡통집이라는 구멍가게가 있는데 주민들에 따르면 이 가게를 운영하던 무척 억척스런 할머니가 있었다.

이 할머니는 당시 미군들을 상대로 달러를 바꿔주기도 하고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품을 구해다 팔기도 했다고 한다. 한 주민은 “그 할머니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지만 미군들과 어떻게 그리 의사소통을 잘 하는지 신기했다”고 밝혔다.

이 할머니가 운영하던 가게에서 깡통에 담긴 미군 전투식량(시레이션)을 팔았는데 이 때문에 ‘깡통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사람들은 설명했다.

지금 할머니의 아들이 이 가게를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는데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이 아들은 “그 때 우리 집 뿐 아니라 다른 가게에서도 미군부대 물건을 팔았다”며 “당시 국산제품이 아예 없던 상황에서 당연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 쇠퇴하는 번화가 = 주민들은 마산에서 전국체전이 열리던 82년까지도 깡통골목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도랑 위에 지은 목조 건물이 오랜 세월을 버틸 수는 없었다. 70년대 초반 19살의 나이로 깡통골목으로 이사 왔다는 한 주민은 이미 그때부터 철거 이야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이 주민은 “전국 체전이 열릴 당시 마산시의 독려로 입주자들이 돈을 들여 목조 건물 위에 슬래브로 지붕을 올리고 시멘트로 건물 외벽을 발랐다”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었다고 밝혔다. 썩어가는 목조 기둥에다 시멘트까지 발랐으니 붕괴 위험이 높아진 것은 당연한 일. 입주민들은 자기 돈을 들어 기둥 옆에 앵글을 넣는 등 끊임없이 수리를 해야 했다.

마산시는 현재 깡통골목을 ‘무허가 노후 건축물’로 분류하고 있다. 마산시 관계자는 5일 “당시 헌법도 제대로 없던 상황에서 지어져 별 문제가 없었다”며 “하지만 현행 건축법을 따른다면 당연히 철거해야할 건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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