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는 교사가 아니었다. 아니, 교사는 교사이되 그가 맡은 역할은 무시무시한 ‘공안기관원’의 그것이었다. 그는 전교조 지지행사를 마련한 학생들을 전기과 실습실로 끌고 가 ‘배후조종한 전교조 선생의 이름을 대라’고 윽박질렀다. 학생들이 순순히 이름을 불지 않자 무자비하게 주먹질을 해댔다. 감금·폭행·협박…그리고 퇴학.

   

당시 그에게 폭행당했던 학생은 코뼈가 내려앉았다. 이 학생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견디지 못해 그날 새벽 수면제를 사들고 학교 뒷산을 올랐다.

“수면제랑 같이 들고 갔던 칼로 팔목을 그었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져가더군요. 그래도 그때 죽을 운명은 아니었나봅니다. 그때 마침 근처 약수터를 오르던 어떤 사람이 저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15년 전 자살을 기도했던 그 고교 3년생은 그 때의 일로 ‘중졸’ 학력만 갖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중졸’로 살아오기가 얼마나 어려웠을 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지금도 그의 왼쪽 팔뚝에는 그때의 칼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있다고 한다.

그 고등학생들이 ‘마창고협’을 결성하고 각종 행사를 마련한 것은 순전히 전교조의 영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고문에 가까운 폭행을 당하고 퇴학까지 된 것도 전교조 해직교사들을 ‘엄호’하기 위한 행사 때문이었다. 그때의 ‘전교조 사태’로 해직당한 교사들은 그나마 모두 복직이라도 했다.

15년전의 전교조 탄압 전력

물론 해직기간의 경력과 호봉을 인정받지 못하는 등 온전한 명예회복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자신들을 위해 희생된 제자들만큼은 챙겼어야 했다. 하지만 ‘학생들을 배후조종한(?)’ 교사들은 복직했어도, ‘배후조종을 당한’ 학생들은 복학하지 못했다.

결국 학생들은 스스로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을 신청했고 국가는 그걸 인정했다. 학생들은 국가의 ‘인정통지서’를 근거로 ‘당시의 부당한 징계와 교사의 폭력을 공식사과하고 복학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학생들이 ‘교사의 사과’를 포함시킨 것은 당시 폭력을 행사했던 교사가 아직도 이 학교에 재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경남도민일보>를 통해 연속 보도되고 있는 마산공고 이야기다.

우리는 이 과정을 취재하면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전교조를 탄압하는 입장에서 ‘공안기관원’의 역할을 맡았던 그 교사가 지금은 전교조에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이란 고정불변일 수 없는 법. 그가 당시의 과오를 뉘우치고 새로운 마음으로 전교조의 강령과 규약에 동의하며 참교육 실천에 앞장서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심지어 피해 학생들도 “그 땐 교사 개인의 의지라기보다 그 당시 정권의 의지 때문이었을 것”이라며 오히려 교사를 이해하려는 입장에 섰다. 그래서 학생들의 ‘사과요구’는 당연히 받아들여지리라 봤다. 전교조 경남지부도 학생들의 입장을 지지하며 힘을 실었다.

‘침묵’ 한 이유 규명해야

하지만 결과는 전혀 아니었다. 학교측의 사과는 물론 교사의 사과도 보기 좋게 거부된 것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마산공고 내 전교조 분회의 태도다. 28명의 교사들로 구성된 마산공고 분회는 ‘입장이 곤란하다’며 침묵하기로 했단다. 이건 상급단체인 전교조 도지부의 입장을 사실상 어긴 거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해당 교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가 진정 전교조 조합원이라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사과를 주장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수도 있는 당시의 역할과 행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주위의 동료 조합원들이 ‘오버’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만일 그게 아니라면 분회의 그런 결정을 ‘배후조종한 자’라도 규명해야 할 판이다.

이미 이 일은 적당히 덮고 넘어갈 수 있는 시기가 지나버렸다. 처음부터 이 일을 보도하고 있는 <경남도민일보> 뿐 아니라 다른 언론들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피해 학생들의 의지가 단호하다.

이미 학생들의 올해 복학은 물 건너갔다. 이젠 복학이 문제가 아니라 이 과정에서 드러난 전교조의 ‘곤란한 입장’이 어떻게 정리돼 나가는지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학교든, 전교조든 더 ‘곤란’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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