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가 최열이 한나라당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의 인수위원장을 맡았다고 한다. 시민운동가가 특정한 정치인(또는 행정가)의 휘하에 들어간다? 선뜻 동의하긴 어렵지만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한다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일’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만일, <한겨레> 또는 <조선일보>의 정치부장이나 사회부장이 신문사의 직책을 그대로 가진 채 인수위원회에 들어가 업무를 넘겨받고 정책을 손질하는 일을 한다면 어떨까? 독자님은 과연 그 신문의 서울시 관련 보도에 객관성을 인정할 수 있을까?

NGO와 언론의 차이 모르세요?

뻔한 이야기지만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다. 정치인 휘하에서 보고서나 건의를 통해 ‘감시와 비판’을 하라는 게 아니다.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는 언론계의 잠언도 바로 그런 뜻이다. 만일 서울시장에게 반드시 해야 할 충고나 정책제안이 있더라도 기사를 통해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입으로 또는 보고서를 통하는 기자가 있다면 그는 ‘사이비 언론인’이다. 그것은 독자가 부여한 언론인의 권리를 사사롭게 이용하는 것이며, 국민의 알권리를 묵살한 것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권력의 지근거리에서, 또는 그 품안에서 자문역이나 하는 경우를 일컬어 ‘어용언론(인)’이라 불러왔고, 언론 본연의 기능이 훼손되어선 안된다는 취지에서 ‘관언유착’과 ‘정언유착’을 ‘정경유착’ 다음으로 경계해왔다.

하지만 NGO는 이런 언론의 역할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감시와 비판 기능을 해야 한다는 점에선 일면 비슷한 점이 있지만, 더 나아가 대안적 실천은 물론 행정에 대한 보조적 기능도 넓은 의미의 NGO 기능에 포함된다.

실제로 많은 NGO들이 행정기관의 수탁을 받아 복지·문화·소비자 등 분야에서 보조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 환경운동가 최열이 오세훈 당선자의 휘하에 들어간 것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김태호 경남도지사도 ‘도정 2기 출범준비위원회’라는 걸 구성하기로 했다고 한다. 원래 도지사였던 분이 다시 도지사에 당선됐는데 ‘인수위원회’를 만들 순 없고, 궁여지책 끝에 그런 이름의 위원회를 만들기로 한 것은 그렇다고 치자. 또한 서울의 경우를 보고 무슨 영감을 얻었는지 NGO 대표들을 영입하기로 한 것도 일단 좋게 봐주자.

하지만 엉뚱하게도 왜 여기에 ‘언론계’를 끌어들이려 하는 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언론을 도대체 뭘로 보는지 불쾌하기도 하다. 도지사가 불러 준다고 언제든 쪼르르 달려갈 언론인도 없겠지만, 언론인을 자기 옆(또는 밑)에 두고 자신이 앞으로 해나갈 정책에 대한 자문 또는 수정·보완작업을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기분 나쁘다.

언론사에서는 말단 수습기자를 취재현장에 처음 내보낼 때 단단히 교육시키는 게 있다.

기자를 제발 내버려 두세요

“네가 비록 회사 안에서는 가장 경력이 짧은 수습이지만, 취재현장에서는 독자의 알권리를 위임받은 신문사를 대표하여 나왔다는 걸 항상 명심하라. 따라서 과장·국장은 물론 시장이나 도지사, 심지어 대통령 앞에서도 모든 독자를 대표하여 당당하게 취재에 임하라.” 이런 다짐과 함께 취재원과의 관계에서 ‘불가원 불가근(不可遠 不可近)’을 유지하라는 지침도 잊지 않는다.

따라서 기자는 한명 한명의 개인이기도 하지만, 취재영역에선 하나의 ‘언론기관’으로서 지위를 갖기도 한다. 그러므로 기자는 회사 밖에서 누구의 휘하에 들어가서도 안 되고, 누구의 위에 군림해서도 안 된다.

뿐만 아니라 독자가 부여해준 권리를 이용해 다른 누구를 위해 일해서도 안 되며, 심지어 자기 자신을 위해 그 권리를 사용하는 것도 안 된다. 그래서 각 언론사는 공무원보다 훨씬 강력하고 세밀한 윤리강령과 실천요강을 제정해놓고 있으며, 그걸 어겼을 때 내부의 제재는 물론 사회적 지탄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도지사나 시장·군수 같은 선출직 단체장들은 비판을 업으로 삼고 있는 언론인들을 곁에 두고 측근화 함으로써 ‘좋은 게 좋은 식’의 관계를 맺고 싶어할 것이다. 실제 그런 식으로 기자들을 ‘관리’하는 사례들이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여전히 사이비기자나 어용언론인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